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2] 하나, 둘, 내 구두에 버클을 달아라

예전에 읽었을 때의 제목은 “애국살인”. 처음 읽을 때는 이게 그 책인지 제목만 보고는 알 수 없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의 분위기와 많이 다른 제목을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히코리 디코리 독”이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생각하고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니, 숫자를 세는 영어 동요에서 온 제목이고, 챕터의 형태 또한 그렇다.

앰버라이어티스와 앨버트 채프먼(A.C)을 보면 “제임스 본드 시리즈” 같은 첩보물,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같은 MI6같은 첩보기관이 나오는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던 것 같다. 사실 “빅포”나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열망들은 느껴지지만,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그렇게까지 본격 첩보물로는 가지 않았다. 그럴듯해 보이고, 이들의 존재가 어느정도 맥거핀으로 잘 쓰인 만큼, 소설보다 영상에서 더 흥미진진하게 살릴 수 있었을 설정 같다.

대신 이 이야기의 가장 즐거운 부분은 역시 도입부. 은하영웅전설에서 양 웬리는 “영웅은 선술집에 가면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반대로 치과 의사의 치료대에는 한 명도 없다.”는 말을 남겼는데, 아마 다나카 요시키는 이 소설에서 그 말을 따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전의 원전이 어디였는지는 더 찾아봐야 할 것 같지만. 시리즈를 통털어 미식, 그것도 달콤한 것들을 즐기던 에르퀼 푸아로는 치과 진료를 받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날, 그가 다니던 치과 의사인 헨리 몰리가 진료실에서 살해당한다. 책의 서술상으로는 마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것 처럼 느껴지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실질적으로 사각지대가 없는, 거의 밀실에 가까운 치과 안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게다가 이 치과 의사의 환자들 중에는 권력을 쥔 상류층 남자 앨리스테어 블런트도 있었다.

가짜 결혼, 첩보원들, 아주 사소한 실수로 빚어진 사고인 것 처럼 위장하여 중요한 사람을 살해하는 방식, 똑같은 옷을 입혀 얼굴을 망가뜨리는 트릭에, 여기에는 한 가지 더 장치를 해 두었다. 하지만 이 전집의 다른 시리즈들에 비해 무척 읽기가 어려웠다. 예전에 해문판을 볼 때보다 힘들었던 걸 보면 역시 번역의 문제인 걸까. 마지막에 범인은 나라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푸아로를 회유하려 하지만, 회유에 넘어가지 않는 장면만큼은 하드보일드하게 좋았다. 하지만 이게 이렇게 읽다가 헛갈리는 이야기가 아니었을 텐데. 읽으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