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고 – 박경리, 마로니에 북스

일본산고
일본산고

1926년 출생한 박경리는 만 20세까지의 시간을 온전히 일제 강점기 속에서 지내야 했다.

이 대목을 읽자마자 언젠가 선생님과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마 박완서 님 이야기 하다가 나온 이야기였을 거다. 과연 박경리, 박완서 같은 분의 문학적인 모어가 한국어일까, 일본어일까 하는 것. 박완서 님은 한국전쟁 때 대학생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최소 중학생 때 까지, 박경리 님은 해방될 때 스무 살이었으니 청소년기 내내를, 일본어를 교육의 언어이자 세계문학을 접하는 언어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집에서는 한국어를 쓰고, 어릴 때는 한학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청소년기에 정규교육에서 습득한 문학, 청소년기에 읽었던 세계명작의 언어는, 그 세계관은 어디의 것이었을까에 대해. (어째서인지 그날 남성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안 했던 것 같다. 채만식 정도만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 그 외에는.) 그러고 보니 “박완서의 말”에도 그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는 일본어 세대잖아요. 그래서 해방 후에 시조를 배우고 고전을 공부하면서 우리말에 대한 놀라움이 굉장했어요. (중략) 당시 저는 일본 소설을 한참 읽을 때라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지요. 그 당시 사춘기 소녀를 겨냥한 달착지근하면서도 쌈빡한 일본 소설을 많이 읽으며 저도 모르게 길들여졌던 거예요. 지금도 그런 문장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있어요.

그 한 문장에서 그런 것들을 한참 생각했다. 작가의 세계관이 구체화되는 시기, 한껏 문학을 빨아들이고 안에서 익어가기 시작하는 시기에 대해.

나는 1926년 일제시대에 태어났고 1946년 20세 때 일본은 이 땅에서 물러갔다. 그러나 일본어 일본 문학에 길들여진 나는 그 후에도 꽤 긴 세월 지식을 일본서적에서 얻은 것은 사실이다. 왜 이런 말이 필요한가 하면 오늘날 일본인들 60대가 가지는 기본적인 일본 문화에 대한 인식이 있다는 얘기며 내 자신이 공평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 때문에 내 스스로 나를 점검해 본 것이다. 오히려 내 시각과 판단과 기준에 정직할 수 없는 흔들림조차 있다. 민족적 감정 때문에 사시(斜視)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염려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사시(斜視)가 된다면 일본의 그 엄청난 사시(斜視)에 대하여 논할 자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대로, 작가의 일본에 대한 체험이 “아픈 기억이자 굴레였으며 한편으로 분석과 극복의 대상”이었으며, “토지”가 “소설로 쓴 일본론”이라는 이야기에 대해 읽는 내내 곱씹게 되었다. 이 책은 박완서 님이 여러 강연과 지면을 통해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그 문화에 대해 언급한 것을 정리하고 있다.

일본은 아이누, 유구, 대만에 대해서는 부인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조상(祖上)에 관한 한, 민족원류에 관해서 그들은 부인한다. 한국의 원류를 부인하면서 한국의 모든 것을 부인한다. 집요하게 광적으로.

작가는 이 책에서 먼저 한국과 일본의 “원한”에 대해 이야기한다. 침략을 당한 우리가 품는 증오나 원한이야 일면 당연해 보이지만, 작가는 일본 역시 한국에 대해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고 본다. 과거의 열등감이나 정복자의 속성과는 다른 집요함에 대해 말하며, 우리와 일본 사이에 명확하게 선을 긋고 시작한다. 옆 나라이고 문화적인 영향을 끼쳤다거나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역사의 문제로 남겨두고, 우리와 일본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해 말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차이에 대한 지적은, “종교적 근거, 사상적 내용이 없는 신도(神道)”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일본만큼 하늘 천(天) 자와 영접할 신(神) 자를 애용하는 나라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연표만 뒤적여도 그런 글자는 수두룩하다.

일본의 신화와 역사 속 명칭들을 먼저 짚으며, 일본 신토의 샤머니즘적 형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기적이나 메시지, 미래에 대한 약속이 아닌, 권력의 상속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연애놀음. 이 세계는 겐지모노가타리와 맥을 같이하고 일본 문학을 관류한다. 신토의 신은 내세를 약속하지 않는다. 일본은 아마테라스의 자손이 다스릴 거라고 했지, 다른 종교적 이야기가 없었다. 일본에도 불교나 유교가 전래되었지만 주로 형식적인 면 위주로 받들 뿐, 구원은 되지 않았다. 불교적 세계관은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와 같은 허무주의를 심어놓았다. 실질적으로 사상의 바탕이 되었어야 할 신토는 종교나 도덕이 아닌 권력과 상속의 문제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이 작가의 관점이다. 이런 점을 작가는 “신의 축복이 없는 나라”라고까지 말한다.

신의 축복이 없는 나라 일본, 역사상 한 번 기회가 있었다. 시마바라[島原]의 난으로까지 몰고 갔으나 섬멸되고만 천주교도들, 답회령(踏繪令)으로 수 없는 순교자를 냈던 그때, 아마테라스를 뛰어넘고 영혼의 구제로 향한 죽음들이 있었다.

민족의 정서 면에서도 (한국의 민족 정서를 점잖으면서도 정신적 사치스러움과 다소의 해학이 포함된 것으로 설명한 것에 대해서는 어쩐지 너무 좋게 쓴 게 아닌가 싶지만) 한국이 낙천적이고 동적이라면 일본은 와비(侘)와 사비(寂),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와 같은 쓸쓸하고 정적이며 우수와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한국인이 체념한다면 일본인은 단념한다고, 타협이나 순종 없이 끊어버리는 쪽이라고 대조하여 이야기한다. 이 허무주의는 한 개인의 고통을 극대화하는 사도마조히즘의 극단적 형태, 할복으로 나타난다.

어떤 경우에도 고통이 적은 방법을 취하는 것이 본능이다. 추악하고 잔혹하고 야만적인 그 자살 방법에 일본은 그야말로 긴란[金襴], 돈수[緞子], 비단을 휘감아서 미화하고 일본 정신의 표본으로 자랑한다.

그리고 일본의 문화로 넘어오며, 작가는 괴기와 탐미, 로맨티시즘과 같이 감각에 충격을 주며, 휴머니티의 결여, 윤리 부재, 반도덕적인 면을 지닌 감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고이(凄い)라는 말에는 “오싹하게 소름끼친다”는 의미가 들어 있고, 작가는 여기에서 괴기와 탐미를 읽는다. 이와 같은 괴기와 탐미는 일상/삶과 대비된다.

일본 문학의 주류를 이루는 것이 바로 그 같은 특이한 세계인데 일본민족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로맨티시즘과도 무관하지 않고, 이런 것들이 통속으로 떨어지면 괴기는 괴담으로, 탐미는 외설로, 로맨티시즘은 센티멘털리즘이 되는 것입니다.

자살의 미학이나 할복을 일그러진 사도마조히즘으로 보고 나면, 카미가제를 꽃에 비유하던 일본인들의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죽음으로 내몰려 죽음에 직면한 공포를 죽음으로 극복하려는, 비명과 울부짖음과 몸부림, 고통까지 경직되어버린 가장 약한 자의 현실”에 대해 말하던 작가는 문득 질문한다. 쇼와 덴노의 장수를 기뻐하는 지식인들을 두고, 그들은 그 많은 죽음의 책임자가 오래 사는 것을 어째서 감격하는가, 어째서 그들 일본인들은 오로지 군왕 혼자만을 위한 노래인 기미가요를 부르는가에 대해서.

어느 역사건 절대 권력과 절대 복종은 있어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수없이 변화하여 흘렀다. 다만 일본만은 고착하여 변할 줄 모르고 시간을 멈추게 하고 있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독특한 체제 밑에서 일그러진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말하던 작가가, 만약 살아서 지금의 아베를 본다면, 그들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나, 주변 국가와의 무역 문제에 대해 취하는 자세를 보신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그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으며, 그들이 2차 세계대전 때 했던 실수를, “이웃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도 깊은 화상을 입고 재기 불능한 경우”에 다시 빠져들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설마 백 년도 안 되는 세월 동안 또 그러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당황하실 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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