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66]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민음사 세계문학 42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시인을 지망하는 청년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가 파리 생활에서 겪은 일들을 적어내린 형태로 되어 있다. 이 소설을 쓸 당시의 릴케와 이 소설 속 말테의 나이는 비슷하고, 그 무렵의 릴케는 로댕 연구를 쓰기 위해 파리에 도착하였으니, 결국 이 이야기는 말테의 입을 빌린 릴케의 이야기, 그가 겪은 하나하나의 체험이라기보다는 파리에서 보고 들은 절망과 죽음과 빈곤과 공포의 체험을 시적으로 내려 쓴 이야기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죽 이어진 이야기가 아닌, 여러 장을 나열한 이 형태 속에서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말테는 현재 자신이 보고 듣고 겪는 슬프고 비참한 생활과, 유년시절의 추억을 서술한다. 앙상하게 드러난 부서진 집의 담벼락이나 놀라 일어나며 “얼굴이 손바닥에 남은 듯한” 여자 걸인, 빈사의 사내와 눈 먼 야채장수.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현실을 감당하고 있는 말테는 본래 유서깊은 집안 출신이다. 그런 그가 이런 현실과 마주하는 것은, 시인으로서 “보는 것을 배우기”위해서, 아무리 힘들고 비참하고 추악한 현실이라 해도 마주보기 위해서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오히려 더 난해하고, 신경질적이다. 병약한 소년으로, 종종 불안과 환각을 겪던 어린아이. 마찬가지로 섬약한 성격이었던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종종 여자아이 옷을 입고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어버린 누이의 이름으로 불리는 대목에서는 이 소년의 이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우며 신경질적인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소녀다운 감성을 강요당한 채 어머니의 딸 노릇까지 하며 성장한 소년은 자신의 환상을, 시인이 되는 데 필요한 상상력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 세느 강변을 거닐며 고서점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거나, 크류니 박물관에서 여자와 일각수의 태피스트리를 보며 한때 연모했던 젊은 숙모를 떠올리는 것과 같이. 그, 숙모 아페로니에 대한 마음이야말로 말테의 연애관을 대변한다.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을 단념하는 것으로 영원한 사랑을 지속할 수 있다는 그의 독특한 신념은, 그가 자신이 연모했던 숙모 아페로니의 모습을 연상한 한 가수에게서 드러난다. 한번도 그대를 붙들지 않았기에 나는 더욱 굳게 그대를 끌어안고 있다. 가수의 노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숙모를 향해 붙들고 있던 바로 그 마음을 요약하면 바로 이런 것이었으리라.

이야기의 마지막은 세속적인 사랑이 아닌, 오로지 신의 사랑만을 갈구한 남자의 이야기. 대략 좁은 문에 나오는 알리사의 남자 버전이며 조금 더 신경질적이고 짜증스럽다. 일단 기본적으로 내가 릴케의 시를 대할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사실 나는 릴케의 시를, 안 좋아한다. 뭔가가 쨍알쨍알 거리는 듯한 그 감성이 나와는 맞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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