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 박막례, 김유라, 위즈덤하우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박막례님 유튜브는 본다기보다는 듣는 쪽(일을 하면서 다른 화면을 보긴 어려우니까)인데, 이번에 박막례님과 김유라 PD의 책을 읽었다. 맨 앞에 나온 말이 인상적이었다.

70여 년간 총 6가지 직업을 가졌으며, 현재 직업은 유튜브 크리에이터.

평범한 할머니, 인 동시에 일하는 여성임을 확실히 하는 그 말이 무척 좋았다.

나는 오빠들 얼굴도 모르고 그저 죽었다는 소식만 들었다. 우리 아부지는 집안에 아들이 없으니 가르칠 사람이 없다며 남자 조카에게 공부를 가르치셨다. (중략) 아부지는 여자가 글을 알면 결혼해서도 집을 나간다며 언니들도 가르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막내니까, 그래서 이름도 막례니까 대들 수도 없었다. 남자 조카아이가 공부하는 동안, 나는 그 방에 땔감을 넣기 위해 한겨울에 산을 탔다.

책의 앞부분은, 그야말로 박막례 님의 인생, 아니, 그 시대를 비슷하게 살아왔을 현재 70대 이상 여성들의 인생역정 그 자체였다. 공부하고 싶었지만 여자라서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어찌나 유난인지 찬밥은 안 먹는 아버지에게 밥을 차려드리느라 하루종일 일하다가도 집에 뛰어들어와야 하고, 결혼을 했더니 남편이 돈을 안 벌어와서, 보리 한 가마 돈을 착실히 불려서 일곱 가마를 만들어서는 남편에게 서울에서 살 집을 얻어 놓으라 했더니 남편은 그 돈으로 옷을 뽑아 입고 다 털어먹고. 그 와중에 아이들은 태어나고. 박막례 님은 하루에 세 집에 파출부로 나가고,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밤 늦게까지 일한다. 겨우 돈을 모았더니 고향 동생이며 먼 친척에게 사기를 당하는 등 시련을 겪으면서도, 이분은 부지런히 밥장사를 했다. 그렇게 돈은 모았지만,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은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을 때, 치매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 할머니처럼 살기 싫었다는 거다. 70 평생을 아버지 때문에, 남편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허리가 굽어라 일만 하며 살다가 “박막례 씨, 치매 올 가능성이 높네요.” 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불쌍한 인생.

그리고 이분이 키운 손녀 김유라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할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김유라 PD는 할머니인 박막례 님께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고, 박막례 님은 낯선 여행 속에서 손녀가 준비한 온갖 경험들을, 그야말로 두려움없이 덤벼들며 누리고 걸죽한 입담으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물에 빠질 뻔 했다가도 다시 들어가고, 첫 시도에 실패해도 다시 보드에 도전하고 아침 요가를 시도한다.

그러니까 박막례의 인생 역전은 내가 옆에서 등 떠민 게 아니라, 이날 다시 바다로 직접 그 두 발로 걸어 들어간 할머니의 용기에서 시작된 기적이었을 것이다.

사실 박막례 님의 인생이나, 호기심과 즐거움, 입담이 가득한 그분의 유튜브 채널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특히 관심이 간 부분은 김유라 PD의 역량이었다.

유튜브를 하면서 손녀의 입장에서는 할머니의 행복이 내 목표이지만, PD로서의 목표는 이 채널의 가치를 인정받고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2018년 5월, 구글 I/O 행사를 갔을 때 수잔을 찾는 컨셉의 영상은 사실 CEO 수잔 워치츠키(Susan Wojcicki)를 정말 만나고 싶어서였다. (중략) 수잔이라는 사람, 어쩐지 우리 할머니를 좋아해줄 것 같은 성품을 지녔을 것 같았다. 우리 채널의 탄생 비화와 할머니의 인생 역전 스토리에 충분한 감동과 축하를 해줄 수 있는 따뜻함과 현명함을 지닌 사람!(중략) 수잔에게 시그널을 보냈다. 그게 바로 구글 I/O 2018에서 탄생한 「수잔을 찾아서(Searching For Susan)」 영상이었다. (중략) 마침내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박막례 님은 스타가 되었지만, 한국 언론에서도, 또 국내 기업에서도 그다지 적극적으로 이분과 접촉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언론이 원하는 푸근한 어머니 상과는 또 다른, 좀 센 캐릭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요즘 성공하는 여성들에 대해 언론이 이야기를 피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박막례 님의 성공은, 누가 이야기를 하든 말든 사실이다. 이분의 캐릭터와 방송, 그리고 할머니의 역량을 가늠하고, 할머니의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상을 편집해내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벤트를 만들(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유튜브 CEO를 만나기까지, 저렇게 목표를 갖고 손을 쓴 것만 해도 그렇다) 능력이 있는 사람. 그 할머니와 손녀 듀오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작게는 웃음과 즐거움을, 크게는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의 말처럼 영감을 주고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걸 못 견뎌 하지.

실은 어제 그제… 트위터 모 씨가 박막례님을 두고 마구 추하게 질투해댔다. 그것도 남의 “행운”내지는 “평범한 촌부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너무너무 질투가 나서 견딜 수 없다는 식이었다. 사실 재능있는 또래 사람이 성공하거나 행운을 손에 넣은 것을 미친듯이 질투하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만, 평생 고생하시던 할머님이 9회말에 홈런을 치신 것에 그렇게 질투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나는 그 사람이 평소에 교양있고 예술 좋아하던 것 처럼 말하던 것을 생각하며 좀 웃었는데.

그랜마 모지스 몰라?

남들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한 70대에 재능과 시운과 새로운 시도가 맞아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 화가. 미국의 민화라는 말을 듣고, 메트로폴리탄에 전시도 되었고, 지금까지 아트포스터나 퍼즐로 그분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도 있다. 자서전도 있지. 그 자서전에서 보았던 그랜마 모지스의 인생역정을 생각하면, 박막례님과도 참 닮은 부분이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물론 “별 것 아니지 생각했던 할머니였던” 그랜마 모지스가 주목을 받자, 평단은 촌스럽네 어떻네 추하게 질투해 대긴 했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의 역자 류승경님 후기에는 그런 대목이 나온다.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 갈 수록 미국 화단과 평단에서는 그녀를 외면했습니다. 유명해지기 전에는 호의적이었던 평론가들도 작품의 상업화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등을 돌렸지요.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이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로 홍보된 탓에 화단이 내세운 추상표현주의가 뒤로 밀려났다는 불만도 컸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때 질투하던 그들을 지금 우리가 기억하던가요. 어휴, 저 꼴을 21세기에 실시간으로 볼 줄은 또 몰랐네.

솔직함과 재능,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고된 시대를 여성으로서 특히 고생하며 지나온 여성 노인이 화폭, 또는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를 만나면서, 질곡어린 인생 자체에서 비롯된 이야기와 자신도 몰랐던 재능이 결합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게 뭐가 어때서. 추한 질투 따위에 굴하지 마시고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시고 계속 성공하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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