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시작하고 곧, 무척 익숙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멀고 그립고도 익숙한 그 기분은 수레바퀴 밑에서 한스가 헤르만 하일너를 처음 만났을 때, 혹은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막스 데미안과 함께 견진성사 준비를 할 때를 떠올리게 했다. 과연 독일 문학. 모든 독일 소설이 사춘기를 맞은 두 소년의 만남을 아름답고 덧없으며 절실하게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소년과 소년의 만남을 아름답고 덧없으며 절실하게 그린 세계문학(BL이 아니라)이 있다면 그건 거의 반드시 독일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헤르만 헤세 때문에 BL에 눈떴다는 농담을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게다가 두 소년 사이에는 신분의 차이도 존재한다. 한스 슈바르츠는 부유하고 장교 출신이며 명망있는 유대인 의사의 아들이지만, 호엔으로 시작하는 모든 지명들과 연관이 있을 법한 명문 귀족 콘라딘 폰 호엔펠스와는 분명히 계층의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은 조금은 치기어리고 한편으로는 절실한 우정을 나누지만, 콘라딘의 모친은 순혈주의자로 유대인을 혐오한다. 콘라딘은 부모와 함께 있을 때 친구를 알은체하지 못하고, 부모가 집에 있을 때 그를 집에 데려오지 못한다. 그렇게 갈라지기 시작한 금은, 히틀러가 정권을 쥐며 급속한 균열을 일으킨다. 동급생들은 한스를 따돌리고, 욕설을 퍼붓는다. 교사는 아리아 순혈주의를 강조한다. 한스의 부친은 한스를 미국으로 피신시키지만, 자신들은 별 일 없을 거라며 이곳에 남는다. 그리고 콘라딘은, 한스가 떠나기 전 편지를 쓴다. 독일의 선택은 스탈린과 히틀러 중 하나이며, 자신은 히틀러를 선택했다고. 한편으로 콘라딘은 자신의 총통이 유대인들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게 될 것이라고 믿으니, 한스가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한스의 마음은 돌아서 버린다. 한스의 부모가 결국 자살하고, 한스는 미국에서 성공한 변호사로 정착한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에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책의 초반에, 한스는”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그리고 “내 완전한 믿음과 충절과 자기희생에 감복할 수 있는” 친구를 원한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콘라딘에게 그런 우정을 바쳤다고 믿었고, 콘라딘이 자신의 부모와 한스를 마주치지 못하게 하자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마지막 대목에서 짧고 강렬하게, 콘라딘이야말로 바로 그런 우정을 품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야말로 친구를 위해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고자 할 만큼. 그는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마치 혼자 목덜미에서 비누 냄새를 풍기던 데미안처럼, 남들과 다른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났고, 영웅다운 최후를 맞는다. 강력한 소망을 품은 주인공이 한없이 범속해 보일 만큼. 하지만 콘라딘이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인은, 다름아닌 한스다. 그가 아니었다면 콘라딘은 총통이 말하는 이상에 회의를 품거나 반감을 갖기 어려웠을 테니.
리디북스에서 구입해서 읽었는데, 이 책은 다른 가족들, 특히 아이와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실물 책으로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어릴 때 헤세를 읽었던 사람이 나이들어서 이 낭만적인 우정의 도입부를 읽으며 그때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는 그 느낌을, 헤세와 비슷한 시기에 읽으면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 같아서 좀 안타깝기도 하다. 뭐, 어쩔 수 없지.
PS) 당연하지만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반전에 대한 메시지라든가, 읽을 거리는 충분하다. 꼭 굳이 주인공을 가스실 코앞까지 비참하게 끌고가지 않더라도 그 시대의 비참함이나, 사람이 인간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품위있으면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도록 다룬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