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0] 움직이는 손가락

어떤 소설들은 읽는 시기에 따라 다른 것들이 읽히곤 한다. 그렇게 시대의 변화나 읽는 사람의 연령 변화에 따라 새로운 것이 보이는 소설들, 인간 본성에 대한 여러 겹의 레이어로 이루어진 소설들은 세월이 흘러도 낡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남는다.

2020년에 다시 읽은 이 소설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 생전에는 아마 없었을, 악플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된다. 받는 사람의 수치스러운 비밀, 혹은 받는 사람에게 일부러 오명을 덧씌우거나 놀라게 할 목적으로 보내 온, 인쇄물을 잘라 붙이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여성회관 타자기로 타자를 친 수상한 편지들은 라임스톡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전쟁 중 부상을 입은 폭격기 파일럿 제리 버튼과 그 동생 조안나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불륜들을 고발하는 수상한 편지들이 마을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가운데, 리처드 사이밍턴 변호사의 부인은 수상한 편지를 받고 자살한다.

사이밍턴 부인에게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메리 헌터와, 현 남편인 사이밍턴 변호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이 있었다. 두 아들은 가정교사인 엘시 홀랜드가 돌보고 있었다. 사이밍턴 부인이 죽었으니 변호사가 재혼을 할 텐데, 그를 연모하던 에이미는 미인인 엘시 홀랜드를 질투하여 협박 편지를 보낸다. 사건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미스 마플이 이 마을에 나타난다. 적극적이고 씩씩한 갤드로프 목사 부인의 초대를 받고.

두 사람이 살해되는 동안, 작중 인물들은 여성회관의 타자기를 사용한 범행이니 여성이 범인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인터넷상의 많은 남성 악플러들이 종종 여성의 말투를 과장되게 흉내내며 자신이 20대 여성이라고, 혹은 아기 엄마라고, 자신이 비난하고 싶은 대상인 척 하면서 악플을 남기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범인에게 있어 그 수상한 편지는 목표물을 없애기 위한 것일 뿐, 그 외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야말로 아무 말이나 악담을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한 것도. 그 악플, 아니 수상한 편지를 쓴 인물의 실체는 멀끔한 인물인 것도. 애거서 크리스티가 21세기의 악플러들을 보고 듣고 겪고서 과거로 돌아가 이 소설을 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시대이고 다른 이야기를 말하고 있지만, 이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분들이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