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테레사 – 존 차, 문학세계사

안녕 테레사

“딕테”라는 난해한 책이 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여성 작가가 썼다는 이야기를 처음 읽은 것은 90년대, 신문 문화면이었다. 영어와 프랑스어, 라틴어, 한자, 한국어가 교차하고, 그리스 신화의 아홉 뮤즈들이 각 챕터의 제목이 된다는 이야기도 짧게 나왔어서, 그 무렵 읽고 있던 불핀치의 그리스 신화에서 아홉 뮤즈들의 이름을 찾아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딕테”를 무대에 올린 “말하는 여자”에 대해서는, 아마도 졸업하던 학기에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들었을 것이다. (직접 보진 않았는데, 하일라이트 영상이었는지, 뭔가를 본 기억은 있다.) 이삼 년 뒤에 대학에서 일할 때 대학 도서관에서 그 책을 찾아서 대충 읽었다. 당시 나는 시를 잘 읽지 않았고,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고서도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무대에서 봤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했지만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궁금했다. 학교에서 이 사람이 그렇게 굉장하다고 들었는데, 한국인 작가가 미국에서 그렇게 유명하고 훌륭한 작품을 남겼으면, 외국에서 인정받고 성공한 한국인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이 나라에서, 빨리 번역해서 들여오고 싶어하지 않나? 왜 이 책 밖에 안 보였지. 그러다가 이 사람이 이 책 한 권을 남기고 젊어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그렇군. 요절한 천재였구나. 거기까지가 차학경에 대해 생각한 마지막 대목이었다.

그 생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작년.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라는 책이 나오고, 그 책에 차학경, 테레사 학경 차의 죽음에 대한 서술이 있었다. 그는 그냥 젊어서 죽은 천재가 아니었다. 그는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피해자였다. 만약 그만한 젊은 예술가가, 백인이고 남성인 예술가가 뉴욕에서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면 그의 죽음은 대서특필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은, 나는 나온 줄도 몰랐던 이 책은 차학경의 오빠인 존 차가 쓴, 법정기록을 바탕으로 한 글이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그는 테레사의 남편인 리처드에게서 동생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공정하고 부지런하게 수사에 임해줄 지 의심스러운 경찰들과 검사를 만나보고, 발견되지 않은 증거를 찾아 동생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지하실을 누빈다. (여기에 그의 가족들이 꾸었던 꿈이 더해진다. 그의 어머니는 710이라는 숫자를, 언니는 7이라는 숫자 세 개가 보이는 꿈을 꾸었고, 테레사의 유류품은 지하의 710번 기둥 근처, 700번대 기둥 세 개가 연달아 보인 근처에서 발견된다)

읽는 동안 안타까워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그러나 그때까지 보인 것만으로도 그 족적이 결코 작지 않을 젊은 예술가가, 세 번이나 강간을 저지르고 이름을 바꿔 가며 건물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던 범죄자에게 살해당했다. 피고의 변호사는 테레사의 커리어에 대해 말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한편, 피고가 과거 강간을 저질렀다고 해서 이번에도 강간과 살인을 저질렀다고 속단할 수 없더고 주장한다. 재판은 5년에 걸쳐, 3심에 걸쳐 이루어진다. 2심에서는 무죄로 판결이 나지만, 1심과 3심에서는 피고의 1급 살인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나오고, 테레사를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은 감옥으로 끌려간다. 이 재판 과정을 읽으며 죽은 사람이 백인이었으면, 혹은 남성이었으면, 혹은 백인 남성이고 전도유망한 예술가였으면 어땠을까 계속 생각하다가, 문득 한국이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죽은 사람이 아무리 많은 공부를 했고, 서른 한 살 때 까지의 업적만으로도 역사에 남을 만 하며, 앞으로의 장래가 더 기대되었던 사람이었다고 해도, 살아있는 남자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적당히 집행유예나 주고, 판사가 훈계의 말이나 해서 내보내지 않았을까. 언론에서는 예술가에 대한 편견까지 담아 죽은 사람을 있는 힘껏 모욕하고. 결국 마지막에 유죄가 떴을 때, 이제야 죽은 사람이 눈을 감겠구나 싶다가,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하며 한숨짓다가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논리적인 법정 드라마인 동시에, 그 5년에 걸친, 누이동생의 한을 풀고 떠나보내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테레사의 실크 블라우스를 태워 위로하거나, 꿈을 통해 테레사가 황금 사슴이 노니는 곳에 있고, 테레사는 남편인 리처드의 죄책감을 용서했으며, 꿈을 통해 자신이 살해당한 장소를 알리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무속적이고 영적이다. 사람들이 “말”로는 말해도 “글”로는 잘 적어두지 않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을, 건축가이자 작가이고 번역가인 오빠 존 차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쓴다”. 마치 차학경의 “딕테”가 받아쓰기라는 뜻이었듯이.

PS) 차학경의 오빠인 존 차는 번역가이자 작가이고, 안창호 선생의 따님이자 동양인 여성 최초의 미 해군 장교였던 안수산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버드나무 그늘 아래”를 썼다. 차학경의 여동생은 차학경의 생전 필름 작업들을 도왔다고 한다. 중간에 동생이 판화를 작업하는 내용과 남편인 리처드 번즈가 사진작가인 것에 대해 나온다. 동화작가 강소천 선생이 차학경 남매의 외종숙 – 어머니의 사촌 –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