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한 일 – 이승우, 문학동네

사랑이 한 일

기독교에서 신의 사랑은 공평하지 않다. 뭐, 이해는 간다. 하다못해 게임 캐릭터를 키워도 더 좋은 아이템을 입히는 캐릭터가 따로 있고, 더 거친 일에만 내모는 캐릭터가 따로 있는 법인데. 인간을 제 피조물로 여기는 신이 그 인간들을 사랑하는 방식이 공평할 수도 없겠지만. 신약 이후로 “서로 사랑하라”고 리부트 되었기에 망정이지, 애초에 구약의 신은 편애하는 신이요 질투하는 신이다. 성경에는 대놓고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광야의 용들을 위해 그의 산들과 유산을 피폐하게 하였느니라.”라는 말이 나온다. 성경에서 언급된 인류 최초의 살인은 결국 신이 한쪽의 제물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출애굽기에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같은 말이 나온다. 신의 사랑은 재난같으며, 받는 사람이 받느냐 마느냐를 선택할 수 있는 종류의 호의도 아니다. 이승우의 소설집 “사랑이 한 일”은 바로 이 구약의 하나님, 질투하고 편애하는 신으로 말미암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의 이야기에 대한 연작이다.

사실 모든 호의에는 어느 정도 강요적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 베풂은 일방적이어서 협상이 여지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풂은 받는 자에게 타협할 권리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봉건적이다. 베풂의 정도와 시기와 수준을 넣고 협상할 기회는 제공되지 않는다. 그런 기회가 제공될 때 그것은 거래가 된다. 베푸는 자의 주는 행위는 강요하는 몸짓이다. (중략) 거절하기 힘든 극진한, 과도한, 간청의 형식을 갖춘 호의는 거절하기 힘든 강요이다. 호의가 강요로 변할 때 자발성은 내면화되고 의무가 관계의 거의 유일한 소통 규칙으로 대체된다.

첫 번째 이야기인 “소돔의 하룻밤”은 바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은 두 천사에게 호의를 강요하다시피 하며 자신의 집에 머무를 것을 청한다. 그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이방인에 대한 린치를 당할 두 천사를 자신의 손님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호의를 강요하듯 베풀었지만 인간인 그는 그 뒤에 벌어진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 “소돔의 하룻밤”과 네 번째인 “허기와 탐식”은, 같은 이야기를 관점을 바꾸어 두 번 세 번 반복한다. “소돔의 하룻밤”에서는 그것이 천사의 관점과 롯의 관점, 그리고 전지적 관점으로 보이기도 하고, 두 소설을 아울러 생각하면 정-반-합의 변증법적인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두 번째 이야기인 “하갈의 노래”는, 이삭이 태어난 뒤 이스마엘과 함께 내쫓긴 하갈의 이야기다. 그는 평범하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기를 바랐지만, 그의 주인인 사라가 하갈에게 아브라함과 동침해 자손을 낳아 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막상 하갈이 임신하자, 사라는 질투심으로 미쳐 버린다. 그는 하갈을 모함하고, 이삭이 태어나자마자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쫓는다. 사갈은 사라에 대한 충성심으로 아브라함의 첩이 되었고, 자신이 임신한 뒤에도 사라의 마음을 살피려 했지만, 그 호의는 보답받지 못한다. 처음 이스마엘을 임신했을 때 도망쳤던 하갈은 신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갔지만, 지금 아들과 함께 광야에서 헤매며 누구보다도 신의 음성이 필요할 때, 신은 이스마일에 쓰러진 뒤에야 마침내 목소리를 들려준다.

세 번째 이야기인 “사랑이 한 일”은 번제의 제물이 될 뻔 했던 이삭의 이야기다. 그는 신이 아버지를 사랑했기에, 그리고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자신이기에, 자신을 제물로서 요구했음을 안다. 인간의 관점에서 그것은 끔찍한 사랑이요, 상대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자신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라는 가혹한 요구이며 지독한 스토킹에 가까우며,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은 신의 목소리를 따른답시고 제 아들을 죽일 뻔 한 끔찍한 인간이지만, 하마터면 아비 손에 이삭은 그것이 “사랑이 한 일”이며, 그것이 특별한 은총임을 “안다”.

그날 밤, 별들이 캄캄한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 밤에 그 산에서 나는 신으로부터 많은 말을 들었다. 내가 알아들은 말은 아주 조금밖에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에서도 아주 조금밖에 옮길 수 없는 것이 내 한계다. 아니, 이것 역시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마음 속이 가득 차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말을 하면 말한 만큼 달아나버려 아무리 많이 말해도 아주 조금밖에 말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리는 신비. 말하지 않은 것을 통해 더 많이 말하게 되는 비밀. 그 밤 이후 나는 사색하는 사람이 되었다. (중략) 그 산에서의 하루는 내 인생의 모퉁잇돌이 되었다. 내 인생의 집은 그 하루 위에 지어졌다. 하늘을 보고 들판을 거닐며 나는 내 안의 성좌달, 그 밤에 들었던 엄청난 말들을 되새긴다. 내 안에 더 깊은 길이 펼쳐져 있다. 내 사색 속으로 신의 음성이 끼어들면 나는 그 음성에 귀기울이고 그 음성을 풀기 위해 걷다가 멈추고 멈춰 있다가 걷는다. 나는 아직 그 밤에 들은 말들을 다 풀지 못했다.

이삭은 그렇게 축복을 받은 자요, 사색하는 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상처는 네 번째 이야기인 “허기와 탐식”에서 드러난다. 이삭은 리브가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을 낳지만, 신은 야곱을 편애한다. 그리고 이삭은 에서에게 아버지로서 축복을 주려 한다. 이삭이 에서를 사랑하는 것은 에서가 사냥해서 잡아온 고기로 요리를 해 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산에서 내려온 이삭이 갑작스레 모든 것을 잃고 쫓겨났던 이스마엘과 하갈도 자신과 같은 일을 겪었음을 이해한다. 그는 자신이 더 사랑받는, 편애받은 아들임을 알고, 자신이 겪은 일이 신의 사랑이자 자신을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한 아버지의 사랑 때문임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메우기 위한 일인 것 처럼, 잔뜩 허기진 사람처럼 이스마엘이 잡아온 고기를 먹어치운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하갈 역시 그랬음을 말해준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고뇌도 이해했다. 긴 질문과 사색을 통해 아버지가 자기에게 어떤 일을 했든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한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 그의 안에 자리했다. 그 일이 사랑이 없거나 부족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랑이 지나치게 많아서 생긴 것임을 충분하고 온전하게 이해했다. 그런데도 그 질문은 그의 충분하고 온전한 이해의 막을 찢고 계속 솟아올랐다.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어떤 충분하고 온전한 이해도 충분하지 않고 온전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묶던 아버지, 자기를 칼로 내리치던 아버지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내리려는 것은, 에서에게서 그가 이스마엘을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 장남, 사냥꾼, 그리고 과거 자신의 끝모르는 허기를 메워 주던 이스마엘의 요리처럼 야생동물 요리를 만들어주는 아들. 이 이삭의 허기에서, 독자는 그리스 신화 속 에릭시톤의 이야기를 겹쳐 보게 된다.

하지만 신에게 사랑받고 어머니의 편애를 받는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고, 에서로 변장하고 들어가 이삭이 에서에게 내리려 한 축복을 대신 받아버린다. 축복을 잘못 내렸음을 알게 된 이삭은 에서에게 말한다. “너는 칼을 의지하고 살 것이며 너의 아우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애써 힘을 기르면 너는 그게 네 목에 씌운 멍에를 부술 것이다.” 라고. 형제를 다스릴 것이라고 야곱에게 내렸던 축복을 번복할 수 없으니, 이삭은 에서에게 힘을 길러 동생에게서 벗어날 희망을 축복한다. 내게는 그 축복이, 이 지긋지긋한 신의 사랑에게서 벗어날 가능성으로 보였다.

마지막 이야기인 “야곱의 사다리”는,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고 에서에게 약속된 축복을 대신 받은 야곱이, 신부감을 구한다는 핑계로 형에게서 도망쳐 달아나는 이야기다. 편애하고 질투하는 신에게 차별받아 권리를 빼앗긴 장남도 고단하지만, 그 신에게 편애를 받아버린 차남 역시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삭은 에서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에게 신의 사랑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축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이삭은, 그리고 야곱은 여전히 신의 사랑을 받는 이들이다. 야곱은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지는 사다리와, 자신을 축복하는 신의 음성을 듣는다. 도망치던 중 신의 음성을 듣는 야곱의 이 체험은, 번제의 제물이 될 뻔 했다가 아브라함이 먼저 산을 내려간 뒤 산 위에 혼자 남았던 이삭이 겪었던 종교적 체험에 겹쳐진다. 에서가 아버지의 연민과 쓰디쓴 희망을 받았다면, 야곱은 신의 약속을 받는다. 야곱이 받는 신의 사랑이 밤 하늘의 별처럼 아름다운 것은, 그가 혼자 있기 때문이다. 이 신과 인간의 관계에 다른 인간이 겹쳐지는 순간, 이 사랑은 다시 재난이 되고 고통의 씨앗이 되며, 구약에서 일어나는 어지간한 큰 사건과 비극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 이기적인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읽는 내내, 역시 나는 종교적인 인간은 결코 될 수 없겠구나 하고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