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의 정원

추상의 정원 – 김휘빈

추상의 정원
추상의 정원

제정 프랑스 배경인데도 투철하게 피임도구를 챙기는 남자주인공은 정말 시대를 뛰어넘어 훌륭합니다……. (그런데 21세기에 피임도구도 안챙기는 현대의 남주들은 반성하라.) 아니, 이건 좀 농담이고.

이 소설의 많은 점에서 베르사이유의 장미가 떠올랐습니다. 시대 배경도, 인물도, 표현의 방식도, 무엇하나 같지 않지만. 헌신적인 남주 때문일까요. 그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버지의 딸”로 자란 “상속자”인 여주가 자신이 자신으로 살기 위해 주변을 혁명시켜 나가는 이야기고요. 물론 시대상을 반영한 빻음들이 구체적인 고증과 함께 반영되어 있고 여기서 신분의 문제나 독선적인 성격이라든가, 그런 것은 여주도 예외는 아닙니다만 그런 것이 이야기도 캐릭터도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어서 좋아요. 주인공들이 혼자 멋지고 폼잡고 무조건 선량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인 나딘은 욕을 할때는 언어의 마술사같고, 다 갚은 돈을 다시 뜯어내려는 악랄한 백부의 주둥이에 금화를 처넣고 목을 졸랐다가 그 금화를 꼭 회수해가는 꼼꼼한 성격에(……), 성별이 바뀌었다면 태그에 나쁜남주로 분류되었을 만큼 씬들에서 집요하게 구는 부분이 많습니다. ㅇㅇ 솔직히 말하면 보통의 로맨스에서 여주가 겪는 감정적 삽질은 거의 다 알랭이 도맡고 있고, 남주가 어떻게 쟤를 덮쳐볼까 하는 대목들은 나딘에게 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성반전의 묘미랄까, 읽다가 얘들이 성별이 반대였으면 내가 이 대목을 불편하게 읽었겠다 싶은 부분들이 있죠. 그런 점에서 아까 언급했던 베르바라의, 확실히 전반적으로 고결한(……) 오스칼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리고 오스칼이 가문의 가부장제를 이어가기 위한 도구로서 군복을 입었고, 같은 이유로 드레스를 입을 것을 강요당했던 것과 달리 나딘의 부친은 하나뿐인 소중한 딸에게, 기술과 교육과 재산과, 만약 딸이 원한다면 결혼해서 울타리로 써먹을 수도 있을 조신한 남자까지 남겨둔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산들로 무장한 나딘이 가부장제와 차별들과 맞서며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이야기고요. ㅇㅇ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하나만 꼽는다면, 조향사들의 향수 경연대회에,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출품한 윗 세대의 여성 조향사 이야기입니다. 나딘은 혼자서 싸워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전에 여성 상인들이 있었고, 또 여성 조향사가 있었던 것. 그 전에는 생각도 못 해본 일을 시도했기 때문에 영영 밟혀버렸어도 자기 일을 계속해 나가는 여성 조향사가 있고, 나딘이 그 뒤를 따라가고, 또 다른 누군가가 꿈을 꿀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아주 좋았네요. 🙂

어쨌든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붙이자면. 보통 어떤 캐릭터의 이름이 있을 때, 그 이름이 퍽 흔하다고 해도 일단 자기가 쓴 소설에 나왔던 이름이면 대개 자기 소설에 나온 캐릭터를 먼저 떠올리게 되어 있어요. 근데 이 나딘은 워낙 강력해서, 읽는 내내 나딘 하면 예전에 쓴 소설에 나왔던 캐릭터(데스티아 나딘)가 아니라 얘(나딘 에갈리떼)가 떠올랐을 정도입니다. 좋은 소설이에요. 읽다가 중간중간 멈춰서 지켜보게 되는 부분들이 있고, 또 온정적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착한 남자”인 리슐리외도 흥미롭고. 그건 그렇고 여담이지만 작가님의 전작(세계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 때문인지, 알랭은 토끼(!!!!!)가 아니어서 내심 안도했습니다. 대체 뭐 그런 데 다 안도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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