뻬쩨르부르그 이야기

[고전읽기-089]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고골) 세계문학전집 68

뻬쩨르부르그.

그 지명을 들으면서 순간 예전에 읽었던 김은희의 만화 “스트리트 제너레이션”을 떠올렸다. 거기서 주인공이 어린시절의 친구와 재회하는 키워드이자 지명이 바로 그 곳이었다. 뻬쩨르부르그. 그런 추억을 떠올리며 책을 집었는데 러시아 문학이다. 으악, 뭔가 순간 묵직하고 사내다운 소설일 것이라는 느낌이 엄습한다. 어느쪽일까. 소녀시절 읽은 상큼하면서도 자신만만한 순정만화의 느낌과 러시아 문학. 조금은 설레며 책을 읽기 시작하였지만.

러시아 문학이 어디 갈 리 없다. 묵직하고 사내다운 위트. 그 가운데 이 도시는 붕 떠 있다. 현실의 도시가 아니라, 도시의 온갖 악덕이란 악덕은 다 모여 있는 가공의 도시. “언제나 거짓말을 하”는 악마적인 도시. 저녁 무렵이면 그 악덕이 더욱 강해지는 도시. 네프스끼 거리에서 보여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환영으로, 진실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이런 곳에서, 자신의 꿈 속에서 이상적인 여인을 찾던 삐스꺄료프는 낭만적 아름다움과 사악한 뻔뻔함을 지닌 창녀에게 반한다.(네프스끼 거리) 하급 관리 아까끼는 정말 극도의 절약과 희생 끝에 외투를 마련했지만 손에 넣자마자 잃어버리고, 패닉 상태에 빠진 상태로 고위 관리 앞에 나섰다가 무시무시한 질책을 받는다. 결국 홧병….. 과 혹한으로 죽어버린 그는 유령이 되어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으러 다닌다. (외투) 말단 관리인 뽀쁘리시친은 국장의 딸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가 자신을 비웃는 것을 알고 충격을 맏아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페르디난트 왕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히 미쳐버린다. (광인 일기) 인간의 욕망, 특히 돈에 대한 욕망이 한 화가의 재능을 파멸로 몰아넣는데, 그 돈주머니를 내어 준 것은 악마의 영혼을 지닌 고리대금업자의 초상화(초상화)였다는 이야기에서는 이제 이 이야기가, 읽는 사람이 쓴웃음을 짓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어떤 감정,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뭔가 속내를 들킨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어진다.

“외투”는 예전에 뜻밖에도 무슨 공포 단편선 같은 데서 읽은 적이 있었다. 대체 그 편집자 누구야.

다른 것들은, 읽으면서 계속 쓴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와서. 이, 악마성이 온 도시 곳곳에 배어 있는 듯한 신도시에서 고골이 보았던 것은 무엇일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다 정말 리얼하게 묘사된 하급 관리의 삶을 보면서 21세기, 대한민국 인천에서의 공무원의 삶은 그리 나쁜 것은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이 관리들의 삶에 대한 묘사가 특히 선명하다. 사실 누가, 수능에도 조선시대 관리등급이 안 나오는 이 마당에 제정 러시아 시대의 관리 등급을 찾아볼까. 이렇게, 그 시대상의 일부를 리얼하게 묘사한 소설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도, 그리고 새로이 찾아보게 되는 것도 생기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란, 좀 더 그 시대의 모습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사실 레 미제라블이 아니었으면 파리의 하수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도 없었을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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