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고전읽기-004]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요한 볼프강 폰 괴테) 민음사 세계문학 25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이 소설을 싫어한다. 속된 말로 아주 찌질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베르테르 효과라고, 이 소설이 대 히트를 쳤던 당시 노란 조끼에 푸른 연미복을 입고 자살한 청년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하는데. 한번 이런 경우도 생각해 봐라. 말이 좋아 베르테르를 따라서 그렇게 입고 자살까지 했다는 거지, 누군가 길거리에서 샤아 아즈나블 코스프레를 하고 길가던 사람을 붙잡고 샤아의 명대사를 날리거나 길바닥에서 레이의 코스튬을 입고 항가항가 거리고 있는 상황과 그게 뭐가 다른지. 소설 자체도 찌질하고 소설로 인해 벌어졌다는 사건도 (사람이 죽었으니 찌질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참 뭣하고 아무데나 베르테르 효과라고 갖다붙이는 것도 마음에는 안든다. 그냥 날씨처럼 변덕스러운(베르테르는 Werther이고 날씨는 weather다. 한글자밖에 차이 안나다 보니 연상이 된다) 스토커 청년이 남의 약혼녀에게 반해 온갖 민폐를 끼치다가 결국 그녀와 그녀의 남편에게까지 장렬한 민폐를 끼치고 죽는 이야기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알베르트 씨, 나는 당신의 호의를 악으로 보답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를 용서해 주겠죠. 나는 당신의 평화를 방해했고, 당신들 부부 사이에 불신과 의혹의 씨를 뿌렸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이제 끝내려 합니다. 오오, 나의 죽음으로 해서 그대들이 부디 행복해지기 바랍니다. 알베르트! 알베르트! 저 천사를 제발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자, 그러면 하느님의 축복이 그대 위에 깃들이기를.

자살 전 알베르트에게 남긴 편지를 보다 보면 실소만 나온다. 문자 그대로 알베르트와 로테 커플의 평화를 방해하고 불신과 의혹의 씨를 뿌린 주제에, 마지막까지 “나는 당신 부인을 사랑했음. 마음껏 의심하세엽”이라는 듯이 쓰고 가는 저 유치함에는 탄식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그것도 알베르트의 권총을 빌려서 자살하는 것 보면 더욱 할 말이 없다. 이쯤되면 냉정하고 이성적인 알베르트가 이성을 넘어 성인군자로 보일 지경이 된다.

그런데다 로테에게 쓴 편지는 더욱 가관이다.

자아, 로테,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차갑고 무서운 술잔을 손에 들어 죽음의 도취를 다 마셔버리렵니다. 당신이 이 잔을 손수 내게 내어주셨습니다. 나는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내 인생의 모든 소원과 희망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냉정하게, 이렇게 담담하게 죽음의 철문을 두드립니다!

마치 로테가 죽으라고 독촉이라도 한 것 같은 이 편지를 쓰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히스테릭하게 오시안의 시를 줄줄이 읽어주고, 홀로 슬픈 구절에 압도되어 “로테 앞에 꿇어 엎드리고 그녀의 두 손을 붙잡고 차례로 자기의 눈과 이마에다 눌러댄” 뒤 “두 팔로 그녀를 휘감아 가슴에 꼭 껴안은 다음, 떨리고 웅얼거리는 입술에다 미친 듯 키스를 퍼부어댄” 상태였다. 요즘의 법대로라면 의심의 여지 없는 성희롱이다.

자, 지금은 18세기, 로테는 양가집에서 곱게 자란 숙녀이고 알베르트의 아내이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로테가 “다시 찾아오지 말아달라”고 한 것이 로테의 잘못이냔 말이다. 베르테르는 혼자 제 성질에 겨워 자살한 것도 모자라, 사랑하는 여자에게 마지막까지 스토킹을 하다가 그 죽음에 대한 책임까지 떠넘기고 간 인간에 불과하다. 시대가 바뀌어 21세기라 팔자좋게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모든 문학작품은 그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요, 18세기의 숙녀가 자신의 정절과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연모-라고 쓰고 스토킹하는 놈팽이에 대해 그만큼 참아주었으면 많이 너그러운게 아닌가. 결혼 전에야 자신을 연모하는 청년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월감을 가질 수도 있겠고, 혹자의 말처럼 로테가 어장관리를 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베르테르가 제대로 된 남자였다면, 결혼한 뒤 로테가 자신에게 거리를 두었을 때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해 두었어야 하는 게 옳다. 아니면 아예 돌아오지 말았거나.

여튼, 젊은 독자층을 감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은 사랑 이야기라고 하지만. 중학생 때에도 지금에 와서도, 베르테르는 그저 스토커 찌질이에 불과했다. 21세기였다면 로테는, 혹은 알베르트는 이 한심한 지인에 대해 경찰과 진지한 상담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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