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마비노기라는 게임을 했는데(원래 하던 게임인데 새 미션들이 대거 추가되며 다시 열성적으로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앞으로 업데이트 예정인듯)을 게임 속에서 “연극미션”을 통해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특이한 컨셉의 이벤트를 갖고 나왔다. 그 첫 번째가 햄릿. 이야기의 조연으로 활동하거나 더러는 주연의 롤 플레이를 하며 햄릿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구조라 퍽 즐겁게 게임을 진행해 나갔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모르는 사람도, 햄릿에 대해서는 들어 보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와 결혼하고 왕위를 물려받은 숙부. 숙부에 의한 아버지의 독살. 그리고 복수. 그리고 어째서인지 우유부단하다고 알려진 햄릿. (그러나 실제로 햄릿은 그렇게 우유부단한 인물은 아니다. 유령이 나타나서 한 말을 100% 바로 믿고 숙부부터 죽이고 시작하면 그건 뇌가 없는 캐릭터지.)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햄릿보다는 클로디어스 왕, 햄릿의 숙부 쪽이다.
아, 이 죄악, 그 악취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형제를 죽여 인류 최초의 저주를 받은 카인의 범죄, 내가 그 저주를 받는구나! 기도 드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정작 기도를 드릴 수는 없다. 헛수고일 뿐이다. 죄책감이 이렇게 강하니 양다리를 걸친 사람처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망설이다 아무 것도 못하고 만다.
비록 내 손에 형의 피가 엉겨붙어 두꺼워졌다 할지라도 이 저주받은 손에 하나님이 자비로운 비를 억수같이 내려주셔서 눈처럼 희게 깨끗이 씻어줄 수는 없을까? 죄인을 구제해주지 못한다면 어찌 자비라 할 수 있는가? 죄를 미리서 막고, 또 저지른 죄악을 용서해주는 이중의 공덕이 있기에 바로 기도를 드리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도 희망을 갖고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으리라…
내 죄는 이미 저질러진 것. 그러나 어떤 기도를 드려야 알맞을까? ‘비열한 살인죄를 용서하소서’라고 할까? 안될 말이지. 글쎄 나는 살인의 결과 얻은 이득을 아직도 움켜쥐고 있지 않은가. 왕관와 야망, 그리고 왕비를 손아귀에 넣고 아직 흥청대고 있지 않은가? 죄로 얻은 소득을 어깨에 짊어진 채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 썩어빠진 세상에선 죄로 더럽혀진 손도 황금으로 덧칠하면 정의를 밀쳐낼 수 있으며 부정하게 긁어모은 바로 그 재물로 국법을 매수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하지만 천국에서는 그게 통할 수 없어. 기만은 통하지 않아. 하나님 앞에서 우리 행위는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우리는 자신의 죄와 마주 대하면서 모든 죄상을 일일이 실토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럼 어떡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참회하자… 참회하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참회할 수도 없는 경우에는 어찌한다? 아, 이 비참한 심정! 오, 죽음같이 어두운 이 가슴 속! 덫에 걸린 새 같은 내 영혼이여! 덫에서 빠져 나오려고 파닥거릴수록 더욱 꼼짝도 할 수 없구나! 천사들이여, 날 도와주오! 그래, 어디 해보자. 자, 완고한 무릎이여 꿇을지어다. 강철같이 굳은 심장아, 갓난아기 근육처럼 부드러워지렴… 그저 모든 것이 다 잘 되어지기를… (무릎을 꿇는다)
이런 참회를 하는 그를 죽이려던 햄릿은, 그가 기도할때 죽였다가는 천국에 갈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검을 거둔다. 하지만 이렇게 고뇌하고 있어도 클로디어스는 동시에 현실을 잊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햄릿을 없애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결국 그 음모로 인해 스스로 파멸하지만)
햄릿의 클로디어스 왕의 고뇌는, 맥베스의 고뇌와도 이어진다. 감상은 짧게 남기고….. 다음 순서는 맥베스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