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 정세랑, 민음사

보건교사 안은영
보건교사 안은영
보건교사 안은영

이 유쾌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내 월하의 동사무소를 이렇게 써야 했다고 반성했다. 앞으로도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런 후회와 반성을 하겠지.

현대 어반 판타지 퇴마물을 현실적이면서도 밝고 명랑하고 순정만화같이 쓰고 싶었으면 좀 이런 느낌으로 갔어야 했는데. 세상에, 한 해의 마무리를 하려고 책을 읽다가 이렇게 땅을 파게 될 줄은 몰랐다. 정세랑 작가는 이것저것 다 잘 쓰다 못해 이젠 내 장르까지 나보다 잘 쓰잖아!

하고 울부짖는 것은 잠시. 비비탄 총과 무지개 깔때기 장난감 칼을 들고 다니며 학교를 퇴마하는 보건교사와, 영능력은 없지만 보조 배터리같은 한문교사(이자 재단 이사장의 손자), 흑막을 지닌 원어민 교사, 캐릭터들도 잘 뽑혔고. 읽는 내내 감탄이 나온다. 한편으로 이 소설이 같은 계열사라도 “황금가지”가 아니라 “민음사”에서 나왔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왜? 완벽한 어반 판타지인데? 캐릭터, 설정, 후기까지 다 그런데 왜 저자 사진하고 출판사만 갑자기 민음사냐고!

다른 이야기인데. 흔히 순문학과 장르를 나누지만, 사실 그 경계는 이미 많이 허물어져 있다. 담을 쌓고 있다기보다는 스펙트럼에 가까운 형태로 변화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쪽 끝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는 묘하다. 톡톡튀는, 재기발랄한, 참신한, 장르소설을 앞에 두면 그런 단어밖에는 쓸 줄 모르는 것 같이들 굴면서, 여전히 이쪽을 낮잡아보는 동시에, 원래 장르를 하면서 그쪽에 발 하나라도 걸친 인물이 장르적인 시도로 성공을 거두면 순문학의 새로운 시도라도 되는 듯 군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문창과 학부만 겨우 졸업한, 데뷔를 한 것도 아닌 문청이 장르 작가를 폄훼하는 거야 멀리 갈것도 없이 내 친정집에서도 지겹게 본 꼬라지고. 그래도 이 책을 보면서, 그 경계는 좀 더 허물어졌으며, 지금은 순문학이라고 불리는 “그쪽”도 머지않아 여러 장르 중 하나가 될 거라는 생각을 좀 더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세랑 작가님을 더욱 질투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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