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21] 크눌프 (헤르만 헤세) 민음사 세계문학 111

크눌프
크눌프
크눌프

 

크눌프는 그동안 헤세의 책들에서 보았던 인물들의 어떤 한 유형이자, 또한 새로운 유형이다. 그는 고뇌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바람과도 같은 사람이다. 친구들과 어울리지만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미련없이 떠날 수 있는 사람. 옷차림은 남루할지라도 그는 늘 몸을 깨끗이 하고 면도를 하고, 예절 바르게 행동하며 외롭다고 해도 친구의 아내나 옆집의 아가씨에게 함부로 추파를 던지지 않는 신사이기도 하다.

그는 신사의 마음을 가진 예술가였다. 시를 짓고, 휘파람을 부는. 골드문트와도 일맥상통하지만, 그는 고뇌하지 않는다. 그는 어린이와 같이 천진한 마음을 갖고 있으며, 그 자체로 자유를 상징하는 사람이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그의 친구들에게 있어 크눌프란, 유쾌한 사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방랑자. 저렇게 자유롭게 살고 싶기도 하지만 걱정하는 척 하면서 동시에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는, 우리와는 다른 존재다. 아름답기 때문에 즐거움 뿐 아니라 슬픔이나 두려움도 함께 불러일으키는, 그것은 곧 자유다. 한스 기벤라트는 학업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수레바퀴 아래로 끌려들어갔지만, 지금 버티며 살아가는 어른들 역시도, 자유를 억압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회적인 입장에서 볼 때 크눌프는 분명 실패한 인물이지만, 그는 재능있고 생명력 충만한 사람인 동시에, 사람들에게 자유를 일깨우는 존재다. 어떤 면에서 헤르만 하일너가 어른이 되며 그 날카롭던 성격이 둥글둥글해지면 그와 같은 모습이 되지는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연약한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사람들이 잊어가는 어떤 가치를 여전히 품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그 유쾌하고 자유롭던 삶과, 신의 품에 그대로 안기는 듯한 죽음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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