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교토

내 손으로 교토 – 이다, 레진코믹스

내 손으로 교토
내 손으로 교토

“내 손으로 발리”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카메라 없이, 손으로 쓰고 그린 여행기를 그대로 책으로 만든 형태다.

제목은 교토지만, 실제로는 교토에다가 오사카도 약간 포함된 형태. 12일동안의 여행이다. 무척 부럽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어지간해선 짤 수 없는 일정으로 천년 교토라니. 부럽습니다, 이다님 ㅠㅠㅠㅠㅠㅠ

사실 여행은 준비과정이 더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이다님 노트에서도, 그 준비과정의 신남이 마구마구 느껴져서 좋았다. 책들, 지도들, 히라가나. 아참, 일본 드라마에서 배운 일본어 어디다 써먹을 것인가 페이지에서 잠깐 멈추고 눈물나게 웃었다.
영수증을 붙인 페이지가 정말 실감나게 들어 있었다. 책으로 인쇄된 상태는 어떨까. 대체 어떻게 스캔을 해서 보정을 하면 이렇게까지 리얼해 보일까, 화면인데. 한편 그 영수증에 견출지를 달아놓으신 건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 나도 여행가서 영수증 같은 것도 붙여두곤 하지만, 돌아와보면 이게 어디었더라 할 때들어 있어서. (그래서 젓가락 포장지라든가 뭔가를 같이 더 붙여놓기도 한다.)

몰스킨 말고 Daler&Rowney의 에보니 스케치북으로 바꾸셨다거나, 이게 몰스킨보다 가격은 싼데 잘 펼쳐지고 종이 칭량이 두껍다거나 그런 정보도 있고. 펜텔 트라디오 펜과 몽당색연필, 그리고 교토니까 금색 붓펜을 챙겨들고 가셨다거나. 그리고 길드로잉 책에 나왔던 수채화 키트도 준비하셨다거나. 그런 정보들을 넘어, 마침내 이다님 일본 도착.

문득 돌아다니다가 벚꽃과 조우하는 대목을 보면서, 예전에 세이와 후쿠오카에 갔다가 니시진 근처 골목 안쪽에서 학교를 따라 만개한 벚꽃을 한참 바라보던 기억이 났다. 남의 여행기를 읽는 것은 자신의 여행을 기억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제일 흥미로운 건 일본에서 밥먹은 이야기. 일본에서는 편의점에서 먹어도, 길가다가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먹어도 실패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동네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서는 주문하고 제대로 된 게 나오길 기도해야 하는 상황을 하도 많이 겪다보니, 어디 가도 평균 이상은 나온다는 것이 특히 좋았지. 그나저나 저 척아이롤 스테이크 1인분 150그램짜리라니 생각이 났는데, 전에 사천왕사 주변 돌아다니다가 들어간 가게에서 철판스테이크를 주문해서 먹은 적이 있었다. 만원이 안되는. 저 구성만큼 푸짐하진 않았지만, 진짜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났다. 역시 까날님 말씀대로 일본에는 먹으러 가야 해. 음.

교토 북쪽의 시골마을 오하라에 가 보시는 대목을 보며 지난번에 읽은, 헤이안 시대 배경 TL을 떠올렸다. 가문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한 부부들이 도망쳐 살았던 마을이라고 해서. 🙂 그러고보니 이름만 들어본 산젠인이 바로 저 지역이 있는 거구나. 교토는 몇 번이나 가보고 싶었는데, 묘하게 갈 기회를 못 잡았던 곳이다. 일정이 안 맞거나, 기타등등. 그래도 오사카까지는 다녀왔으니, 언젠가 교토에 느긋하게 다녀올 날도 오겠지.

요즘 꼬꼬마에게 들이받히고 갈비뼈에 금이 가서 그런지, 온천 가신게 너무너무 부러웠다. 으어, 일본. 으어, 온천 ㅠㅠㅠㅠㅠㅠ 시장 돌아다니기도 부럽고. 요즘은 남의 여행기를 읽으면 몸이 근질근질하다. 꼬꼬마를 벌써 여행에 데리고 다니면 힘들겠지. 유치원 가기 전이면 아직 기억도 못 할 테고. 당분간은 우리나라 안에서, 가급적 수도권에서 돌아야 할 거다. 그래도 대만이든 일본이든 상하이든 나가고 싶어. 으음…….

철학의 길에서 잔뜩 지르신 이야기도 좋았다. 철학의 길은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사진을 볼 때에도 언젠가 교토에 가면 첫날 가고 싶다고 생각한 곳인데, 뭔가 의외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어버린것 같다.

오사카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화방에서 가산을 탕진하신 이다님. 나는 그림을 그리진 않지만 어떤 상황인지 120% 이해할 수 있어……!!!!!!! 미술재료를 반값에 사셔서 축하드립니다. ㅠㅠㅠㅠㅠㅠ 저도 일본 가면 먹는거랑 문구로 돈 다 쓰고 와요. ㅠㅠ 읽으면서, 그리고 돌아온 뒤의 후일담까지 보면서, 답답하고 갑갑하고 몸이 근질거렸다. 어디든 훌쩍 놀러가고 싶어. 어릴때는 시간은 있어도 돈이 없었고, 조금 커서는 시간도 없고 돈도 없었는데, 지금은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고 아기가 있지. 두 돌 전까지는 항공권 무료라고 알고 있지만, 아기에게 과연 해외여행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일지 잘 모르겠다. (내가 세이를 끌고 다녀도 세이는 보통 돌아오기 전날 코피를 거하게 쏟으며 늘어지는데……) 아마 나는 슬슬 여행의 방식을 바꿔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이 속상하기도 하고, 이다님의 여행이 부럽기도 하면서, 그러면서도 나는 또 혼자 구글맵을 켜놓고 계획하는 것이다. 언젠가 갈 또 다른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못 가본 곳과, 우연히 지도에서 찍은 곳들과, 책에서 읽은 그런 거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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