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질 볼트 테일러, 윌북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재작년인가, 한쪽 손이 몇 시간 정도 움직이지 않았던 적이 있다. 물론 양손의 악력이 갑자기 차이가 난다는 걸 깨닫자마자 가까운 병원에 내 발로 걸어가 이야기를 했고, 응급으로 MRI를 찍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지만, 그 일 이후로 폴리코사놀 같은 건강식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튼 내가 태어난 이후 계속 나와 함께 해 왔으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내 뇌는 소중하니까.

우리 몸을 구성하는 여러 유형의 세포들은 대부분 몇 주 혹은 몇 달을 주기로 죽고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다. 하지만 신경계를 구성하는 세포인 뉴런의 수는 (대개의 경우) 우리가 태어난 뒤로 늘어나지 않는다. 이 말은 지금 여러분의 뇌에 있는 대부분의 뉴런이 여러분과 같은 나이라는 뜻이다.

그건그렇고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역시 트위터 덕분. 생각해보니 트위터가그렇지 않아도 책으로 가산을 탕진해대는 나의 독서생활에 또 다른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여튼 읽는 인간과 쓰는 인간, 만드는 인간 등등이 수두룩한 곳이니까.

누군가가 리디북스로 그 문장을 인용해 올렸다.

나는 인간의 뇌가 현실을 인지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놀라운 통찰을 안겨주는 뇌졸중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문장을 본 순간 중얼거렸다. “와오.”

그리고 바로 결제했다. 저런 책을 어떻게 안 볼 수가 있겠어.

저자는 뇌과학자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오빠가 있고. 그런 오빠와 자신의 차이를 생각하며 어릴 때 부터 인간의 뇌에 흥미를 가져 왔다. 그리고 30대의 어느 날, 뇌졸중이 일어났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네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해! 이 뇌졸중 경험을 기회로 삼아서 인지능력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제대로 살펴보는 거야.’

그리고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서 병원에 실려갈 때 까지, 자신의 뇌가 외상을 입고 점점 기능을 잃어가는 과정들을 최선을 다해 기억하고 기록한다.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아, 이거 멋진데!’ 일시적으로 황홀한 마비 상태에 빠졌다. 내가 이렇게 복잡한 뇌의 작용을 예기치 않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실은 다 생리적 이유를 알고 있어서였다는 생각이 들자 묘하게 우쭐한 기분이 되었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자신의 뇌 기능을 연구하고 그것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 과학자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읽는 독자는 “안돼요 작가님 빨리 병원에 가” 소리가 먼저 나오지만, 그 직후 이 사람의 뇌 일부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인해 정상 작동을 하지 못하며 911이라는 숫자조자 제대로 떠올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이야기를 바로 읽고 얼마나 긴급한 상황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외상을 입은 뇌에 구멍이 점점 커져가는 것이 무척이나 매혹적인 경험이었음을 여기서 밝혀두고자 한다. 한때 중요해 보였던 세상사가 이제는 보잘것없게 여겨졌다. 그 보잘것없는 세상의 일에 나를 얽어매던 재잘거림이 멈추고 침묵이 찾아왔다. 이제 신경의 초점을 내부로 돌린 나는 신체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수십억 개의 똑똑한 세포들이 힘을 합쳐서 열심히 일하며 내는 규칙적인 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이 상황에, 통증과 함께 편안함을 느낀다. 그동안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던 머리의 다른 부위들이 동작하는 느낌, 정상적인 지각을 넘어서고 자신의 경계가 옅어지는 느낌 속에서 저자는 희열마저 느낀다. 읽으면서 임사체험에서 빛이나 천국을 보고 왔더라는 이야기가 결국은 이런 감각의 확장이 아닐까 생각했다.

살아서 움직이는 조직들로 복잡하게 구성된 내 몸과 처음으로 일체감을 느꼈다. 내가 지성적 능력을 지닌 수많은 세포들로 가득찬 존재임을 깨닫게 되자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사라지지 않는 혹독한 머리 통증은 힘겨웠지만, 나는 정상적인 지각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의식이 평온한 상태로 빠져들자 마치 하늘나라에 온 것만 같았다.

저자는 운이 좋았다. 본인 스스로 전문가였고, 가야 할 병원과 받아야 할 치료를 알았으며, 그의 어머니는 다시 아이를 처음부터 키우듯이 저자의 뇌를 훈련시키는 것을 도와주었다.

친구 스티브가 어린 두 딸이 읽는 책과 장난감을 가져다주었다. 가방 속에는 아이들이 갖고 노는 퍼즐과 게임도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연령대에 맞는 활동들을 훤히 꿰뚫고 있어서 내가 깨어나 기력이 있을 때면 부지런히 움직이도록 도와주었다.

지금 내가 바로 이제 막 언어의 세계에 진입하려는 돌 미만의 아기와, 한참 어휘가 폭발하는 유치원생과 함께 살고 있다 보니 이 대목이 특히 신경쓰였다. 저자의 어머니는 단답식 질문을 배제하고 주관식으로 대답하게 했다. 머릿속의 옛 파일들을 찾고, 깊이 사고하게 유도하기 위헤서였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어휘를 되찾기 시작한다. 뇌 속의 잃어버린 파일들을 복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냅스들을 연결해간다. 지금도 저자는 닌텐도 두뇌 훈련 게임 등의 도구를 활용하여 두뇌를 훈련하고, 수상스키 등의 운동을 통해 몸과 뇌의 연결을 강화하고 있다.

색깔이라는 도구를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내가 색깔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로 충격이었다. 좌뇌가 색깔이라는 정보를 등록하려면 색깔에 대한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리고 그 모든 재활 과정에서도 저자는 자신의 뇌가 보이는 온갖 반응들을 기록한다. 이걸 어떻게 다 기억했지? 아팠을 때는 그렇다고 치고, 이 재활 기간에는 누군가에게 구술을 했던 것일까? 아니, 어떤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록을 하곤 한다. 적어놓고 그걸 스스로 읽지 못할 지언정, 그걸 기록할 방법들이 있었겠지.

이 경험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내가 글자를 타이핑하고 나서우뇌 방금 쓴 것을 읽지 못한다는 점좌뇌이었다!

그리고 전문가인 저자는, 어쨌든 완벽하게 예전으로 돌아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뇌졸중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도 않는다. 여기에는 뇌의 역동성과 가소성이 기여한다.

나의 뇌는 새로운 자극에 흥분했고, 적절한 수면으로 균형을 맞춰주면 기적이라 할 만한 치유력을 보여주었다. (중략)  내 경우에는 뇌졸중 이후로 8년 동안 뇌의 학습 및 기능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8년이 지났을 때 몸과 마음이 완전히 회복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뇌는 외부 자극을 기반으로 세포의 연결 구조를 바꾸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이런 뇌의 ‘가소성可塑性’이 잃어버린 기능을 되찾게 하는 기본적인 힘이 된다.

그리고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도 있다. 아마 이건 뇌졸중 환자 뿐 아니라 뇌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다들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일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특히 밑줄을 그어 가며 읽었다.

세포의 물리적 치유 과정에서, 충분한 수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뇌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뇌의 에너지는 수면으로 채워졌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에너지 자극이 감각계로 쏟아져 들어왔다. 빛의 입자들이 망막 세포를 자극하고, 음파가 고막을 혼란스럽게 때려서 금세 기진맥진했다. 그러면 뉴런들은 뇌의 요구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들어오는 정보를 금방 놓쳐버리곤 했다. 자극은 정보를 처리할 만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나의 뇌는 보호받아야 할 상태였다. 따라서 소음으로 들리는 불쾌한 감각 자극에서 멀어져야 했다.

그렇군. 그렇지 않아도 내가 다니는 병원 의사 선생님도, 내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 중 상당부분이 수면부족에서 기인한다고 뭐라고 하셨는데.

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중증 정신병의 모든 징후에는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세포가 어떤 세포와 어떤 화학 물질을 얼마만큼 주고받는가가 정신질환 발병을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 뇌 연구는 정신병의 바탕이 되는 신경 회로의 이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의 지식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 건강을 효과적으로 돌보도록 도와줄 방법도 늘어날 것이다.

한편 이 책에서는 좌뇌와 우뇌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하고 있다. 좌뇌가 제 기능을 잃었던 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 과학자인 저자는 꼼꼼히 기록하고 분석했다. 이성과 본능이든, 소자아와 대자아든, 연구자와 외교관이든, 남성과 여성이든, 음과 양이든, 감각과 직관이든, 무엇이라도 양쪽 뇌에는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좌뇌의 언어 중추와 정위연합 영역이 기능을 멈추었을 때 내 우뇌는 깊은 마음의 평화 상태에 들어섰다. (중략) 티베트 수도승과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녀들을 불러 SPECT 기계 안에 들어가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올리게 했다. 이어 명상이 절정에 달하거나 신과의 합일을 느끼는 순간, 실을 잡아당기도록 했다. 이 실험을 통해 뇌의 특정 부위의 신경 활동이 달라지는 것이 확인되었다. 첫째, 좌뇌 언어 중추의 활동이 감소해 뇌의 재잘거림이 멈추었다. 둘째, 좌뇌 상두정이랑에 위치한 정위연합 영역의 활동이 감소했다. 이 부위는 우리가 신체 경계를 확인하도록 돕는 곳이다. 이 곳의 활동이 억제되거나 감각계로부터 들어오는 입력의 양이 줄어들면, 우리는 공간감을 잃고 우리 몸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좌뇌와 우뇌의 본질적 차이에 대해서는 교육학 쪽에서 거의 골상학이나 혈액형 성격학같이 다루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팔짱을 끼거나 손깍지를 끼는 것을 보고 아이의 성격을 추측할 수 있다거나)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는데, 학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는 것을 보니 그건 교육학과 결합하면서 뭔가 왜곡된 것일 뿐, 이에 대해 다시 좀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우뇌에게는 ‘지금 여기right now, right here’가 전부다. 고삐 풀린 열정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세상에 아무 걱정도 없다. 많이 웃고 아주 친절하다. 이와 달리 좌뇌는 세세한 면에 집착하고 삶을 꽉 짜인 계획표에 따라 운영한다. 나의 진지한 면을 맡고 있다. 턱을 괴고 과거에 배운 것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린다. 경계를 짓고, 모든 것을 옳거나 그른 것, 좋거나 나쁜 것으로 판단한다. 아, 물론, 눈살을 찌푸리는 식으로 판단을 드러낸다. (중략) 좌뇌의 가장 뛰어난 특질로 이야기를 엮어내는 재주를 빼놓을 수 없다. 좌뇌의 언어 중추에서 이야기를 담당하는 부위는 최소한의 정보를 갖고 바깥세상을 이해하도록 특별히 설계되었다. 세부 사항들을 입수해서 하나로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왼쪽 뇌가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다. 실제 자료 사이에 틈이 있으면 이를 감쪽같이 메운다. 게다가 스토리 라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시나리오를 지어내기까지 한다. 그래서 여러분이 좋든 싫든 진심으로 공감을 느끼는 상황이 되면, 왼쪽 뇌가 이런 감정 회로에 접속해서 만일의 가능성을 다 살펴본다.

그건 그렇고, 우뇌가 발달해야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도 많이 있던데. 스토리텔러의 경우는 어쨌든 좌뇌와 연관이 있다는 뜻일까. 언어를 다루니까 그런 것인지, 논리의 문제인지, 무엇이든, 좌뇌와 우뇌를 다루는 부분에서 설명이 심리나 종교와 결합하며 다소 복잡하고 불투명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일단 이 책을 다 읽은 오늘은 잠을 푹 자기로 했다. 중요한 부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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