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59] 적과 흑 (스탕달) 민음사 세계문학 95, 96

적과 흑
적과 흑
적과 흑

초인.

자신의 힘으로 한계를 벗어난 사람. 유리천장을 깨고 날아간 사람. 그런 초월적 존재를 동경하는 것이야말로 젊은이들이 가져봄직한 꿈이자 희망이지만, 특히 나폴레옹을 동경하며 롤 모델로 삼고 있던 쥘리앵 소렐에게 있어 그 욕구는 삶의 원동력이었다. 이 소설의 제목인 적과 흑은, 간단히 말해서 적, 붉은 색, 즉 군복의 색이요 흑은 성직자의 색깔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군인과 성직자야말로 아무것도 갖지 못한 계급의 남자가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었다. 그런 쥘리앵 소렐이 하필이면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도 사실은 흥미롭다.

평민 출신으로 황제가 되어 잠시나마 온 유럽을 자신의 말발굽 아래에 놓았던 나폴레옹이야 본문에서부터 언급되었다고 치고, 목수의 아들로, 여튼간에 “로드”라든가 “왕”과 같은 표현으로 불리는 예수를 연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여튼, 가족들조차 이해하지 못할 만큼 남다른 능력을 지녔지만 그 능력을 뒷받침해줄 배경이라고는 갖고 있지 못한 쥘리앵 소렐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한정되어 있기는 했다. 초인적 능력을 지닌 영웅이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온갖 시련을 거치며 날아오르는 전통적인 영웅담과 같은 시작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겸손함으로 위장은 하였으되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신념이나 의지, 양심이 기본적으로 결여되어 있었고, 그의 목적은 오로지 출세라는 것이 문제다. 그는 “출세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의지로, 야심을 품고 성직자의 길을 택한다.

사실, 적과 흑이라는 이 알쏭달쏭한 제목에 대해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Red and Black(ABC cafe)를 떠올린 것도 사실은 사실이다. 운동권 청년인 앙졸라스와 ABC 카페의 청년들이 부르는 이 노래에서

Red – the blood of angry men!
Black – the dark of ages past!
Red – a world about to dawn!
Black – the night that ends at last!

이 대목.

어떤 면에서는 이 소설의 사회 역시, 그 말 그대로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왕정복고시대. 나폴레옹의 영광은 그야말로 순간의 영광으로 끝나고, 빈 협약 이후 보수주의가 팽배한 시대. 그리고 공화주의를 꿈꾸면서도 동시에 신분상승욕이 강렬한 청년들의 열망이 좌절되는 시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낭만적이고 기사도적인 면모와 기회주의적인 청년 쥘리앵 소렐은 일단 셀랑 신부의 추천으로 베리에르 시장인 소렐 씨 댁 가정교사로 들어가고, 자신의 총명한 머리를 무기삼아 성경의 페이지를 암송하는 진기명기를 보임으로써 신임을 얻은 뒤, 그 부인인 레날 부인의 모성애를 자극하여 그녀의 정부가 되기까지 한다.

시장 부인의 정부가 되는 것이 무슨 신분상승이냐 싶겠지만, 어쨌건 이 시대의 청년이 성공하는 데 있어 발자크의 소설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사교계”란 무시무시한 역할을 하는 법이요, 또한 귀부인과의 연애라는 것이 그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으니 어느정도의 발판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관계는 곧 하인의 밀고로 발각나고 쥘리앵은 가정교사를 그만둔 뒤 신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신학교에서, 이번에는 신학교의 교장 피라르의 추천으로 라 몰 후작의 비서가 되는 쥘리앵은, 이번에는 후작의 딸에게 눈독을 들인다. 그렇다. 이런 캐릭터를 우리는 한국 드라마에서도 적잖이 볼 수 있기는 한데,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망을 품은 남자 캐릭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어떤 면에서 사실, 쥘리앵과 같은 신분상승욕구가 없는 청년은 또 얼마나 있을까. 다만 그를 결행할 의지나 능력이 없을 뿐. 솔직히 말해서, 그 정도의 야심도 없는 놈이 사내새끼냐 라는 생각, 읽으면서 좀 했다. 이놈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너무 젊은 나이에 현실에 순응만 하고 사는 사람이 많아진 이 시대가 짜증나기도 해서. 소설 속의 이 시대는 보수반동이 지배하는 시대요, 지금의 시대는 경제위기와 두 번의 중도정권 이후로 다시 보수로 돌아간 미묘한 시대. 어떤 면에서 겹치는 면이 있는 시대라 할 수 있다. 그 시대에서, 쥘리앵만큼의 패기조차 갖지 못한 젊은 남자란.

매력없지 않은가. 쥘리앵 소렐이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서

사랑을 신분상승을 위한 사다리로 이용하는 남자는 사실 나쁜남자로 분류하기가 더 쉽다. 그것도, 자신의 상사이자 보호자이며 후원자가 되고도 남을 라 몰 후작의 딸인 마틸드를 유혹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실 마틸드와 쥘리앵의 사랑 쪽은, 그럴만한 여자가 그럴만한 놈팽이를 만났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마틸드는, 거만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흔히 요약하는 듯 하지만, 사실 영웅적인 성격의 여성, 낭만주의적이고 기사도를 숭상하며, 허약하고 야심없는 귀족들을 경멸하는 강한 성격의 여성이다. 그런 마틸드에게, 신분낮은 신학생 출신인 쥘리앵이 다가간다. 오히려 그녀를 무시하는 듯 한 그 태도에 호기심을 갖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드라마의 뻔한 클리셰 – 나에게 그렇게 대한 것은 네놈이 처음이야 – 이긴 하지만, 여튼 쥘리앵 소렐이라는 놈은 자존심이 강하고, 경멸을 당하면 참지 못하며, 낭만주의적이면서도 그 낭만이 대책없는 낭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야심으로 표출하는 야심차고 총명한 남자다. 어떤 면에서, 신분을 뛰어넘는 그 결합은 쥘리앵에게는 새로운 신분으로 날아오르기 위한 열쇠인 동시에 마틸드에게는 무기력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귀족청년이 아닌 혈기넘치는 젊은 영웅과의 숭고한 사랑, 이성적이고 숭고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만날 놈이 만날 년을 만났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계속 따라간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임신한 딸. 가문의 명예. 그리고 출신은 엉망이지만 어쨌건 뛰어난 인재인 쥘리앵 소렐. 살아오며 권력과 명망을 쌓아올린 드 라 몰 후작의 머릿속 대차대조표가 한참을 굴러가는 소리가 난 끝에, 후작은 분노하여 쥘리앵을 죽여버리는 대신 그에게 귀족의 작위와, 장교 임명장을 준다. 결혼식이 임박하고 쥘리앵은 그가 꿈꾸던 대로 권력과 지위를 손에 넣게 되지만, 그 모든 것은 한 장의 편지로 무너진다.

그것은 바로 레날 부인의 편지. 후작이 쥘리앵의 인품에 대해 레날 가에 문의하고, 질투심과 신부의 권고에 의해 레날 부인이 쓴, 쥘리앵이 출세를 위해 여자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요지의 편지가 돌아온다. 꿈꾸던 모든 것을 눈 앞에 두고 붙잡을 수 없게 된 쥘리앵은 달려가 레날 부인을 저격한다. 당연하게도. 그는 붙잡혀 유죄 선고를 받지만 놀랍게도 레날 부인은 죽지 않았다. 그리고 마틸드는 신분을 위장하여 쥘리앵의 감옥에 찾아가는 대담함을 보인다. 이 대목에서 나는 또 하나의 적과 흑, 정열적이고 영웅적인 마틸드와, 수동적인 레날 부인의 모습에서 그 색채를 읽었다. 하지만 쥘리앵이 진심으로 사랑한 쪽은 레날 부인이라는 것이, 나는 좀 안타깝기까지 했다. 그는 법정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양이 많아서 치기 어려워 구글링을 좀 했다.)

공판이 속개되었다. 재판장이 사건의 개요를 말하고 있을 때 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재판장은 말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동의 불안에 싸인 정적 속에서 큰 시계의 종소리가 법정 안에 울려 퍼졌다.
‘나의 최후의 날이 시작된 것이다.’라고 쥘리앵은 생각했다. 이윽고 어떤 의무감이 치솟아 그의 온몸은 불타는 듯이 느껴졌다. 그때까지 그는 감동을 억누르며 결코 입을 열지 않겠다고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재판장으로부터 무언가 보충할 것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 쥘리앵은 일어섰다. 맞은편의 데르빌 부인의 모습이 보이고. 그 눈이 광선을 받아서 이상하게 빛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그는 생각했다.
“배심원 여러분, 죽음을 앞두고 이와 같은 일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역시 경멸받는 것은 참을 수 없어서 한 마디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불행하게도 저는 여러분의 계급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관점에서 본다면, 저는 자신의 신분이 천한 것에 반항한 한 사람의 농부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쥘리앵은 한층 더 목소리를 확고하게 하여 계속했다.
“저는 조금도 여러분의 호의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착각 같은 건 조금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죽지 않으면 안 되고, 그것도 당연한 귀결입니다. 온갖 존경과 숭배를 받기에 가장 어울리는 부인의 생명을 저는 해치려고 했습니다. 레날 부인은 저에게 어머니와 같은 분이었습니다. 저의 범행은 잔인했고 더구나 ‘계획적’이었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따라서 저는 사형에 처해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저의 죄가 더 가벼운 것이라 해도, 저의 소년 시절이 얼마나 동정할 만했는가는 전혀 참작하지 않고, 저를 처벌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하층 계급에서 태어나 소위 빈곤이라는 것에 압박받으면서도 다행히 훌륭한 교육을 받게 되어, 대담하게도 부자들이 오만하게 사교계라고 부르는 세계에 들어가려고 하는 청년들의 의욕을 영원히 꺾어 버리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저의 죄입니다. 그리고 이 죄는 지금 이렇게 저와 같은 계급이 아닌 분들에 의해 재판을 받고 있으므로 더욱 엄하게 처벌받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배심원석을 둘러본 바로는 유복한 농민으로 보이는 분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모두가 분개한 유산 계급 사람들뿐이군요…….”
20분에 걸쳐 쥘리앵은 이런 어조로 계속 이야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마음에 응어리졌던 것을 남김 없이 털어놓았다. 귀족 계급의 은혜와 후원을 얻으려고 필사적이었던 차석 검사는 좌석에서 뛰어오를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쥘리앵의 다소 추상적인 변론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흐느끼고 있었다. 진술을 끝내기에 앞서 쥘리앵은 다시 한 번 범행이 계획적이었다는 것, 그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전에 행복했던 시절에는 레날 부인을 존경하고 어머니와 같은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 등을 말했다. 데르빌 부인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실신해 버렸다.
2시 종소리가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배심원실의 조그만 문이 열렸다. 발레노 남작이 엄숙하고 과장된 걸음걸이로 나오고 나머지 배심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발레노 씨는 헛기침을 하고 나서는, 영혼과 양심에 비추어서 검토한 결과, 배심원 일동은 한 사람의 이의도 없이 쥘리앵 소렐이 살인죄, 그것도 계획적 살인죄에 해당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이 답신은 곧 사형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즉시로 그 선고가 내려졌다.

대놓고 계급선언을 하며,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긍지를 버리지 않는다. 그래, 네가 잘했다는게 아니라 넌 정말로 간지 작렬하는 놈이로구나.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 쥘리앵에게 동정적이었던 여론은 단숨에 반대로 돌아간다. 상류층을 넘보는 하층계급에 대한 경고와도 같이, 배심원들은 전원 사형을 주장한다. 쥘리앵은 사형에 처해진다. 레날 부인은 자살하지 말라는 쥘리앵의 말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지만, 쥘리앵이 죽고 사흘 뒤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 세상을 떠난다. 마틸드는, 그녀의 행보야말로 후반, 쥘리앵 소렐 이상으로 영웅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쥘리앵의 잘린 목을 훔쳐 자신의 무릎 위에 얹은 채 당당히 나아가 호화롭게 매장한다. 이 장면을 읽으며, 그의 아이를 임신한 채 그의 목을 무릎 위에 끌어안은 마틸드의 모습에서 피에타를 연상했다. 온통 시뻘겋게 물든 피에타. 레날 부인이 죽었다는 대목에서는 어두침침한 그림자를 느낀 반면. 그렇게, 제목부터 내용까지 선명한 이미지로 가득하다.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닌, 개성적이고 변화하며 살아있는 욕망을 지닌 캐릭터들은 숨막히도록 당당하다. 쥘리앵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만큼의 패기조차 부리지 못하는 놈들이 새삼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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