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일기 – 김민철 외, 놀(다산북스)

마감 일기

이 책은 무척 재미있지만 기만적이다. 이런 류의 책들, 혹은 작가들의 마감 후기, 아니면 작가가 주인공인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마감이란 세상에서 가장 지옥같은 일이며 세상에 마감을 지키는 작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엄살이다. 작가들이 정말로 그렇게 사시사철 베짱이들처럼 살고 있다면, 출판 산업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물론 작가 중에서 낮밤이 바뀐 사람들이 많다 보니 직장인의 시간 기준으로 하루이틀 정도 늦는 일이야 종종 있기도 하고, 가끔은 정말로 사고가 나서 꽤나 늦어지는 일도 있다. 그럴 때는 작가가 늦은 만큼 편집자가 고생을 한다. 그러다 보니, 마감을 (하루이틀이 아니라 한 일주일 이상) 밥먹듯이 어기고, 예고없이 잠수를 타고, 늦어질만한 사정이 있을 때 미리 편집부와 협의해서 일정을 조정하지 않은 채 손톱만 물어뜯고 있는 “창작물 속 작가”는 대개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그런 작가들이 없진 않겠지만, 아주아주 인기작가거나 대단한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 어지간한 사건사고에는 눈 감아야 하는 분이 아닌 신인작가가 그러고 있는다면 신용을 잃는 것은 당연하고, 편집자도 직장인인데 그런 사람과 계속 일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런 책을 쓰면서 청탁을 받는 분들은, 대부분 마감을 잘 지키는 분들이다.

까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니지만 마감을 3주나 넘기고도 섬으로 여행을 떠나 편집자에게 편지를 쓰는 이야기 같은 건 좀 해롭다. 귀여운 능청이라기에는 그 뒤에서, 일정이 꼬여서 쩔쩔 매며 야근을 해야 하는 편집자의 노동 문제가 떠오르고, 그냥 자학개그형 농담이라기에는 그게 진짜인 줄 알고 신인일 때 부터 마감 늦는 걸 당연하게 여기다가 편집부로부터 초장부터 찍히는 작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거 아니라고. 많은 작가들은 일정표를 짜고, 구글 캘린더며 마감달력이며 불렛저널이며 굴리고 마감팟을 조직해서 오늘 몇글자 썼는지 다른 작가와 공유까지 해가며 마감과 신용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단 말이야. 다른 모든 직업인과 마찬가지로! 대체 작가라는 직업을 게으른 자들로 포지셔닝하면서 귀여운 척 해서 뭐 남는게 있다고! 무슨 마스다 미리도 아니고!!!!! (마스다 미리의 “작가생활” 에세이 만화 특히 싫어함)

거기에 “마감이 어디 있어? 내가 주는 날이 마감이지!”하고 뻗대더라는 어느 교수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내가 편집자가 아니어도 혈압이 올라 뒷목을 잡을 지경이었다. 세상에 책으로 나오는 저작물이 소설만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친구인 편집자에게 교수님들께 고전이나 학술서 원고를 받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는데, 마감에 늦어 놓고도 고압적으로 구는 이야기들이 이게 양심이 있는 인간의 행각인가 싶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좀 사회인답게 굴란 말이야.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그 빵꾸를 메우느라 주말도 없이 일을 하는데.

그래도 종일 일했지만 놀아도 노는 것 같지 않고 일해도 일한 것 같지 않은, 매일매일 쓴 글자수를 모눈종이에 표시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일을 했는지, 어디만큼 오는지 감도 오지 않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라 혼자서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 이 일이다 보니 그런 푸념이라도 하고 싶은 건 이해가 간다. 그런 고충에 대해, 키보드로 빵을 굽는 것 같은 생계형 마감 노동자의 일상에 대해, 너무 비장할 필요는 없겠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멋지고 화려하거나 자유로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책도, 너무 늦어지지는 않았을 마감을 통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마감을 늦으면서도 미안한 줄 모르는 뻔뻔한 자들이 아니라, 처음 세운 찬란한 계획과 실제 마감 일정이 어긋나 초조해 하면서도, 그래도 반드시 마감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행복회로를 풀로 돌리다가, 마침내 제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쩔쩔매며 편집부에 읍소 메일을 보내는 소심하고 성실한 작가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