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백인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 – 도나 저커버그, 이민정, 문예출판사

죽은 백인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

이 책을 읽던 그 주에, 남초 사이트에서는 “설거지”니 “퐁퐁남”이니 하며 기혼한 남성들을 조롱하는 일들이 있었다. 부연하면, “설거지”는 이전에도 남성들이 윤간 등 성범죄를 저지를 때 제일 마지막에 하는 사람을 두고 “설거지 한다”고 말했던 것에서 유래한다. 남초 사이트의 인셀들은 기혼 남성들을 두고, 그 배우자가 젊을 때에는 다른 남자들과 연애하고 섹스하다가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남자와 결혼해서 남편을 ATM 취급한다고 주장한다. 돈은 돈대로 벌어다 주고 가사노동도 떠맡으면서 섹스는 제대로 못 한다며, 여성을 “음식을 먹고 난 그릇” 취급하고 결혼한 남성들을 “그 그릇을 마지막으로 설거지한다”며 퐁퐁남이라고 조롱하는 것이다. 여성혐오를 하다하다 못해 이젠 기혼남성을 조롱하는가 싶었지만, 많은 한국의 남초 사이트에서 여성에 대해 뭔가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이 주장하는 여성혐오 발언들이 흔히 그렇듯이, 이런 주장 역시 레퍼런스가 있다. 이를테면 “레드필”의 하위 집단인 ‘자기 갈 길을 가는 남자들’은 여성과 완전히 분리된 채 살아가며 결혼 파업에 동참한다. 이들의 주장은 이런 식이다.

‘자기 갈 길을 가는 남자들’은 여성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기에 신뢰할 수 없는 알파 메일 – 주로 채드 선더콕이나 흑인인 타이론 등으로 표상된다 – 과 시간을 보내다가 20대 후반에 소위 나이가 ‘꺾여’ 매력이 꾸준히 감소하고 나면 베타 메일에게 정착하기를 원한다고 한탄한다. 이 남성들은 이 구조를 떠나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미국 남성우월주의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상당부분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재현된다. 무슨 거창한 깨달음이라도 되는 것 처럼 떠들어대지만, 결국은 이미 나온 주장의 열화 카피일 뿐이다. 읽는 내내 “아, 뭐 이런 새끼들이.”하는 생각이 꾸준히 드는 책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남초 사이트들의 남성 우월주의 – 안티페미니즘 – 우파적 주장들이 하다못해 자기들이 생각이라도 해서 만들어낸 결과물도 아니고, 어딘가에 원전이 있는 것을 밈(Meme)처럼 그대로 갖다 쓰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의 동생인 도나 저커버그는 SNS가 여성혐오를 새로운 단계의 폭력으로 끌어올렸다고 비판한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의 오빠 마크 저커버그 역시 지대한 공헌을 했다. 애초에 그가 페이스북 이전에 만든 것이, 누가 하버드대 최고의 미인인지 가려내는 ‘얼평’ 사이트, 페이스매쉬였다. 그는 페이스매쉬에 쓰일 사진들을 구하기 위해 학부 기숙사생 인명록을 해킹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다가 학교 측의 징계를 받았다. 이후 그는 페이스매쉬의 경험을 살려 페이스북을 만든다.) 그는 “레딧”의 하위 커뮤니티인 “레드필”의 “알트라이트”들이 서구의 고전들을 어떻게 자신들의 여성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다 쓰는지 보여준다.

여성혐오는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나 세모니데스의 “여성에 관하여”같은 초기 그리스 문헌에서도 발견된다. 여성이 남성에게 기생하는 존재이며 변덕스럽고 탐욕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장장 기원전 8세기의 문헌들을 인용하며 “역사적으로 여자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니, 상식적인 사람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타임머신을 개발해서 기원전으로 돌려보내는 게 나을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여성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나 로마가 서구 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기대고 있다. 이들은 고전의 차별적인 텍스트들을 비판하는 것에 위협을 느끼고,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은 고대 문화의 적이자 인문학 학습을 저하시키는 주범이며, 자신들을 고전 전통의 승계자라고 믿고 있다. 특히 스토아 철학에서, 스토아 철학의 옹호자들이 잘 언급하지 않는 차별적인 요소들에 천착하고, 이를 확대하고 왜곡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프레임에 갇혀 학계 보편적인 해석을 무시한다. 전형적인 반지성주의적인 행동이다.

“픽업 아티스트”가 여성을 유혹하는 법을 가르친다며 돈 떼어먹는 놈들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픽업 아티스트”를 레드필의 일종으로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이들은 여성을 유혹하고 캐주얼한 섹스를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프레임 이론”과 “가스라이팅”을 사용한다. 우리에게도 이제 익숙해진 말들이다. 이들은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을 인용하며 오비디우스를 원조 픽업 아티스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먼저 성적 접촉을 시도하라거나, 허락은 구할 필요 없다는 식의, 현대의 관점에서는 성범죄로 분류될 일들을 “여성들이 원한다”며 권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남성의 욕망이 여성이 선언한 경계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성폭력에 대한 고발을 거짓이라고 공격하며 “페드라”를 인용하는 데서는 어처구니가 없어질 정도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어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백인 남성만이 시민이 될 수 있었을 뿐, 여성이나 노예에게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의 윤리를 그대로 끌고 와 여성혐오와 인종주의를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대고 있는 미국 남성 커뮤니티의 행각을 읽고 있자니 기가 차면서도, 그나마도 안 읽고 이미 남의 나라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머리가 아니라 밈으로만 생각하는 듯한 우리나라 남초 커뮤니티의 이야기들을 생각하니 더 기가 막힌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텍스트를 멋대로 왜곡해 잘못된 지식을 전파하는 역할을 “나무위키”가 하고 있지 않은가.) 읽고 있으니 이들의 언어나 패턴이 우리나라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그대로 복제되고 있는 것에 대해 계속 걱정하게 된다. 사실 저 한심한 반지성주의자들의 행각에 혀를 차면서도,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PS) 도나 주커버그의 책에서 미국의 남성인권운동(MHRM) 쪽에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여성들을 Honey Badger(꿀오소리)라고 부른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좀 아득한 느낌이 들었는데, 설마 “문꿀오소리”같은 표현도 어원을 따지면 그쪽에서 온 건가? 그 말을 SNS에서 자기 소개에 쓰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더 아득해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