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가 책을 내다버리겠다고 협박할 때 마다 대체 수도권에서 내 집 마련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검색해 보던 훌륭한 20대 초반을 지나 마침내 독립해 나온 뒤 이사를 할 때 마다 책에 치이면서, 그리고 이사를 하고 나서도 거실을 가득 채운 책들 때문에 한동안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매달 나가는 대출금을 확인하면서, 나는 지금 내 책들을 위해 이만큼 대출금을 내고 있는가 생각하면서. 그렇게 책을 모시고 살아가며 어떻게든 굴러가면서도 수시로 안 보는 책을 팔거나 나누거나 방출하려 들지만 백권쯤 내다 팔아도 책무더기에 손톱으로 긁은 듯한 자국도 안 생기는 것을 보고 좌절하면서 살다 보면, 때때로 이상적인 서재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것도 집을 작업실로 쓰고 있는 사람, 그 작업이 저 책무더기와 무관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만화가나 작가나 번역가나 그런 사람들 말이다.
가끔 다른 사람의 서재를 생각하며 언젠가 내가 갖게 될 지 모르는 이상적인 서재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훌륭한 서재나 개인 도서관 사진이야 많이 보이지만, 다른 사람이 관리를 해 주는 듯하거나 책 주인의 손이 덜 닿은 듯 예쁘게 꾸며진 사진에는 감흥을 못 느끼겠다. 직접 글을 쓰고 자신이 책을 관리하는 사람의 서재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이 유명한데, 서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할 리 없는 도쿄 한복판에 책을 위한 건물을 따로 갖고 있으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생각해 보면 그저 아득할 뿐이다. 말하자면 그건 개인 장서계의 마이바흐 같은 것일까. 어쩌면 많은 작가님들이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작업을 하시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릴 때는 다큐멘터리에 잠깐 비친 그의 고양이빌딩을 무턱대고 동경했지만, 지금은 부동산 가격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지. 서재, 정확히는 작업실의 이상으로, 나는 우리 선생님의 작업실(지금 작업실이든, 이전 작업실이든)을 먼저 머릿속에 그려보고, 이걸 다시 머릿속에서 마구 어레인지를 하다가, 가끔은 스케치업을 켜서 수치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보기도 한다. 여기에 다른 작가님의 서재와, 아는 편집자의 방을 좀 더 더해보기도 한다. 여튼 이것저것 배치를 해 보다가도 이것만으로는 책이 다 안 들어간다는 것을 먼저 떠올리고, 그 이전에 이만큼이라도 구현을 하려면 언젠가 또 이사를 한다는 것도 생각한다. 무엇보다 딸린 가족들이 있는데, 배우자야 동의했으니 그렇다고 치고 아이들도 언제까지나 저 거실을 보조서재처럼 쓰고 있는 것에 대해 그러려니 할 지 잘 모르겠고. 쉽지 않겠지.
이상적인 서재는 언제 쯤 가질 수 있게 될까. 나는 가끔 그 생각을 하고, 인간의 기대여명을 생각하고, 또 작가는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는가, 아니, 그런 일들이 언제까지 들어오는가에 대해 또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 더이상 글 청탁이 들어오지 않거나 한 다음에 이상적인 서재를 꾸미게 된다면 그건 낭비일까? 곰곰 생각해 보기도 한다. 여튼 인간은 합리만으로는 살 수 없으니 기회가 되면 뭐라도 저지르긴 하겠지. 이 책은 그 서재의, 하드웨어 부분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어떻게 서재를 관리하고, 책을 정리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물성을 갖고 서재의 뼈대를 이루는 것들, 책장이나 책상, 의자 같은 것들에 대해서. 목수인 저자는 자신이 꿈꾸는 서재에 대해 말하며, 그 뼈대를 이루는 것들에 대해 정성껏 설명한다. 읽으면서 합판이 휘어져버렸던 내 예전 책꽂이들을 떠올린다. 적당히 월세에서 신혼을 시작하며 다른 신혼 가구는 안 들여도 괜찮으니 책상은 원목이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상판만이라도 원목으로 하고 싶다 생각하다가 그러면 다른 것들을 놓을 자리가 줄어들어서, 결국 언젠가 내 집으로 이사하면 그때 들이자고 하고는 학생용 책상을 샀던 것을 생각한다. 그 학생용 책상에 앉아 이 책을 읽고 또 오늘 하루만큼의 글도 쓰면서, 언젠가는 서재를 위해 좀 더 나은 가구들을 장만하거나, 공간이나 나의 필요에 맞추어 가구 중 몇 가지를 맞춤으로 마련할 때가 올 것인가에 대해 또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여기서 말하는 서재와 내가 생각하는 작업실은 온전히 같은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렸다. 휴식과 사색을 위한 공간과, 어쨌든 뭔가를 계속 짜내고 쏟아내는 공간은 다른 것이고, 내가 보았고 들어가 보기도 했고 또 관념적으로도 잘 알고 있는 그 서재(작업실)들은 바로 그, 그 공간에서 뭔가를 계속 짜내는 사람들의 공간이었다는 것도.
PS) 어쨌든 언젠가 이상적인 서재를 갖게 될 지, 그러지 못할 지는 모르겠으나, 의자만큼은 지금보다 좋은 것으로 다시 사긴 해야겠다. (전에 쓰던 것보다 낫긴 한데…… 아니, 이만해도 그동안 쓰던 것에 비하면 몸에 잘 맞는 축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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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재 – 김윤관, 제철소”에 대한 3개의 응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