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 모리 마리, 이지수, 다산책방

모리 오가이의 딸이자 에세이스트인 모리 마리의 수필집.

이 책을 삼일절 전후로 읽은 것은 꽤 그릇된 선택이었는데, 모리 마리가 회상하는 아버지 모리 오가이와, 가족들이 누린 부유한 삶, 세숫물을 자기 손으로 뜨지 않았던 귀한 아가씨의 나날들을 보면서 이게 어느 시대였는지 생각하다 보면 속이 쓰려지기 때문이다. 모리 오가이는 청일전쟁 때 군의관이었다. 러일전쟁 때는 소장이었다. 그는 작가인 동시에, 일본에서 군의관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박물관장이 된 사람이다. 모리 마리의 회상 속 아버지는 덴노의 생일에 초대받아 과자를 하사받아 올 정도였다. 경술국치를 지나 1922년까지 살았던 사람이니 한국의 식민지 시대와 어느정도 걸쳐 있기는 해도, “그 사람은 이 시대에 군인이었지만 어쨌든 의사였고 작가지.”하고 생각했던 것이, 그 가족이 누린 삶에 대해 읽고 있으니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마치 어릴 때 이방자 여사 전기를 읽었을 때나 (아니, 이방자 여사 –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 의 경우 태어나길 황족으로 태어났으니 또 좀 다른 문제이지만) 고등학교 때 전혜린의 수필을 읽었을 때 느꼈던 그 묘한 불쾌감, 커서 반딧불의 묘를 다시 봤을 때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누린 그런 것들에 대해 무척 자연스러운 일, 전쟁으로 인해 무너진 일상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할아버지를 두고는 번주의 신하로 영세한 녹봉을 받아서 의사 일도 겸했다고 적고, 외할아버지도 사가 현 가난한 무사의 아들이라절임에 간장과 가다랑어포를 얹는 것을 낭비라고 여겼다고 적고 있는데, 읽다 보면 그 “가난하다”거나 “영세하다”는 감각이 무척 남다르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이를테면 외할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사준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미키모토에 팔러 가는 이야기라든가. (전쟁 중이었을 텐데, 그 시절에 “겨우” 20만엔에 팔아버렸다고 한다. 참고로 1960년대 일용직 노동자의 일당이 500엔쯤 되었다고 들었는데.) 아이스크림은 시세이도에서만 사먹었다는 이야기라든가. 모리 마리가 1903년생인데, 20세기 초반에 쌀 10kg가 79전이었는데 시세이도에서 팔던 아이스크림은 25전쯤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꽤 비싼 아이스크림이었던 셈이다.

그런 이야기를 실컷 늘어놓고는, 질주전자 요리가 나왔을 때 남이 안 본다고 주둥이에 입을 대고 국물을 마시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또 좀 우스워지고. 자기 자신의 소녀시절을 묘사하면서 자신에 대해 경어를 붙이는 것도, 자신을 여전히 열두 살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다. 좀 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고 들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래, 하다못해 “당신이 그렇게 살던 바로 그 때에 옆 나라에서는 일본군에 의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생각해?”까지 갈 것도 없이, “당신이 그렇게 살던 바로 그 때에 일본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질문이라도 던져보고 싶어지지만.

어차피 짜증을 낸들, 그는 이미 예전에 죽은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어째서 이 책을 “소확행”이라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책 뒷표지를 노려보며 이 책의 편집자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곰곰 생각하는 중이다.

PS) 일본 쪽의 책이나 수필이나 잡지 기사 등등 중에 “~~와 장미의 나날” 같은 제목들을 가끔 본 적이 있었다. (만화도 있다. “미식과 장미의 나날”이라고.) 아마도 대체로 “술과 장미의 나날”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경우나 맥락에 따라서는 이 수필집 제목에서 온 것도 개중 있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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