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7] 시계들

“4개의 시계”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소설. 그쪽 제목은 아마도 “네 사람의 서명”과 비슷하게 톤을 맞춘 것일 텐데, 제목만으로는 그쪽이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콜린 램은 배틀 총경의 아들이고(아버지의 이름이 직접 나오진 않는다), 아버지의 지인들인 아리아드네 올리버와 에르퀼 푸아로와도 아는 사이다. 그는 현재 첩보원으로 극좌파 스파이를 추적하던 중, 초승달과 61, M이 적힌 메모지를 단서로 윌브러햄 크레센트 가를 지나던 중, 살인사건 현장을 발견하고 놀라 달려나온 속기사 실라 R. 웨브와 마주친다. 캐번디시 비서 및 속기협회 소속인 실라는 해당 주소의, 펩마시 부인의 지명을 받아 이 집에 도착했고, 웬 남자가 살해된 것을 발견했다. 집주인인 밀리슨트 펩마시 부인은 맹인으로, 속기사를 부른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살인사건의 현장인 펩마시 부인의 집에는 그녀가 모르는 시계 네 개가 발견된다.

최초 발견자인 실라가 자연스럽게 용의자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콜린은 극좌파 스파이를 추적하는 임무 겸 실라가 누명을 쓰지 않도록 친구인 하드캐슬 경위와 함께 윌브러햄 크레센트 가를 누비며 탐문한다.

이야기는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뉜다. 하나는 핸리 캐슬턴으로 알려진 살인사건 피해자, 캥탱 뒤귀스클랭 씨는 왜 죽었으며 누가 죽였는가, 또 하나는 실라와 펩마시 부인의 관계, 나머지 하나는 콜린이 뒤쫓던 스파이의 정체에 대한 것. 콜린이 들고 있던 첩보 관련 단서를 보면, 콜린은 아무래도 훌륭한 아버지와 달리 수사에는 재능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자는 콜린보다 조금 먼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서, 읽을 때의 완급이 무척 즐겁기도 하다. 브라유 점자로 된 비밀 문서라니, 뜨개바늘로 종이에 구멍을 내거나 머플러의 무늬로 암호를 남기기도 하는 마당에 이런 것에 허를 찔리는 것도 편견이겠지만 그래도 읽고 아차, 하게 되는 건 여전하다.

이야기의 중반에서 에르퀼 푸아로는 당대의 여러 추리소설을 대놓고 품평한다. 아르센 뤼팽 시리즈며 노란 방의 비밀을 칭송하고, 셜록 홈즈를 이야기하다가 헤이스팅스를 그리워한다. 문득 곽재식 작가님이 단편소설에 SF 작가들의 실명을 줄줄이 등장시켰던 것이 생각나서 잠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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