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63]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민음사 세계문학 103

인간실격
인간실격
인간실격

 

데카탕 하면 떠오르는 것이 미안하게도 FSS에 나오는 파티마 수트가 먼저라니, 이것도 큰일이다. 그 다음은 창조, 백조, 하는 동인지 시대 퇴폐문학이고. 그래, 그러다 보니 갑자기 “나의 침실로” 같은 것도 떠오르기는 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레디 메이드 인생에서 볼 수 있는 정서와도 다르다. 제목부터 확 짜증이 밀려오는, 굳이 무언가 한국 문학과 비교하면 이상의 날개를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와도 맞지 않는 어떤 것.

짜증이 났다.

너무도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저로서는 인간다운 생활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도 순수하기 때문에, 1급수에서만 사는 물고기가 더럽혀진 물에서 살 수 없듯 이 홍진의 세상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맑고 순수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요조, 나약하고, 세상에 대한 저항을 애초에 포기해버린. 그래서 세상에 맞추고자 하는 그의 노력 – 익살꾼 – 이 오히려 그를 기형적인 어떤 존재로 만들어 간 것은 아닌지.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남자는 지금 자신은 익살꾼이고 인간은 난해하다고 주장하면서, 그저 남탓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무기력한, 소금을 뿌려놓은 미끈거리는 민달팽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읽는 내내,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그랬다면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세상이란 대체 무엇일까, 세상의 실체는 무엇일까 하면서 정작 그 세상 자체를 부정하기만 하는, 정작 세상에 발목은 커녕 발끝도 대어보지 않은 채 “세상이란 더러워, 어른들은 한심해” 그러고 있는 중2병 환자의 수기를 읽은 더럽고 찜찜한 기분. 차라리 중학교 2학년이 그러고 있다면 이해라도 가지만 그도 아닌, 한 번도 제 손으로 살아보지 못한 무기력한 인간의 이야기.

그냥 죽어.

 

하고 생각하며 책장을 무기력하게 넘겼다. 타락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탓인 듯 말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피해자로서의 입장을 절대 놓지 않는다. 그의 타락은 물론 혼란스러운 시대와, 그 시대 자체가 품고 있는 죄악과 모순으로 인한 것이되, 그는 한 번도 그 시대에 맞서지 않았다. 맞서 싸울 용기도 없으면서 세상은 더러워 하는 사람에게, 그 타락에 대해 무엇을 동정하랴. 세상이 이렇고, 젊은 사람들이 꿈을 갖기 어려운 시대라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루저의 자리에 떨어뜨리는 젊음에는 나는 동정하지 않는다. 성공을 쟁취하거나, 짱돌을 들고 세상에 맞서거나. 그도 아니면 제3의 길을 찾아 개척하거나. 그런 젊음들이 없지 않은데, 그저 자기연민에 빠져 땅이나 파는 것이 과연 무슨 도움이 되랴.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스스로 전쟁의 가해자들이었으면서도 결국 패전국이 되어, 지금은 전쟁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사는 그들 다운 청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그들은 자기들이 가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으리라. 자기들이 못된 짓을 해야 했다면 그것은 세상 탓이요, 지금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그래, 이 찜찜하고 더러운 기분을 어디서 느꼈는가 기억해냈다. 반딧불의 무덤. 이었다. 아, 제기랄.

세상이 엉망이고 인생이 막장이며 청춘들이 잉여잉여하다고 해도, 이 지경만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 탓 남 탓 하면서 저는 선량한 피해자예요 하는 놈들 정말 싫다.

또 다른 단편인 “직소”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떠올리게 했다. 조금은, 그런 것이 어쩌면 좀 더 일본적인 정서인가 싶기도 하고. 일본 쪽 서브컬처에서 유다에 우호적인 것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그런 생각도 했다. 사랑을 거부당하고 예수를 팔아넘기는 유다의 번민이라는 것, 어쩌면 지독히 일본적인 감수성이라는 생각.

다자이 오사무의 허무주의는 알겠으나, 그 소설 속 인물의 중2함은 이거 어떻게 감당할 도리가 없다. 요조같은 인간이 나타나면, 나로서는 그저 죽건 말건 버려두고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도망칠 뿐이다. 치열함이 없는 인생을, 어찌 산 인생이라 부를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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