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의 속삭임 – 무레 요코, 박정임, 문학동네

아이가 둘이 되면서 이런저런 미래계획도 수정하게 되고, 돈 모으는 문제에 대해서도 더 생각하다 보니 책을 몇 권 샀다. 그 중 한 권. “카모메 식당”의 무레 요코가 쓴 수필집이다. 50대가 되어서야 돈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내용인 것 같아서 구입했는데, 돈 이야기는 의외로 그렇게 많진 않다.

하지만 작가님은 음, 베스트셀러 작가니까 아마 수입이 부족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씀씀이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하지만 읽다가 결정적으로 마음이 아픈 대목이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내용이다. 작가님은 앞부분에서 집 대출을 갚고 있다고 했는데, 정작 작가님은 도쿄에서 혼자 살며 월세를 살고 있다. 그럼 그 집은 어떻게 되었느냐. 어머니와 남동생(결혼 안 한)이 살고 있다. 남동생은 평생소득이 상당한 상장기업에 근무하고 있으며 어머니도 연금을 받고 있는데, 그 집 대출의 2/3은 누나인 작가님이 떠맡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다 어머니와 남동생은 걸핏하면 이 작가님에게 이것저것 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무리 누나가/딸이 베스트셀러 작가라지만 저거 너무한 거 아냐? 이쯤되면 작가님은 나이 50세, 지갑이 속삭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빨대를 꽂히신 것 같아서, 같은 장녀로서 마음이 아픈데? 그런데도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걸 어떡해.

그런 생각을 하며 읽다가 묘한 기분이 든 대목이 또 있었다. 캐시미어 코트를 새로 사서 입고 나왔는데 노숙자가 다가와서 코트를 만지고 씩 웃고 가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코트가 예뻤다는 거겠지 하는 식으로 넘기는 대목이었다. 아니, 안 괜찮아요. 왜 그렇게 남의 악의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요. 내적비명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재미있긴 재미있는데, 읽다 보면 좀 괴롭다.

그런데 일본 쪽 여성작가 수필들 읽다 보면 그런 게 있다. 자기가 기분나쁜 걸 기분나쁘다고 말 안/못 하는 거. 특히 가족이나 남자에게 당한 기분나쁜 일을 그거 아니겠지 하고 넘겼다, 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 어쩌면 “그런 일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이야기는 독자가 싫어할 것”이라고 글에 자기검열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정말로 그냥 “그런 일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은 여자답지 못한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인가 싶기도 한데. 둘 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싶고.

수필도 그렇고 에세이만화 류도 그렇고, 자기 자신을 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연약하고 이런 일에 둥글둥글하게 반응하는”으로 포장하는 게 있는 것 같다. 영악한 인간으로 보일거라는 두려움이 있는 듯이. 상식적으로 한 분야에서 계속 일하고 글 쓰고, 또 젊어서는 직장생활도 했던 사람이 그렇게까지 아이같이 순진하고 철모를 리가 있냐. 없지. 그런데도 유독 아이같이 구는 게 심하다. 그 “순진한 나”가 좀 심하면 결국 못 읽게 되는 것도 있다. 마스다 미리 처럼. 그게 이 나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일종의 억압인가 싶으면서도, 읽다가 화를 내게 된다. 이건 대체 누굴 위한 에세이인지.

사노 요코나 요네하라 마리의 수필은 그래도 좋게 읽었고, 또 음식 에세이 종류들은 특별히 실패하지 않는데. 신변으로 넘어오면 꼭 뭔가 이렇게 뒷목을 잡게 되는 이야기들이 나온단 말이지. 자신이 똑똑하고 영악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여자의 글이 좋다. 분명 성공해 놓고도 “나는 운이 좋았어, 나는 순진해, 나는 돈 문제 같은 것은 잘 모르고 남자나 가족들이 나에게 좀 심하게 굴어도 그걸 악의로써 받아들이지 않는 착한 사람이야”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피곤하다. 그렇게 체화될 수 밖에 없는 사회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서도, 그래도 지식인이고 문화인으로 분류되는 범주의 일을 하는 사람은,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다른 것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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