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 – 강미강, 청어람

옷소매 붉은 끝동

병원에 입원한 동안에 읽었다. 사실 그 이전에, 트위터에서 이야기가 나오던 드라마의 원작이었다. 1, 2화를 본 사람들은 사극 명가 MBC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사극을 찍고 있다고, 퓨전 사극이라는 이름하에 복식도, 시대도 애매한 “조선왕조풍 드라마”가 아니라 복식이나 어휘 면에서 제대로 고증을 갖추고 연기파 배우들을 기용한 드라마가 나오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러다가 좀 지나서는 제조상궁이 반역을 꾀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더니(…..) 나중에는 주인공이 죽고 후회남이 한시간동안 삽질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뭐가 되었든 이 이야기는 정조와 의빈 성씨의 이야기다. 의빈을 제외한 후궁들은 간택을 거쳐 맞아들인 후궁이니, 궁녀 출신으로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된 이는 의빈 한 사람 뿐이다. 정조가 의빈 소생의 문효세자를 무척 아꼈고, 의빈이 죽은 뒤에도 손수 묘지명을 지어서 자신이 얼마나 의빈을 사랑했는지 기록했으니 역사적 기록에 충실한 사극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만한 인물이다. (사실 그래서 이전에 “이산”에서도 의빈 성씨가 여주인공으로 나왔다. 그때는 성송연이라는 이름의, 도화서 다모로 등장하는데, 이는 실제 역사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역사적 기록을 따르자면 이 “옷소매 붉은 끝동”쪽이 비교적 부합한다. )

여튼 드라마는 보지 않았지만 소설이라도 읽자고 누워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종사의 대계가 이 한 몸에 달려 있으니 내 편안함이 최우선이다.”

과거 드라마 “후궁견환전”과 “보보경심” 이후로 “자금성의 똥차 옹정제”소리를 종종 들었는데, 이 소설 속의 정조는 그야말로 “창덕궁의 똥차 정조”라고 불릴 만 하다.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지간한 로맨스의 후회남주, 어지간한 BL 의 후회공들을 싹 모아 엑기스만 걸러낸 수준이다. 그런데 사실 작가님도 명색이 남주인공인 정조를 똥차로 만들고 싶어 만들었을 리는 없고, 이 똥차같은 말들이 대부분 정조가 했을 만한 이야기, 종종 근거와 출처가 있는 이야기라는 게 문제다. 문체반정을 일으킨 정조답게 덕임이 소설을 읽거나 필사하는 것도 질색을 하고, 자신은 덕임에게 호감이 있지만 유교적 신분질서에 철저한 인물답게 신분을 뛰어넘는 교감 같은 것은 그의 안중에도 없다. 외척의 권력이 커지는 일이라면 질색을 하니, 왕이 궁녀에게 승은을 내려도 바로 후궁으로 삼지 않고, 왕손을 잉태한 다음에야 후궁으로 올리라고 하였으며 덕임이 후궁이 되자 힘들게 과거 시험 봐서 들어온 그 오라비를 그나마의 미관말직에서 내쫓아버린다. 자신의 감정이 흔들리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내내 덕임을 못살게 군다.

잔망스러운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말이다. 경희는 호감 때문일 거라고 설레발을 친다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당하는 입장에선 죽는소리가 절로 난단 말이다. 하물며 이토록 일방적인 관계는 주인과 시종의 관계일 수는 있어도 사내와 여인의 관계일 순 없다. 왕의 호감이란 것은 애초에 매우 비틀린 감정이 틀림없다.

어린 덕임은 어머니가 궁녀는 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음에도 스스로 궁녀의 길을 선택했다. 가난한 살림에 오라비들이 과거를 볼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동경했던 아름다운 궁서 글씨를 쓰기 위해서. 그에게 있어 궁녀가 되고, 아름다운 글씨로 소설을 필사하고, 동무들과의 우정을 쌓으며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었다. 그런 덕임이 어린 시절 보았던 의열궁(선희궁)의 죽음과 그의 인생은, 덕임의 삶에 또 다른 레이어처럼 겹쳐진다. 어질고 아름다운 선희궁은 영조에게 사랑받으며 그에게 여섯 아이를 낳아 주었으나, 한때 문 숙의에게 총애를 빼았겼다. 또 죽은 뒤에도 왕은 후궁의 뒤를 따를 수 없어 배웅을 받지 못했고, 왕이 죽은 뒤에 그 곁에 누울 수도 없었다. 어린 덕임은 영조에게 자신이 그를 사랑했으며 그가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회고를 듣지만, 덕임이 나이가 들어 되짚어 보았을 때 영조의 사랑은 선희궁에게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아들을 죽인 책임마저 그 생모인 선희궁의 입을 빌어 떠넘기고, 죽은 선희궁에게 의열이라는 시호를 내린다. 덕임과 정조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정조는 덕임을 사랑했다지만, 그 사랑은 덕임에게는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정조에게는 중전이 있고, 또 간택을 통해 들인 양반 출신의 빈들이 있었다. 딸아이를 잃었지만 세상은 옹주의 죽음에 무관심했고, 효강혜빈은 “새로 하나 가지면 된다. 상심하셨을 주상이나 극진히 모셔라.”고 말할 뿐이었다. 아들을 낳았지만 그 아들은 중전의 아들이요, 자신은 그 아들에게 어마마마가 아니라 “의빈 자가”였다. 홍역에 걸렸다가 죽은 아들이 자신을 찾으며 죽어갈 때에도, 일개 후궁인 자신은 그 곁에 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사랑했다고 하지만, 의빈이 죽고 곧 정조는 수빈 박씨를 맞아들이고, 그에게서 세자를 앋는다. 마치 죽은 후궁은 잊혀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녕 신첩을 아끼셨사옵니까?”
“그렇다니까.”
“하면 다음 생에선 알은체도 마소서.”
그녀는 또다시 그의 애정을 무참히 밀어냈다.
“사소한 소망이 꽤 있었사옵니다. 나 하나만 최우선으로 여기는 지아비를 만나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어미라는 말을 가르치고, 거리낌 없이 아이 이름을 부르고, 외숙부들로부터 말 타는 법도 배우게 하고……. 하지만 전하 곁에서는 하나도 이룰 수 없었나이다.”
울긋불긋한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임금이신 게 좋다고 하셨으니 그저 좋은 임금으로 사소서. 신첩은 평범한 계집으로 살겠나이다. 진실로 신첩을 아끼신다면, 다음 생에선 알아보시더라도 모른 척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소서.”

그렇게 창덕궁의 똥차 정조는, 사랑을 했다면서 결국 일방적인 사랑 끝에, 애정의 대상이 자신보다 먼저 죽으며 그 애정을 밀어내는 결말을 맞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슬리다, 귀찮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던 남자의 말로라고 할 수 있어서 딱히 애절하거나 안타깝지는 않고, 궁녀로서 살고자 했으나 그 뜻을 이룰 수 없었고, 아들이 죽어갈 때 곁에 다가갈 수 없었는데다, 자신의 임종 때에는 보고 싶던 동무들을 만나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죽은 뒤에는 젊어서 필사했던 책에서 “덕임”이라는 이름을 지워진 채 “의빈”으로만 남게 된 여성의 불행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에 정조가 죽으며 본 환상은 아니 들어가도 괜찮았을 것이다. 아니, 만약 내가 썼다면 여기 남겠다고 하는 정조 앞에서 덕임과 아들이 스르륵 안개처럼 흐려져 혼자 남게 만들었을 것이다. 로맨스라는 장르적 특성상 그러기는 어려웠을 것 같지만. 읽다 보면 중간중간 앤윈의 소설 “지신사의 훈김”이 생각나는데, 저런 창덕궁의 똥차는 역시 그냥 덕임이는 열심히 일하고 소설 필사하며 살게 두고 로맨스는 홍국영이랑 찍는 게 나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