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적 조선 녀성의 성과 국가 – 권금상, 서울셀렉션

영웅적 조선 녀성의 성과 국가

“북한 여성의 섹슈얼리티 탐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북한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섹슈얼리티를 통해 북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권력에 의한 여성의 억압을 살펴본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책을 읽다 보면, 남이나 북이나 이데올로기만 달랐지, 사회의 요구와 권력의 흐름에 따라 여성과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억압해 댄 것은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읽으면서도 몇 번이나 혀를 찼다.

해방 이후 북한은 “부녀자”를 “여성”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적응한 선진 사상과 고상한 도덕 품성을 소유한” 혁명적 여성, 즉 신여성으로 재정의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부지런히 일하는 여성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것 처럼 보였지만, 해방 직후의 북한 사회에서 여성은 집 밖에서는 남성과 평등하게 일하는 노동의 주체인 한편, 집 안에서는 여전히 봉건적 가부장제에 봉사해야 했다. 이와같은 이중적인 태도는, 북한의 여성관이 항일 투쟁에 나섰던 “영웅” 김일성 일가 본받기, 소위 “총대 사상”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때로는 국가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혁명가, 때로는 어머니로서 돌봄을 수행하는 강반석과 김정숙을 강조하며 여성들을 그에 맞게 억압했다.

초기 북한 권력은 노동의 효율성을 위해 핵가족화를 도모하는 한편, 통치를 위해 충효 사상과 유교 전통의 가부장 질서를 유지했다. 사회주의 여성 혁명을 내세웠으나, 엥겔스가 주장한 가족 해체론과 “가내 노예인 여성에 대한 전면적 여성해방론”은 도입하지 않았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는 한참 혀를 찼다. 여성혐오를 도락처럼 여기는 남초 사이트들에서는 성평등 담론이 나올 때 종종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먹는)뷔페미니즘”이 아니냐며 트집을 잡아 조롱하지만,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먹는 건 이런 데 붙이는 말이다. 집밖에서는 봉건제도를 철폐하자면서 집에서는 가부장제의 지배를 받으라니, 저 동네 남자들은 무슨 사회주의가 뷔페도 아니고.

그럼에도 일단 여성의 사회 진출 자체는 북한 쪽이 더 빨랐다. 1946년 시도군 인민위원회 선거에서는 선출위원 중 10~15%를 여성에게 할당해 여성 의석이 전체의 13%를 차지했다. 같은 해 북한은 “북조선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 “북조선 로동자 및 사무원에 대한 로동법령”, “북조선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제정하며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독려했다. 여성 중에서도 노력영웅이나 천리마기수가 배출되었다.

군대 역시 우리보다 일찍 여성에게 문호를 열었다. 1945년 평양학교가 창립되며 여군 창설의 계기가 마련되고, 1962년 “4대노선”에서는 전 인민을 무장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1966년 당대표회의 이후에는 여맹 등이 나서서 여군이 대체 인력이 아닌 정규군임을 강조하며 입대를 독려했다. 여군은 애국적이고 혁명적인 여성을 상징했다. 생각해 보니 1980년대 북한에 대해 학교에서 배울 때는, 북한 여성들이 모두 일을 하러 나가서 아이들은 “탁아소”에서 자란다고 배우기도 했다. (그때는 학교에서도 어린 아이들이 탁아소에서 자라는 것은 비정하고 잔혹한 일인 것 처럼 배웠지만, 결국 우리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장되며 돌 전의 아이들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 북한은 “성별화 노동정책”을 펼친다. 남성은 중공업에, 여성은 경공업에 배치하고 임금을 차별하는 식이다. 이후 1980년대에 접어들며 북한의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고 일자리가 줄어들자, 북한은 “가정 혁명화”의 명목으로 여성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여성의 역할을 공산주의 혁명가를 위해 봉사하는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역할로 축소해 버렸으며, 여성의 몸을 노동 인구를 조절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비슷한 시기 우리가 “둘만 낳자”, “하나 낳아 알뜰살뜰”같은 가족계획 표어들을 내걸고 여성들을 낙태하거나 정부가 주도하여 불임 수술을 해 버렸던 것 처럼.

국가 건설기에 시행된 여성 정책은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관점을 드러냈지만, 이후의 여성 정책은 여성에 대한 권력의 이중적 관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뿐이었다. 권력은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표방하면서 여성에게 노동과 사회적 희생을 요구했고, 인구 증감에 따른 재생산 문제를 여성만의 임무로 부과했다.

“전쟁으로 인한 인명의 손실을 보충”하라는 김일성의 요구로 인한 인구 증가, 1970년대 도시 과밀화 문제와 함께 제기된 인구 억제 정책, 다시 출산율 감소가 두드러진 1990년대에는 낙태 금지령. 여성을 갈아 인구를 조절하는 북한의 인구 정책은 우리 나라와도 크게 다르지 않아, 읽으면서 “이런 점에서는 남북한이 똑같다”고 한탄하게 되었다.

연애와 결혼, 이혼 역시 개인의 의지보다는 정부의 의지가 개입했다. 당은 만혼을 장려하는 한편, 처음에 남녀평등권 법률로 보장했던 합의이혼을 폐지했다. 당성에 따른 계층에 따라 주거지와 직업, 배급량이 달라지는 북한 사회에서 결혼은 사실상 계급적 족내혼에 가깝고, 여전히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연애 역시 불평등하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임신했을 때 남성들은 그 임신에 책임도 지지 않고 낙태의 고통을 분담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여성이 처녀가 아니면 배척을 당한다. 아내가 결혼했을 때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지만, 여성의 외도는 이혼 사유다. 이 책에는 결혼한 남성이 바람을 피워 다른 여성을 임신시켰는데, 그 부인은 자신이 아이를 키우고 시부모님을 모시느라 남편에게 소홀했다며 가부장 질서에 호소하는 한편, 상대 여성 책임론을 내세우면서도 낙태와 사후 관리를 준비해 “착한 아내, 현명한 여성”으로 평가받은 이야기가 나온다. 북한 역시 이런 남녀간의 문제가 불거졌을 때, 남성은 자신이 져야 할 책임에서 최대한 도망치면서도, 피해자인 여성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모양이다. 정말 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남한이나 북한이나…..

그리고 “고난의 행군”이후 북한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는다. 여성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성매매에 나서기도 하고, 국가가 주도하는 외화벌이 사업에 판매원 등으로 취업하기도 한다. 국경에서는 밀수를 하고 전국적으로는 식량과 생필품을 파는 장마당이 확산되며 사람들은 자본주의적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 가족들의 생존을 책임지며 경제 활동을 해 온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성 질서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1946년부터 현재까지, 북한의 역사를 여성의 역사이자 미시사로서 설명하고 있다. 물론 북한은 그랬지만 남한은 더 나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인구 문제나 경제 문제에 있어, 이들은 남한과 비슷한 형태로 여성들을 억압했다. 탈북여성들의 고난에 대해서도 한 챕터를 할애해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는다고, 북한의 현실과 북한 여성들의 고난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여기나 북한이나, 여성에 대해서 참 뻔뻔하였다는 생각을 했다. 이 지역 근처에 살고 있다는 탈북민들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