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 – 데이비드 벨로스, 정혜영, 메멘토

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
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
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

“레 미제라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은 장발장과 은촛대 이야기를 한다. (이건 교과서에도 실렸기 때문에 다들 여기까지는 기억한다) 어떤 사람은 자베르의 이야기를, 어떤 사람은 팡틴과 코제트의 이야기를 한다. 사실 ABC의 벗들이 나오는 부분은 예전에는 제대로 번역 안 되고 넘어간 경우도 많았다. 영화, 그리고 2000년대 들어 나온 완역본들, 인상적이던 뮤지컬, 그런 것들이 이 나머지 부분을 채워 나갔다. 그럼에도 레 미제라블은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다. 생드니 바리케이드는 프랑스 대혁명이 아닌, 그보다 한참 뒤인 6월 반동 때의 일이다. 이때의 국왕은 루이 필리프다.

이 두껍고 방대한 이야기(저자는 레 미제라블이 총 365챕터로 되어 있으므로 하루에 한 챕터씩 읽으면 1년이면 읽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과, 작품 안에서 쓰인 어휘, 많은 판본에서 생략되는 부분들, 그리고 빅토르 위고가 처했던 현실과, 레 미제라블이 출판계약을 맺고 인쇄되어 배본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불문과 교수인 저자는 샅샅이 훑고 지나간다. 읽고 있으면 아득할 정도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다시 주말을 비워 레 미제라블을 읽을 계획을 세우게 만든다.

레 미제라블을 쓸 무렵, 빅토르 위고는 영국령 채널 제도의 건지 섬에 살고 있었다. 나폴레옹 3세와의 정치적 불화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레이디 디텍티브 2권에도 짧게 언급된다) 한때 괴테의 뒤를 잇는 유럽 최고의 천재 작가로 추앙받으며 귀족원 의원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빅토르 위고는 루이 나폴레옹을 비판하며 ‘작은 나폴레옹’이라 조롱하는 글을 썼고, 루이 나폴레옹은 빅토르 위고를 비롯하여 자신의 쿠데타에 분노하고 비판한 추방하고, 위고의 장남인 샤를을 모독죄로 수감했다. 건지 섬에서 나이가 들어가던 위고는 고통스러운 화농성 종기를 앓고 회복된 뒤, 루이 나폴레옹은 자신보다 어리며 어쩌면 자신은 영영 프랑스에 돌아갈 수 없을 것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에, 빅토르 위고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이고 그 존재감을 확실히 보이기 위해 예전에 쓰다가 중단했단 소설을 완성하기로 한다. 그것은 과거에 썼던 “레 미제르”였다.

“레 미제르”(가난)에서 “레 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 : 동정받아 마땅한 불쌍한 사람들, 불운의 희생자라는 의미와 경멸의 의미 둘 다 포함된다.)로 제목이 변경되고, 과거의 소설에서 열 아홉가지의 큰 수정 목록을 만들고, 그는 마침내 당대의 프랑스어 경계를 넓히고, 그 시대의 사회과학적 문제들(주로 가난과 가난을 야기하는 여러 문제들)을 조망하며, 루이 필리프 집권 초기에 일어나 실패로 돌아간 시민 투쟁인 1832년 6월 반동을 재구성한 레 미제라블의 집필에 돌입한다.

『레 미제라블』에서 돈을 세는 방식은 그것이 묘사하는 사회의 구조를 반영하고 강화한다. (중략) 중산층은 여러 단어를 썼다. 먼저 배당금, 이자, 임대, 급료로 받은 소득과 부동산의 자본 가치는 리브르로 표현했다. 리브르는 프랑과 가치가 똑같았기 때문에 수로 잔돈을 세느라 머리를 빨리 굴릴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리브르는 계급을 구분하는 단어였다. 즉 수와 리브르는 빈자와 부자의 돈이 다른 종류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중략) 통용되던 은화 중에 가장 큰 것은 5프랑짜리였으며 ‘5프랑’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수로 계산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100수짜리 동전이었다. (액수가 크거나 부자가 개입돼) 리브르로 계산하는 거래에서 5프랑짜리 동전은 에큐라고 불렸다. (중략) 프랑이라는 공식 명칭은 벌금과 세금, 공공 지출을 언급할 때 쓰였다. 국가와 관련된 돈의 총액이 5프랑 이상이면 프랑을 쓰고, 5프랑 미만일 때는 항상 수로 계산했다.

저자가 설명한 대로, 빅토르 위고는 작중 인물들이 돈을 세는 방식부터 그의 계층, 그의 삶, 그의 성격을 반영했다. 마리우스의 외할아버지이자 왕당파인 질노르망은 10프랑 대신 옛 표현인 60피스톨이라고 말한다. 테나르디에가 장 발장에게 그림을 팔려고 할 때 그는 5천 프랑이라고 하지 않고 1000 에큐를 달라고 한다. 장 발장이 몽트뢰유 쉬르 메르에서 마들렌 시장으로 지낼 때 벌어들인 재산은 금이 아니라 지폐로 인출하고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거액의 재산으로 남아 있는데, 이는 나폴레옹이 도입한 금은 양본위제 덕분에 통화가 안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코제트가 그 돈을 그대로 보관했다가 19세기 말에 손자에게 물려주어도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리라고 설명한다. 한편 장 발장이 1823년에 저축액을 전부 인출하지 않았다면, 1831년 라피트 은행이 청산되며 코제트에게 물려줄 재산이 남아나지 않았으리라는 언급도 한다.)

한편 저자는 레 미제라블 속의 색깔들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당시의 사람들은 우리가 빨강은 어느 당, 파랑은 어느 당, 노랑은 어느 정치인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는 것 처럼 당시의 색상과 그 의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흰색은 1789년 이전 프랑스 왕정 시대 깃발의 바탕색이다. 그래서 흰색은 항상 왕정주의의 대의에 관한 것에 쓰였다. 또한 1830년까지는 흰색이 프랑스 군복의 색으로,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 웰링턴Arthur Wellesley Wellington 부대의 붉은색 옷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청색도 왕실의 색으로 1815년 왕정복고 때 부르봉 왕조의 휘장에 쓰였다. (중략) 반대편에는 가난이나 수치와 연관된 황색이 있었다. 그래서 장 발장이 석방될 때 발부된 통행증에 사용된 색이 황색이다. (중략) 녹색은 귀족이나 왕족 바로 밑에 있는 사회적 상류층의 색이었다.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들은 녹색 옷을 입었고, 정치인과 은행인 들도 녹색 정장을 입었다. (중략) 고대 그리스에서 노예들은 일반 시민과 구별되도록 ‘프리지안 보닛’이라고 알려진 빨간 모자를 썼고, 이때부터 『레 미제라블』에 이르기까지 줄곧 붉은색은 ‘굴종’을 뜻하는 색으로 이용되었다. 툴롱의 감옥에서 장 발장이 ‘붉은 작업복’을 입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잊지 못할 굴욕이었다. (중략) 육상 또는 해상 전투에서 붉은 깃발은 적에게 ‘절대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며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알리는 신호였다.

뜻밖에도 붉은색이 노동자, 좌파를 상징하게 된 데는, “레 미제라블”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했다. 1789년 바스티유에서 왕실 군대는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는 뜻으로 붉은 기를 흔들었지만, 민중은 그 깃발을 빼앗았고, 이는 혁명 군중의 상징이 되었다. 이 때문에 공화정 때에는 청색, 백색, 적색으로 된 3색기가 프랑스의 국기가 되지만, 부르봉 왕조가 돌아오며 다시 청색과 백색 깃발이 된다. 루이 필리프는 공화주의자들을 회유하기 위해 다시 3색기를 사용하지만, 루이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며 다시 3색기는 폐지된다. 그리고 루이 필리프 시대, 바리케이드에서 앙졸라와 그 친구들은 “죽을 때 까지 싸우겠다”는 뜻과 “공화정을 위해” 싸운다는 뜻으로 붉은 깃발을 들어올린다.

말을 타거나 마차를 소유하는 것은 귀족의 방식이고, 삯마차가 있었지만 요금은 비쌌다. 대중교통이라 할 만한 것은 우편마차인 말포스트와 역마차 딜리장스였다. 미리엘 주교는 고위 성작자이지만, 교구에 나갈 때 말을 타지 않고 당나귀를 타고 간다. ‘마들렌 씨’로 불리게 된 장 발장은 구슬 공장을 경영하여 돈을 버는데, 이 구슬은 당시 영국에서 상복에 다는 주얼리로 유행하던 제트(흑옥. 갈탄을 연마한 준보석)를 모방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들렌은 몽트뢰유 쉬르 메르의 시장이고 흑구슬 공장의 사장이었지만 신분증명서가 없었기 때문에, 국가 공채를 구입하고 연금을 받을 수 없는 자, 국가의 보호망에서 소외된 자였다.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레 미제라블에서 당대의 계층과 경제, 가난과 소외를 묘사한다. 특히 팡틴의 삶은 현대 사회과학자들이 빈곤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 그 자체다.

현대 사회과학자들이 빈곤의 사슬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 지목한 원인은 근친의 상실, 재정 지원의 상실, 원치 않은 임신, 낮은 교육 수준, 실업, 임금 하락, 질병, 폭력의 피해, 법적인 문제 등이다. 위고는 팡틴의 삶에서 갈수록 태산이 되는 재앙을 그려 낸다. 팡틴은 (소설의 등장인물 중 거의 유일한) 문맹이고, 예상 못 한 임신을 하고, 아이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재정 지원을 잃은 데다 일자리를 잃고, 바느질 품삯이 떨어지고, 물리적으로 공격당하고, 체포당하며 병까지 걸린다. 그녀의 삶은 가난의 덫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다.

당시에는 가난한 사람은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맬서스의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하지만 위고는 “가난한 사람의 도덕적 타락”은 그저 충분한 일거리가 없어서임을 분명히 한다. 굶어죽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던 마뵈프가 ABC의 벗들이 쌓아올린 바리케이드에서 깃발을 올리고 죽는 모습은, 빈곤이 사회적 불화의 원인이자 혁명의 동인임을 보여준다. 위고는 몽트뢰유 쉬르 메르의 공장을 통해 제대로 된 임금을 주는 일자리가 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현실에서는 레 미제라블의 교정을 보는 사이사이 마을의 빈민 학교 아이들을 격주로 집에 초대해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대접한다. 그리고 빅토르 위고의 이와 같은 실천에 대한 소문이 퍼지며, 런던이나 파리의 중산층들은 이 시도를 본받기 시작한다. 중산층 가정이 빈민 학교의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다가 점심을 먹이는 일은, 공립학교에 구내식당이 도입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한편 위고는 이와 같은 가난과 그에 따르는 고난과 타락을 포르노그라피처럼 묘사하지 않았다.

위고는 「우울」에서 매춘 여성의 삶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레 미제라블』에서도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팡틴의 ‘타락’은 몇 마디만으로 처리된다. (중략) 그런데 그때 이후 영화제작자와 화가, 각본가와 팬픽션 작가 들은 위고가 뺀 것을 도로 집어넣었으며 『레 미제라블』의 현대적 개작에는 매춘부 팡틴의 삶을 보여 주는 장면이 의무처럼 자리 잡았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맨 오브 라 만차” 뮤지컬 생각을 하게 된다. 알 돈자가 자기가 창녀이고 아무하고나 하는 여자라고 울부짖고, 그가 강간을 당하는 모습이 무대 위에서 그렇게 묘사될 필요가 있었는지를. 그리고 남성작가들의 한국 근현대 문학에서 여성의 수난을 역겨울 정도로 눈요깃거리로 그리는 태도를.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나 무대화에서도 팡틴의 수난은 종종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그려지는데, 저자는 “영화감독들은 위고가 일부러 생략한 부분을 굳이 돌려놓는 경우가 있다.”라고 이 점을 꼬집는다.

한편 불문과 교수가 쓴 책인 만큼, 이 책에서 “레 미제라블”의 어휘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도 무척 흥미롭다.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을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방대한 어휘를 사용하며, 문학에 쓰이는 프랑스어의 조합을 확장했다. 그 중에는 레 미제라블이 쓰여지기 200년 전에나 쓰이던 단어(손가락 통풍을 의미하는 쉬라그르chiragre 등)부터, 다양한 프랑스 방언들, 혹은 빅토르 위고가 창조해낸 것으로 의심할 만한 단어들도 있다.

아무리 큰 프랑스어 사전에서도 『레 미제라블』에 등장하는 단어를 모두 찾을 수는 없다.

심지어 이 작품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이전에는 프랑스에 없던 것들이다. 장 발장의 이름은 “어이, 너”를 뜻하는 부알라 장Voilà Jean에서 왔다. 코제트와 팡틴이라는 이름도 위고가 고안해낸 것이다. 에포닌의 이름은 남편인 율리우스 사비누스와 함께 죽게 해달라고 요구했던 에포니나에서 따온 것이다. 흔히 “종달새 코제트”라고 나올 때의 종달새는, “레 미제르”에서 팡틴에 해당하는 인물, 마르그리트 루에트에서 온 것이다. 당시 낮은 계급 사람들은 성에 정관사를 붙이는 식으로 불렸는데, 마르그리트 루에트의 딸은 라 루에트La Louet라고 불렸고, 이는 종달새l’alouette와 같은 소리가 난다. 빅토르 위고는 장 발장의 입을 통해 “이름은 곧 자아”라고 말하는 한편, 가브로슈가 자신이 동생인줄도 모르고 돌봤던 두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이름이 없는 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한편 레 미제라블은 출판 역사상 가장 큰 거래이기도 했다. 빅토르 위고는 “오늘 『레 미제라블』을 브뤼셀의 베르보크호븐 사의 라크루아에게 12년 동안 현금 24만 프랑과 옵션 6만 프랑에 팔았다. 그들이 고슬랭·랑뒤엘 계약을 인수했다. 오늘 아침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일지에 적었고, 라크루아는 시중 은행들의 대출을 받아 계약금을 지불하는, 예술 작품 창작을 위해 투자 자본을 이용한 첫 사례가 된다. (그리고 빅토르 위고는 계약금을 이율 3%인 영국 정부 공채에 투자한다.) 한편 조판은 브뤼셀에서 이루어졌고, 교정은 빅토르 위고가 살고 있던 건지 섬에서 진행되었다 보니, 주에 세 번 운항하는 우편선을 통해 한 주에 160통에 달하는 우편물을 보내면서 교정이 이루어졌다. 웹하드에 PDF 지금의 교정과 비교하니 아득한데다, 우리 집과 파주의 거리 정도만 생각하다가 갑자기 건지 섬과 브뤼셀의 거리를 생각하니(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한 만큼의 거리다)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나 싶다. 한편 레 미제라블은 엠바고 하에서 출판된 첫 작품이고, 본문 내용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등장인물의 그림 스물 다섯 장을 포스터로 인쇄한 것으로 광고를 했으며, 라크루아는 인구 규모와 1부인 “팡틴”의 수출 비율을 계산해 빅토르 위고의 국가별 인기도와 프랑스어 문해율 분포도를 만들었다. 사실상 이것은 최초의 현대적인 국제 서적 출판과 마케팅의 시초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편 이 책을 읽는 내내, 빅토르 위고의 아내인 아델과 정부인 드루에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다. 원래 배우였던 드루에는 빅토르 위고의 오랜 정부였고, 그가 추방을 당하자 건지 섬까지 따라온다. 위고의 아내인 아델은 자신의 집에 드루에게 들어오지 않는 조건으로 드루에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후 드루에는 위고의 필경사 노릇을 자처하며, 그가 휘갈겨 쓰거나 중간중간 수정하고, 종이의 크기도 통일되지 않은데다 쪽수를 세는 방식도 어려운 위고의 육필 원고를 정서하여 레 미제라블을 완성했다. 작품 내에 자신의 개인적인 날짜들을 새겨넣은 위고는 자신과 드루에게 연인이 된 날짜를 이 작품에서 가장 행복한 대목인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결혼식 날로 정했다.

한편 아델은, 파리에 올 수 없는 빅토르 위고를 대신하여 각종 마케팅을 결정했다. (등장인물들의 포스터를 걸게 한 것도 아델이다) 빅토르 위고의 곁에 있었던 두 여성의, 겉으로 바로 드러나지 않았던 저마다의 탁월한 능력에 대해 생각하는 한편, 결국 이 위대한 작가는 이 두 여성의 인생을 착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빅토르 위고가 아내 외에 드루에하고만 만난 것도 아니다. 그는 유부녀인 레오니 비아르와 간통을 하다가 경찰에게 발견되었고, 재판을 받아야 했다. 발자크는 “사촌 베트”에서 이 일을 조롱하기도 하고, “엑토르 윌로”라는 이름의 호색한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한 시대의 미시사와 같은 작품, 세기적인 출판계약과 출판 유통의 혁신을 가져온 소설이지만, 그 집필 과정에서 아내와 정부의 역할을 그저 “노고”라든가 “활약”이라는 말로 이야기하고 넘길 일일까, 싶어지기도 했다.

어쨌든 이 책은, “레 미제라블”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든다. 체크해 둔 부분들을 중심으로 주말에 다시 책을 읽든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