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87] 나무 위의 남작 (이탈로 칼비노) 민음사 세계문학 107

나무 위의 남작
나무 위의 남작
나무 위의 남작

 

예전에는 달랐다. 우리 형이 있었다. 나는 혼자 이렇게 말하곤 했다. ‘벌써 형이 생각해 놓았을 거야.’ 그래서 나는 사는 일에만 신경을 쓰면 되었다. 내게 세상이 변했음을 알려준 것은 오스트리아-러시아군의 도착도 피에몬테로의 합병도 새로운 세금이나 내가 아는 다른 그 어떤 일도 아니었다. 바로 창문을 열고 저 나무 위에 균형 있게 앉아 있는 형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들, 반쪼가리 자작, 보이지 않는 도시들. 그리고 이제 이 나무 위의 남작으로 민음사 세계문학으로 번역된 것은 다 보는 셈이 된다. 동화같은 이야기, 마술적 사실주의처럼 느껴지는(사실 그건 남미풍) 이 이야기는 18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귀족제의 끝물, 달핑이 요리가 먹기 싫어서 열두 살에 나무 위로 올라간 뒤 평생동안 그 위에서 살아간 코지모 디 론도 남작의 삶을 다룬다. 그는 평생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고, 원하는 모든 것과 살아가는 모든 것을 나무 위에서 해결한다. 그는 사냥을 하고 집을 짓고 공부를 하고, 당대의 학자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나무를 타고 여행을 다녀오고, 전쟁을 하고 혁명을 알리고 나폴레옹을 만나기까지 한다.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 나무 위에서 살았고, 땅을 사랑했으며, 하늘로 올라간 사람. 그는 나무 위에서 내려다 본 세상만큼의 거리를 두고,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객관화하여 보고 그만큼 더 사랑할 수 있었다. 그의 열정적인 인생은, 그야말로 자연을 사랑하고 자유와 계몽을 수호하며 따뜻한 인간애와 깊은 지혜를 지닌, 어떤 면에서 이상적인 인물의 전기와도 같다. 이런 이야기는 조금만 잘못 발을 디디면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류로 전락할 수도 있을 텐데, 거장의 글솜씨는 이 모든 이야기아 생생한 개연성과 생명력을 부여한다. 코지모가 나무 위에 살고 있기에, 글 곳곳에는 감탕나무며 물푸레나무, 떡갈나무같은 나무에 대한 묘사와 자연의 생기가 가득 담겨있다.

그리고, 그렇게 나무 위에서 살아간 코지모 남작이 하늘에서 날아온 기구를 타고 영원히 떠나버린 뒤, 세상은 변한다. 이상향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그리움으로 남는다. 지난 시절, 좋았던 시절, 낭만과 고향과도 같은 모든 것과 함께.

하늘은 텅 비어있다. 초록의 지붕 밑에서 사는 데 익숙한 우리 옴브로사의 노인들은 그런 하늘을 보면 눈이 아프다. 우리 형이 사라진 후에, 또는 인간들이 미처 도끼를 들고 날뛰기 시작한 이후부터 나무가 견뎌날 수 없게 되었다고들 한다. 옴브로사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텅 빈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옴브로사가 정말로 존재했는지 자문해 본다. 이리저리 갈라진 나뭇가지, 잎맥이 섬세하고 끝도 없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나뭇잎들은 불규칙적으로 조각조각 섬광처럼 보일 뿐인 하늘 위에 펼쳐졌는데, 이는 아마도 우리 형이 물까치같이 가벼운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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