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90]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민음사 세계문학 75

위대한 개츠비

강도하의 만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위대한 캐츠비” 이후로 이 책에 대해 말하다 보면 개츠비가 아니라 캐츠비라고 말하는 것 정도는 애교, 나 그 만화 봤는데 내지는 나 그 연극 봤는데 하는 사람들이 엉뚱한 헛소리들을 하는 것에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이러다가 다음 세대는 정말로 개츠비와 캐츠비를 헛갈리게 되는거 아냐? 대체 왜, 그게 이젠 연극으로까지 나와갖고.

여튼, 위대한 “캐츠비”의 캐츠비도 찌질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 역시 쿨한 인물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서 그는 더욱 찌질하기도 하다. 그가 위대한 것은, 젊은 시절의 순수한 마음, 다시 말해서 첫사랑을 잊지 않고, 그녀를 되찾겠다는 마음으로 성공을 이룩하여 마지막까지 데이지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는다는 점에 있겠지만, 그가 찌질한 것도 역시 같은 이유다. 그는 어쩌면 데이지 그 자체가 아니라, “데이지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이야기 전반적으로 찌질한 면모를 보인다. 가난한 남자가 성공을 거두고 신사 계급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어설프게 자신의 지성과 재력을 과시하려 하는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 그가 성공을 이룩한 비결이 다름 아닌 1920년대 금주법을 무시하고 밀주사업을 벌이는 등 불법을 통한 것임을 떠올리면 견적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데이지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은 소위 신사계급, 그의 파티에 참석하면서도 그의 장례식에는 오지 않는 –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가지 않는 – 사람들이나, 데이지의 남편 톰의 이중잣대, 그리고 데이지 본인까지, 뼛속까지 위선에 물든 사람들과 비교되는 것도 사실이다. – 오히려 개츠비와 비교할만한 순수한 행동은 톰의 정부였던 머틀의 남편, 윌슨에게서 볼 수 있다. 윌슨에게는 개츠비처럼 기다리고 알아보며 끈질기게 뭔가를 이룩하는 점은 부족했지만.

새로 이사온 저택의 주인이 매일 파티를 벌이고, 데이지의 친척인 닉은 그 파티에 초대받아 저택의 주인인 개츠비를 만난다. 부잣집 딸은 가난한 집 남자와 결혼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데이지는 개츠비가 아닌 톰과 결혼했고, 톰은 데이지를 두고 정비공 윌슨의 아내인 머틀을 정부로 삼은 상태다. 데이지와의 재회를 원하는 그를 위해 닉은 데이지를 데려오고, 데이지는 톰 대신 성공해서 돌아온 개츠비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데이지는 톰을 통해 개츠비의 재산이 범죄를 통해 쌓아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개츠비의 차를 몰고 달리다가 그만 머틀을 치어버린다. 머틀을 두고 뺑소니를 친 데이지를 위해 개츠비는 자신이 그 죄를 뒤집어쓰려 하지만, 톰은 윌슨에게 머틀은 개츠비의 차에 치어 죽었다고 알려주고 윌슨은 개츠비를 죽인다. 이런 류의 소설이 그렇듯, 개츠비는 죽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온다. 넘을 수 없는 어떤 계급적인 벽, 사회적인 벽은 끝내 부서지지 않고, 안전한 위선의 세계는 그대로 유지된다.

하루키를 싫어하기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를 늦게 읽게 되었다고 하면 변명일까. 나는 하루키를 무지무지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실의 시대를 읽고 완전히 질려버려 – 그러나 이후에도 하루키를 까기 위해 책은 꾸준히 읽어 왔다. – 개츠비조차 손대지 않고 있었다. 개츠비를 읽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한 뒤, 무슨 패션에 관련된 책을 읽던 중이었다. 그 책에는, 남자의 드레스 셔츠 항목 앞에 다음과 같은, 위대한 개츠비의 한 대목이 통째 인용되어 있었다. 데이지가 개츠비의 집을 방문하고, 그가 이룩한 부를 확인하며 감동하는, 어떤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는 드레스 셔츠 더미를 끄집어내 하나씩 우리에게 던졌다. 얇은 리넨 셔츠, 두꺼운 실크 셔츠, 고급 플란넬 셔츠가 떨어질 때 마다 개켜졌던 자국이 펴지며 가지각색으로 테이블 위를 덮었다. 산호빛과 능금빛 초록색, 보랏빛과 옅은 오렌지색의 줄무늬 셔츠, 소용돌이무늬와 바둑판무늬 셔츠들에는 인디언 블루 색으로 그의 이름의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데이지는 갑자기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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