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로 인류가 멸망하고 소수의 인간이 “방주”를 타고 우주로 도망치고 약 100년이 지난 ZA 102년, 달과 스페이스 콜로니에서 머무르던 인류는 지구에 원정대를 보낸다. N-형식이나 K-기준 같은, 성은 알파벳 약자로만 붙은 대원들이 과거 서울과 인천의 중간 정도의 지대에 착륙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영상화하기 매우 용이한 영리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행성에 가는 것과 달리 중력이나 대기를 생각하지 않고 움직임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칸소 독감, 즉 좀비 바이러스의 대유행과 그로 인한 멸망에 대한 과거의 기록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역시, 영상화를 고려한다면 매우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아니 누가 이 상황에서 SNS에 글 쓰는 것도 아니고 노트에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쓴단 말인가. 당장 내 작업 노트에도 저렇게 별 세세한 것까지 따옴표 써가며 기록하진 않는데!!!”하는 생각이 들긴 들었으나, 이 역시 영상화를 전제로, 그를 위한 설계도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걸릴 부분은 아니다. 영상화 계약을 맺는 작가님들을 내심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설계 단계에서 배경에 제약을 두거나, 가급적 현대의 지구를 배경으로 둘 수 있는 지점을 많이 두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았다. 좀비가 나오는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상업작가로서 영상화 계약을 성공시킬 수 있는 포인트들을 참고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와 권두의 만화는 산호 작가님이 작업하셨다. 산호 작가님의 그림은 전부터 해골과 과일과 꽃 등을 그리는 바니타스 정물화를 연상하게 해서 아름답지만 섬뜩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미지가 좀비로 가득한 세계와 잘 어울려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