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85] 왑샷 가문 몰락기 (존 치버) 민음사 세계문학 193

왑샷 가문 몰락기

전에 누군가가 마리 앙트와네트의 이야기가 언제나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성공기를 좋아하지만 그만큼 누군가의 몰락기를 좋아하고, 그 낙차가 클 수록 사람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크다고. 그러니 유럽이 세계의 중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지정학적으로도 권력에 있어서도 그 중심에 있던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그렇게 몰락하는 이야기야말로 사람들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동정심과 일종의 대리만족을, 그리고 그런 사람도 결국은 우리와 똑같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지만 왑샷 가문의 몰락기는, 그런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애초에 연대기에서도, 그들이 쌓아올린 것이 뭔가 엄청난 성공신화가 아니었으니까. 그저 시골 촌뜨기인 왑샷 가문의 사람들이, 몰락해가는 마을을 지키며 자신들의 연대기를 하나의 신화처럼 남기고 싶어했던 것일 뿐.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는 오노라의 명에 따라 도시로 떠난 모지스와 코벌리가 도시에 정착하여 경제적인 안정을 찾게 되기는 하지만, 그 역시도 눈부신 성공시대, 그런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그 촌사람들의, 일종의 빅 피쉬같은 이야기다. 신화이고 동화이자 우화로 꾸미고 싶은, 그러나 현실에 덧칠해 보았자 한계가 있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눈에 그것은 신화도 동화도 환상도 되지 못하는. 그리고 그들의 몰락은, 뜻밖에도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히스테리를 부리는 아내에게 시달리고,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반역 사건에까지 연루되는 코벌리, 부정을 저지르는 아내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지스. 그렇게, 도시로 떠난 자손들 역시 흔하다면 흔할 수 있는 불운과 고난과 맞닥뜨리며 몰락을 향해 걷게 되지만, 언제까지나 그 소도시에서 여왕처럼 권력을 쥐고 흔들 것 같았던 오노라 왑샷의 몰락은 정말 뜻밖에도, 그녀가 그동안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일어난다. 그녀는 왑샷 가문의 재산을 거의 혼자 독점하고 있었고, 이 사건으로 왑샷 가문의 재산은 모두 압류당하고 만다.

혼란스러운 시대가 지나고, 세인트 보톨프스 마을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 지금까지의 등장인물들이, 왑샷 가의 사람들이, 삶에 지치고 늙어버린 모습으로 다시 모인다. 그동안의 부정과 타락과 인간성 상실이라 부를 만한 모든 사건들이 지나간 일, 조금 더 미화하면 추억이 되는 순간. 미국적인 가족신화에 희망을 두는 그 엔딩은, 21세기, 지금의 관점에서는 촌스럽게까지 느껴진다. (예나 지금이나 헐리우드 영화에서, 남자와 여자가 나오면 키스로 끝나고 가족이 나오면 가족상봉과 뭔가 절기가 맞으면 가족 파티 같은 것으로 다시 만나고 화해하고 사랑해요를 외치고 가족신화를 재확인하며 끝나는게 보통은 보통이지 않던가) 그런 것에 희망을 두고 싶지 않지만, 그런 것을 인간다움이라 미화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런 것이 승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 이 이야기는 그저 동화다. 우화다. 가족 신화를 기반으로 한 환상어린 무엇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식의 결말로 몰락기를 정리할 수는 없는 거다. 아니, 어쩌면 몰락기라고 해서 바닥을 찍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연대기에서 그들이 눈부신 승리를 쟁취하지 않았듯이, 몰락이라고 해도 그저 소시민의 몰락 범위 안에 수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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