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38] 채털리 부인의 연인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민음사 세계문학 85, 86

이 소설을 빌려서 나오다가 마주친 학교 직원 선생님도, 우리 사무실 선생님도, 퇴근하다 뵌 다른 선생님도 다들 입을 모아 말씀하신다. “오오, 그거 에로소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차타레 부인을 보시고 그러시나 본데요.” “어, 그래, 그게 그 영화 원작이잖아.” 아 제발 좀!

채털리 부인 하면, 역시 그 에로영화 차타레 부인이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은 사실인 모양이지만, 여튼 초등학생이 이걸 읽고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내일모레 결혼할 30대가 보는게 뭐 어떠랴. 사실은 대학생때 읽었지만 이번에 다시 읽게 되었다. 뭐, 물론 에로소설이라는 말이 아주 무색하지는 않게, 성애묘사에 꽤 페이지를 할애하는데다 공도 들인 것이 사실이다. 음, 어쩌겠어. 그런데다가 성기에다가 이름까지 붙이면서 마지막에 편지에 “제인 부인에게 인사를 보내오”같은 소리까지 하는 걸 보면 변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런 저런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읽었다.

하나의 전쟁으로 인해 상처입은 두 남자. 채털리 부인이라 불리는 코니를 사이에 두고, 이 두 남자의 모습이 교차된다. 남편인 클리퍼드는 전쟁중 입은 부상으로 하반신 불구가 되어 돌아온다. 클리퍼드는 정신적인 관계만으로 모든 것이 잘 되어갈 듯 말하면서도 코니에게 일방적으로 의지하고 집착하여 그녀를 피로하게 만들고, 그녀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들을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당신이 밖에서 아이를 낳아 온다면 자신의 아이로 삼아 집안을 물려줄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소위 위선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일생 동안의 반려자라는 관계가 아니겠어? 한두 번 동침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날마다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 말이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당신과 난 결혼한 부부야. 우린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지. 그런데 익숙하다는 것은, 내 생각엔 말이야, 이따금 흥분을 맛보게 해주는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중요한 생활의 원천이야.  (중략) 결혼의 진정한 비밀은 섹스가 아니라, 바로 거기에 있는 거야. 적어도 단순한 섹스의 기능에 있는 것만은 절대 아니지. 당신과 나는 결혼으로 함께 짜여져 있어. 이것을 받아들이고 따른다면, 우리는 이 섹스 문제를 해결해 처리할 수 있어야 해.

그리고 코니는, 남편이 성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위선을 떠는 것을 감당하며 조금씩 망가져간다.

어렴풋이 그녀는 자신이 어딘가 모르게 부서져 엉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렴풋이 그녀는 자신이 단절되어 있다는 것, 즉 자신이 살아있는 세상의 실체와는 접촉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진정한 존재가 없는, 즉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들만이 말이다. 공허에 이은 공허. 어렴풋이 그녀는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은 돌에다 머리를 들이받는 것과 같았다.

원래 하층민 출신으로 군에서는 장교까지 되었던 산지기 멜러즈는 이곳에서 교육받아 익힌 단정한 말투와 예절을 버리고 코니의 앞에서 일부러 거친 말을 쓰고 자신을 비하하며 천한 체 한다. 코니는 단단하고 강인한 몸과, 천한 신분임에도 어쩐지 단정한 태도가 엿보이는 멜러즈를 엿보게 된다. 이 부분은 미묘하게도, 우리나라 고전 에로영화의 과부들이 돌쇠(;;;;) 등등의 몸을 엿보거나 하는 장면이 오버랩되기도 했지만. 귀부인과, 광부의 후손인 사냥터지기.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육체관계를 갖게 되고, 그리고 대화를 하게 된다.

하층민 출신이지만 공부를 했고, 전쟁을 겪고, 나름 장교까지 올라가며 신분상승을 겪었던 멜러즈, 그러나 한계를 느낀 그는 지금의 사회의 문제점을 나름대로 짚을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는 인물이다. 2권에서 추가로 묘사되지만, 그는 코니와 성관계를 가진 이후로 위선적인 클리퍼드보다 비록 학식은 부족할지언정 정신적으로는 그 이상으로 고결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그의 대사는, 사투리라고 하기에는 미묘한 “배우지 못한 사람의 말투”로 표현된다.

예전에 미국 해군 제독 부어다의 이야기도 그렇고, 콜린 파웰도 그렇고. 우리말 식의 높임말은 없을지언정, 영어에는 상류층 말투와 하류층 말투가 존재한다. (콜린 파웰은 승진을 위해 영어공부를 했다고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과 타라 농장의 노예들 말투는 완전히 다르다. 멜러즈의 말투도 아마 그런 식이리라. 이 지역의 사투리라든가, 교양없는 말투 같은 것이 뒤섞여서. (동네별 계층별로 말투가 다른 것은 마이 페어 레이디만 봐도 나오지 않는가.)

신경쇠약에 걸린 코니는 클리퍼드를 위해 간호사를 붙여준다. 간호사인 볼튼 부인은 또한 클리퍼드를 통해 어떤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을 대리충족하는 동시에, 코니가 멜러즈와 놀아났다는 것을 제일 먼저 깨달은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자에 의해 정말로 온몸 샅샅이 뜨겁게 달궈진 적이 한번도 없는 여자들을 볼라치면, 글쎄요, 그들이 아무리 훌륭하게 옷을 차려입고 나대며 돌아다닌다 해도, 저한테는 결국 불쌍한 처녀 귀신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또한 볼튼 부인은 예전에 멜러즈와의 관계도 있었던 전력이 있다. 그녀는 여러 면에서, 또한 멜러즈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체제에 대해 반항적 비판적인 멜러즈와 달리 그녀는 클리퍼드에 의지함으로써 어떤 권위를, 권력을 손에 넣게 된다.

2권으로 들어오며, 코니와 멜러즈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지만 2권 초반에서 바로 클리퍼드와 멜러즈는 대립하게 된다. 휠체어를 끌고 언덕을 오르던 클리퍼드가 멜러즈의 조언에도 도움이 필요없다고 우기다가, 곤경에 처하자 다시 오만하게 자신을 도울 것을 명령하는 이 사건은 클리퍼드의 입장에서는 사건 축에도 들 만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는 확실히 신분이 나뉜 시대였고, 귀족이 고용인들을 대할때의 태도라는 것은 결코 온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클리퍼드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였기에 고분고분하던 코니가 신경질을 부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허, 이 복음 전도사같은 마누라님아. 그렇개 개인의 존재와 인격을 혼동하는 것은 천박한 짓이야.”
“오히려 평범한 동정심조차 없는 당신의 그 야비하고 메마른 심성이야말로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라거요. 뭐,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이건가요! 흥, 당신과 당신네 그 지배 계급이란 도대체!”
(중략)
“당신같은 사람이 뭐, 지배한다고요!”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지배하는 게 아녜요. 괜히 착각하고 우쭐대지 말아요. 당신은 그저 당신이 가져야 할 몫 이상으로 돈을 많이 가지고서, 주급 2파운드를 주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위해 일을 시키면서 그렇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 뿐이라고요. 뭐, 지배한다고요! 그래, 그 지배로 당신은 무얼 해주고 있나요? 흥, 당신은 그저 눈물 한 방울 없이 바짝 말라붙은 존재일 뿐예요! 당신은 그저 당신의 돈으로 협박하고 있을 뿐이라고요. 유대인이나 쉬버처럼 말예요!”

그러나 이미 멜러즈의, 사회에 대한 이야기와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코니는 달라져 있었다. 이것이 그저 “살정”때문이라고만 해석한다면 코니를 너무 색만 밝히는 여자로 몰아세우는 결과가 될 것이고. 코니의 변화는, 멜러즈에 대한 감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의 의견에, 동의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멜러즈가, “장교를 할 만큼 존경받는 신사가 될 수 있었”지만 고향으로 돌아와 있으며, 아는 척 하고 스노비즘의 극치를 부리며 말문이 막히면 고전을 인용하며 점잔빼는 클리퍼드와 달리, 솔직하고 직설적이면서도 고결한 정신을 지닌 신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신분적 반동을 꾀하는 동시에 그 한계에 머물러 있다. “태생이 신사가 아니더라도 신사일 수 있는”, 혹은 현재 신사의 모습을 하지 않았더라도 영혼만은 신사일 수 있는 남자는, 그만큼 교육을 받았고 한때 신사라 불릴 만한 신분 근처까지 올라갔던 사람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계급주의를 벗어남에 있어 최일선에 설 수 있는 것이 자본가와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이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되며, 이 소설이 단순 야설이 아니라 산업화된 사회, 인간이 도구로서 사용되는 사회에 대한 반기를 든 소설임을 증명하는 부분인 동시에, 이 계급주의라는 한계에 다시 묶이는 꼬투리가 되기도 한다.
멜러즈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화된 이 세상에는 이제 엄청난 인구가 살고 있으며, 그들은 모두 먹여 살려야 하는 존재들이오. 따라서 이 빌어먹을 연극은 어떻게 해서든 계속 진행될 수 밖에 없소. (중략) 어쨌든 그렇게 많이들 지껄이는데도 불구하고, 무얼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오. 젊은이들은 미칠 지경인데, 그것은 바로 쓸 돈이 없기 때문이라오. 그들의 삶은 전부 돈을 쓰는 데 의존하고 있는데, 지금 그들에게 그 쓸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이오. 그게 바로 우리의 문명과 교육의 실체라오. 즉 돈을 쓰는 것에만 완전히 의존하게끔 대중을 가르치고 길러놓는데, 그러고 나면 돈이 떨어져버리고 마는 거요.

지금 이 대목은, 현재의 우리 시대에도 같이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날 때부터 소비에 길들여졌지만, 현재 직업을 구하지 못하거나 비정규직의 멍에에 묶인 현재의 20대 후반 세대들이 이에 속할 것이다. (소위 88만원 세대) 당시 영국은 증기기관이 발전하여 방적기와 방직기를 돌리게 되었고, 양을 키우기 위해 농지를 줄였으며, 농사를 짓던 청년들이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남아도는 인력은 군인이 되어 전쟁터로 나갔다. 사람은 많고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어, 고용인들이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 이 산업화된 시대에 대한 고민을 남기고, 소설은 종반으로 치닫는다. 코니는 멜러즈의 아이를 갖고 이혼을 요구하며, 멜러즈는 쫓겨나고, 클리퍼드는 코니와 이혼할 수 없다고 끝까지 자존심을 세운다. 그러나 편지의 마지막, 멜러즈가 코니에게 남기는 인사를 보며, “클리퍼드의 아내 노릇”을 하며 인형처럼 살아야 했던, 즉 “도구화된” 코니에서 벗어나 성을 통해 스스로를 자각한 코니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멀쩡히 대학교 도서관 씩이나 되어서 미성년자도 아닌 교직원이 이런 책 빌리는 것 두고 어라? 그러지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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