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08]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민음사 세계문학 8

토니오 크뢰거
토니오 크뢰거
토니오 크뢰거

여덟번째 책이 마침 민음사 전집 여덟번째인 토니오 크뢰거다.

이 이야기는 대립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서로 대립된 세계의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젊음과 청춘에 대한 이야기이자 소년을 벗고 청년이 되어 자신의 길을 걸어가려는 젊은 작가의 모습이며, 그 대립된 세계를 두고 벌어지는 내면의 변증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모순 혹은 대립된 세계들의 정반합”이라고 말하기는 또 어려운 것이, 그쪽으로는 이미 헤세의 지와 사랑(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하지만 역시 처음 읽었을 때의 제목이 머리에 박혀있는 법이다)이 있는데다, 소설의 마지막에 토니오가 사랑과 동경에 대해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두 세계, 아니, 두 종족을 합쳐놓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로 보이니까.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나르치스 역시도, 일반적이고 평범하며 시민사회의 일원인 상식적인 사람, 이라기보다는 이성적인 면으로 치우쳐 있는 사람이니 저쪽도 안드로메다 외계인;;; 으로 비치기는 마찬가지일 인물이고. (다만 사이코 소리를 듣기보다는 동경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좀 더 높기는 하겠지…..) 그리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서로 싸우고 웬수지며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접점없이 평행하게 달려가고 있음에도 서로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니까. (에바 부인이나 데미안과 싱클레어를 생각하면 된다) 다르지.

첫번째 대립은, 남부 출신의 자유롭고 정열적이며 감정적인 어머니(그러고 보니 골드문트의 어머니도 자유분방한 여성이었다고 나온다. 아마도 남쪽 출신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말인데 게르만 족에는 예술가가 없냐!) 대, 참정관이자 영사로 이성적이고 조용하며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에 기쁘면서도 아버지가 옳다고 느끼는 모순. 그리고 존경받는 크뢰거 씨의 아들인데, 어머니의 친척 이름을 딴 이국적인 이름과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 그 소년은 성적이 우수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좋은 집안 출신인 친구 한스 한젠을 사랑하고 동경한다. 댄스 교습 시간에 만난 잉게보르크 홀름을 사모한다. 한스나 잉게는 금발이고, 친구들과 함께 있으며, 시를 쓰고 책을 읽으며 혼자 사색하는 토니오와는 다르다. 한스는 다른 친구들과 있을 때에는 토니오에게 서먹하게 대하고, 잉게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토니오의 실수를 비웃는다. 그리고 토니오는 그들을 부러워하고, 소외감을 느낀다. 그들을 짝사랑하는 만큼 고통을 받는다.

쉽게 말하자면 일반인들과 일반인 코스프레한 외계인. 인 것이다. 조금 있어보이게 말한다면 평범하고 무지하며 속물적인 시민사회의 일원들 대 예술적 감성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고.

하 여간, 어른이 되어 남쪽에서 살던 토니오는 고향인 덴마크로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 전, 친구이자 화가인 리자베타는 토니오의 고민에 대해 “당신은 길을 잘못 든 속인”이라는 선고를 내렸다. 분열된 세계의 한가운데에서 고민하다 못해 저런 말까지 들은 토니오는 덴마크와 발트해, 그리고 고향을 여행하며 몇 가지 일을 겪는다. (근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평범하고 규칙에 따르는 시민들 속에서 그는 남들과 달라 보이기 때문에 경찰의 의심을 사기도 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젊은 시민사회의 댄스 모임에서 한스와 잉게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토니오는 그들에게 아는 척 하거나 말을 걸지 않고, 다만 짓눌린 감정으로 괴로워할 뿐이다. 그가 동경한 것은 평범하고 밝은 시민들의 삶이었고, 그는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삶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 제가 해놓은 것은 무(無)라고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좀 더 나은 일을 해야겠습니다.”라고 리자베타에게 편지를 쓴다. 작가로서 자신의 길을 찾은 것이다.

베니스에서 죽다, 도 그렇고, 토마스 만의 소설은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않았다. 토니오 크뢰거는 고등학교 때 읽었는데, 솔직히 그때 내 정신상태로 외계인 취급받는 인간이 “나는 이렇게 홀로 서서 저기 자기들이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바라보고 동경하면서 예술을 하겠소” 하는 소설이 먹혔을 리가 없다; 오히려 지금은 헤세를 덜 읽는데, 그때는 헤세를 열심히 읽었다.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온 것은 다 읽었다, 고 기억하니까. (교과서에 에밀과 나비 나오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도 읽었고)

오히려 지금은, 글쎄.

본성이 이과적 인간인 것을 보면, 멀쩡히 직장인의 삶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예술쪽으로 치우친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닌 것은 틀림없지만 어디 가도 외계인 취급이나 당하는. 그런 지금의 나, 에게는 또 느낌이 다르다. 섞일 수 없어도 사랑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몇년 뒤에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책들은, 읽어야 할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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