[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5] 장례식을 마치고

19세기에서 20세기 초, 가장의 죽음과 그 상속을 두고 벌어지는 가족들의 암투에 대한 이야기는 로맨스부터 추리소설까지, 흔하디 흔하다. 일단 이 시대에 유산의 중심은 부동산에 있었다. 특히 영국은 가문의 힘과 재산을 유지하기 위해 상속에 있어 장자상속과 한사상속을 원칙으로 했다. 상속인은 토지를 팔거나 저당잡히는 데 제약이 있었고, 여성에 대한 상속 역시 금지,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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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3] 깨어진 거울

헤더 배드콕 같은 사람은 현실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움직이고, 오지랖이 넓고 수다스러운데, 자기가 사교성이 좋고 친절하다고, 요즘 말로 인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정말로 친절한 경우도 많지만, 그 친절은 종종 선을 넘고 사람을 부담스럽게 한다. COVID-19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팬더믹의 시대에, 이런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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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5] 쥐덫

“쥐덫”은 어릴 때 해문사 팬더추리문고로 읽었는데,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린 “세 마리의 생쥐”를 볼 때 마다 떠올렸던 소설. 폭설로 고립된 하숙집, 아직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신혼부부, 이 집에 온 지 하루이틀밖에 안 되어 서로 낯설고 경계하는 하숙생들, 여기에 런던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맞물리고, 한 사람의 형사가 하숙집에 나타난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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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를 향하여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0시를 향하여

학교에서 국어시간에 복선에 대해 배운다. 앞부분에서 깔아놓은 떡밥을 뒤에서 회수하는 것이라든가, 수미쌍관적인 글의 아름다움 같은 것에 대해. 하지만 실제로, 글에서 앞부분에서 깔아놓은 복선을 뒤에서 회수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일간 연재하는 웹소설이 대세인 세상에서, 한 30화 정도에 깔아놓은 떡밥을 210화에서 회수한다면, 쓰는 사람도 힘들고 읽는 사람도 그런 떡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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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 오리엔트 특급 살인

유치원 다닐 무렵 이동도서관에서 이 소설의 제목을 읽고 이유없이 무서워했었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겹쳐져 있었는데, 하나는 오리엔트 시계 광고였다. 시보 광고라고 하던가, “오리엔트 시계가 몇 시를 알려드립니다.”하고 약간 불안정한 기계음을 닮은 사운드와 함께 시계 초침이 돌다가 정각을 가리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무렵에 세계 종말 시계에 대해 읽은 것과 이미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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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어릴 때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책. 원제는 “열 꼬마 검둥이(Ten little niggers)”였지만 미국에서 출판될 때에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로 바뀌었고, 마더 구스에 나오는 “열 꼬마 검둥이”도 인종차별의 문제가 있어 미국의 동요 “열 꼬마 인디언”을 따서 바꾸었다. “열 꼬마 병정(Ten little soldiers)”으로 수록된 판본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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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는 동안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 빛이 있는 동안

“빛이 있는 동안”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유작 단편집으로, 발표되고 수십 년 동안 책으로 묶이지 않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황금가지에서 처음 들여왔다.) 일단 “크리스마스의 모험”과 “바그다드 궤짝의 수수께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편,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과 “스페인 궤짝의 수수께기”의 초기 버전이다. 포와로가 나오고, 이야기 자체는 짧지만 재미있다. 이미 읽은 이야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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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이사 – 마리 유키코, 김은모 역, 작가정신

그렇지 않아도 이사를 할 때 마다 사람들은 으레 긴장하기 마련이다. 월세나 전세로 이사를 하는 거라도 한번 이사를 하고 나면 기한이 되기 전에 쉽게 옮기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자가를 구입하여 이사할 때에는 더욱 따질 것이 많다. 볕은 잘 드는지, 생활하기 편리한지, 가격은 적당한지, 하자는 없는지. 그런 문제도 있지만, 너무 싸게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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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좋은 날

매일 매일 좋은 날 – 모리시타 노리코, 이유라, 알에이치코리아

일기일회, 이 책에서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정서다. 몇십 번, 몇백 번이나 같은 동작을 반복해도 매번 조금씩 달라지고, 이해가 깊어지고, 변해가는 것. 그래서 그때와 똑같은 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것을, 저자는 이십 대 초반부터 계속 배우고 익혀 온 다도를 통해 말하고 있다. 스무 살 때는 다도를 그저 하나의 예법이라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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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 홍지운, 안전가옥

작가 홍지운, 작가 dcdc를 좋아한다. 그의 소설을 좋아하고,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의 dcdc도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조금 놀랐다. 우와, 그 dcdc님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보수적인 걸 썼지. 아니, 작가란 원래 장르별로 필명을 나누어서 쓰기도 하는 사람들이니까, 필명이 바뀐 영향인가. 물론 제목도, 표지도 펑키하고 강력하고 파괴적이다. 등장인물들이나 이들의 인간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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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라이프 집안일 쉽게 하는 법

미니멀라이프 집안일 쉽게 하는 법 – 주부의 벗, 즐거운 상상

집안일의 루틴을 짜는 방법을 참고할 수는 있는 책이지만, 집안일을 쉽게 하는 법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정리된 상태는 미니멀인데, 여기 들어가는 노동력이 굉장하다못해 나로서는 감당이 안 되어 보인다. 집이 깨끗하고, 가족들이 정성담긴 음식을 먹고, 그런 쾌적한 나날을 위해 얼마나 사람의 노동력이 갈려 나가는지 참고하는 책일까. 매일 짬짬이 5분씩 청소한다는 게 말이 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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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계급투쟁

아이들의 계급투쟁 – 브래디 미카코, 노수경, 사계절

영국의 브라이턴 빈민가에서 보육사로 일하고 있는 일본 출신의 브래디 미카코가 2008~2010년의 “저변 탁아소 시절”과, 보수당 정권 시절이자 브렉시트 이후인 2015~2016년의 “긴축 탁아소 시절”을 비교하며, 그야말로 사다리가 무너지는 시대이자 계급이 분화되고 고착화되는 시대, 노동계급이 존중받지 못하고, 빈민층이 “차브”라 불리며 차별받는 시대, 어린이집이 푸드뱅크로 바뀌는 시대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실태를 기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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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걸

인스타 걸 – 김민혜, 안전가옥

칙릿, “가십 걸”이라든가, “꽃보다 남자”라든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라든가. 젊은 부유층의 화려한 일상과 과시, 여기에 자발적으로 빌붙는 사람들과 그 속물적인 면모, 그리고 여기에 끼어든 “평범한 젊은 여자”의 조합은 늘 “욕하면서 보는 아침드라마”같은 재미의 승리공식 중 하나다. 더러는 어처구니없어 하고, 더러는 머릿속이 꽃밭인 듯한 주인공들의 “천박한 돈지랄”에 진절머리를 내고, 더러는 그 속물근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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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졸업 – 윤이형, 내인생의책

환경오염으로 임신이라는 것이 10대 후반에 잠깐 가능한 것이 된 사회, 그중에서도 10%도 안 되는 아이들만이 등급 판정을 받는 시대. 17세가 되면 정자나 난자 검사를 받고, 등급에 들어갔을 경우 석달 안에 등급이 맞는 상대와 관계를 갖고 임신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정부는 24평 아파트와 생활비,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 까지 가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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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캣의 내가 운전을 한다

스노우캣의 내가 운전을 한다 – 스노우캣, 미메시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뭐가 정리가 되질 않아서였다. 필기는 간단히 붙었지만 학원에서 뭔가 설명해준 건 거의 없었고. 기능은 그야말로 차가 굴러가는 법만 배웠고, 그리고 갑자기 도로에 나왔다. 도로에 나와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건 기능 보는 내내 시동 꺼지지 말라고 클러치에 발 걸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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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마, 당신

지지 마, 당신 – 김현진, 루아크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책. 이달 중순에 김현진 작가님께 선물받았는데, 연말에 정신이 없다 보니 어젯밤에야 읽었다. 솔직히 제목은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무슨 힘내라는 힐링형 자기계발서 같은 제목이어서.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내용 자체는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는 좀 달랐다. 사실은 추억속의 책이나 만화들, 어릴 때 보던 외화 시리즈, 배우, 그리고 여자들의 이야기.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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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가 뭐라고

떡볶이가 뭐라고 – 김민정, 뜻밖

12월 초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학교 앞 분식, 도 아니고 떡볶이라니. 주제가 너무 좁지 않은가.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비슷비슷한 떡볶이 이야기라도 담고 있는 사연은 전부 다르다. 친구들에 얽힌 이야기, 슬프고 힘들었던 순간들, 즐거웠던 순간들.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온 여자에게 있어 떡볶이란, 학교 다닐 때의 추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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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정말 끝내주는데

SF는 정말 끝내주는데 – 심완선, 에이플랫

나는 심완선 님을 SF/판타지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같은 해 모 앤솔로지 때 다시 보았던 것 같고. (순서가 뒤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 무렵 정세랑 작가님이 (이분이 참여한) 모 인디 잡지에 글을 쓰셨고, 나는 그때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그 잡지에 칼럼을 하나 썼다. 심완선 님은 도서관 일도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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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또 하나의 이야기

겨울왕국, 또 하나의 이야기 – 잰 캘로니타, 성세희, 라곰

겨울왕국의 내용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다시 이야기한 소설. 아렌델 왕국의 왕과 왕비의 고민과 엘사의 고독이 잘 묘사된 한편, 어린 시절 그 사고 이후 기억을 지우고, 다른 곳에서 빵집 외동딸로 살고 있던 안나의 활기찬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말하자면 AU까지는 아니고, 시작부분을 조금 다르게 해서 같은 결론을 이끌어낸 소설. 기본적으로 괜찮은 시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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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하오 복고

니하오 복고 – 권경진, 미우

고양이 복고, 복동이와 함께 사는 저자가, 자신의 고양이 복고를 사랑스럽고 다정한 연하의 연인같은 이미지로 그려낸 따뜻한 일상만화… 가 아니라 요리만화. 전에 네이버 베스트도전에서 봤던 만화인데 책으로 나왔다. 따뜻하고 평화로우며, 독립해서 낯선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2030의 어떤 시기의 느낌들이 되살아나는 좋은 이야기다. 그란데도 왜 힐링이나 일상이 아닌 요리만화냐 하면, 중국에서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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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유즈키 아사코, 권남희, 이봄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좀 긴장했었다.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니, 제목만 읽어도 악덕 상사에게 착취당하는 이야기가 떠올라서. 물론 그렇게 예상 그대로였다면 이 책이 팔릴 리가 없었겠지. 애인과 헤어지고 우울해하던 파견사원 미치코는, 일주일동안 과장인 구로카와 아쓰코, 통칭 앗코짱의 명령으로 일주일동안 도시락을 싸다 주고, 대신 일주일동안 앗코짱이 지정하는 가게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된다.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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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이진송, 다산책방

일을 몰아서 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30대가 되자 거짓말처럼 체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취미가 미루기, 특기가 밤샘이었던 내가 깊은 밤이 되면 독침을 맞은 것처럼 픽픽 쓰러져 드르렁 잠들었다.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퍼부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제야 나는 마감 직전의 폭발적인 집중력이 온전히 체력의 영역이었다는 사실을, 준비한 체력이 소진되어 아직 일을 마치지 못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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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먹고 살려고요

그리고 먹고 살려고요 – 백두리, 마음산책

지난번 샀던 작가특보 시리즈의 세 번째 책. 곽재식님과 도대체님의 책에 이어 읽었다. 곽재식 님은 소설, 도대체 님은 만화, 백두리 님은 일러스트, 생각해보니 한 분야에 치중하지 않게 작가특보 시리즈를 만든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앞의 두 권이 작가로서는 웃픈 공감과 함께 읽고, 독자로서는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면, 이 책은 조금 더 작가에게 도움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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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마을의 꿈

딩씨 마을의 꿈 – 옌롄커, 김태성, 자음과 모음

읽는 내내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해 생각했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가장 능수능란하게 썼던 이사벨 아옌데의 작품 속의 칠레들을 떠올리고, 다시 이 소설 속에 구현된 현대 중국과, 그 배경에서 살아가는 “노인”의 꿈으로 대변되는 많은 부분들을 연결짓는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다루는 이 이야기에서, 화자는 열두 살에 마을 사람들에게 살해당한 손자요, 이야기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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