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남자친구와 그의 연인 – 민지형, 위즈덤하우스

나의 완벽한 남자친구와 그의 연인

이미 관짝에 들어가서 갇힌 사람처럼. 그 관짝 속에서, 영원히 지금처럼 한 사람의 침 냄새와 땀 냄새를 맡겠지.

미래는 로맨스는 원하지만 상대가 “연인 롤”을 수행하며 “너는 내 거야.”, “영원히 함께”같은 말을 들으면 듣기 불편하고 갑갑함을 느낀다. 미래에게 있어 “사랑한다”는 말은 감정이지, 앞으로의 모든 미래를 담보하는 말이 아니지만, 그의 남자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연애는 하고 싶어도 결혼은 원하지 않는 미래에게는 ‘결혼 약속’ 말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척도’가 필요했다.

나름 완벽한 남편감인 수호와 이 문제로 싸우고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래는 공유 오피스에서 만난 시원에게 오픈 릴레이션십 연애를 제안받는다. 현실에서는 폴리아모리라는 말이 바람둥이의 흔한 핑계로 사용되기도 하고, 축첩제를 여성들이 없앤 것도 불과 몇십 년 밖에 되지 않은 한국에서, 오픈 릴레이션십은 미래이게 있어 넘어야 할 벽이 많은 연애 실험이 된다. 미래는 시원의 여자친구인 소리와도 함께 만나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일정을 공유하며 천천히 세 사람의 관계를 시작해 나간다. 두 사람의 관계에 끼어든 손님이 아닌가 싶은 걱정도, 데이트를 하고 키스를 하고 섹스를 하는 단계에서의 저어도 있지만 이 실험은 제법 잘 굴러간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오픈 오피스의 게시판에 이들의 관계를 “아웃팅”한다. 시원이 오픈 릴레이션십을 빌미로 여성을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는 말이 올라온다.

작가는 독자가 이 책에서 무엇이 흥미롭고 무엇이 불쾌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오픈 릴레이션십도, 세 사람의 관계도 불쾌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 상황을 터뜨리는 것 역시 “사회에서는 낯설게 여겨지는 연애형태에 대한 이야기”에서 흔한 클리셰다. (요즘 BL 말고 과거의 BL에서는 아웃팅 하겠다는 협박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내가 불쾌했던 부분은 이 아웃팅의 과정에서 “가스라이팅”한다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그 아웃팅의 결과로 시원이 큰 문제를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를 아웃팅한 사람은 공유 오피스에서 방을 빼고 나가게 될 만큼 깔끔하고 쿨하게 상황이 봉합된다. 2022년의 서울이 그 정도로 쿨한 동네인가가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아는 몇몇 사건들에서 “폴리아모리”를 주장하며 정말로 (한참 연하의) 여성을 착취하고 가스라이팅하던 유부남들이 떠올라서였다. 사실 시원은 미래와 같은 또래이고, 요리를 잘 하고, 다정하고 자상하고 미래가 고민하던 모든 것들을 이미 먼저 고민했거나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인물이다. 오픈 릴레이션십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독자들이 느낄 지 모를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시원은 통상적인 “한남”과는 다른, 끝까지 자상하고 깨였으며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이상적인 남자로 나온다. 그런 그가 아웃팅을 당한 상황은 일면 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 이상적인 남자가 겪는 고초를 “폴리아모리나 오픈 릴레이션십을 말하지만 평등하지도 여성의 고민을 나누지도 않는 한남”인 현실의 유부남이 어린 여성을 착취한 일을 폭로할 때 종종 나오던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서 “공론화”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 현실 남성들의 행각을 합리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가슴이 서늘했다. 이들 세 사람의 사랑은 누군가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고, 성인들의 고민과 합의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이지만, 그 결과로 시원이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는 것 처럼 “폴리아모리를 핑계로 어린 여성을 착취하는 성인 남성”이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는 현실이 떠올라서 괴로워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오픈 릴레이션십을 긍정하면서도, 이런 “아웃팅” 부분을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어서 이 부분이 불쾌했다.

+ 오픈 릴레이션십과 그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을 설명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 시원이 너무 흠없고 이상적인(안 예쁜 조명을 사는 것 말고는)것으로 묘사되어서 매력은 좀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