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001]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민음사 세계문학 36

마담 보바리
마담 보바리
마담 보바리

학교 다닐 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주인공에게 공감도 하지 못했고, 여자에 대해 왜 이런 식으로 그렸을까 정말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때 내렸던 결론은 아무래도 플로베르가 살던 시대의 여자들은 사회에 나오거나 교육을 받을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저 착실한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어 지루하게 살지 않으면 사랑이라든가 로맨스라든가 그런 꿈과 환상에 자신을 파멸로 몰고가는 방식으로밖에는 자신을 찾을 수 없었나보다, 뭐 그런 것이었다.

자라면서 나로서는 공감할 수 없지만 내 주변의 여자들에게서, 마담 보바리의 조각들을 보았다. 가격대 성능비 한없이 떨어지는 가방을, 한두개면 정말 그들 말대로 명품이 오래 가니까, 혹은 대 물려 쓸 수 있으니까 산다는 말을 납득이나 하겠는데 자꾸 사면서 카드값이 어떻다고 하는 여자들이나, 아기를 임신하거나 하면 아기 핑계로 계속 이런저런 것들을, 아기보다는 자신의 허영을 위해 사들이는 엄마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변에 대놓고 바람피우는 여성은 없으니까 바람피우는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어른이 되고 보니 생각외로 보바리 부인의 단편들은 여기저기에 있었다.

어떤 토양에 고유한 것이어서 그곳 아니면 어느 곳에서도 잘 자라지 않는 식물이 있듯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는 곳이 이 세상 어디엔가 따로 있을 것 같았다. 어째서 자기는 옷자락이 긴 검은색 비로드 양복을 입고 부드러운 장화에다 끝이 뾰족한 모자와 소매 장식을 단 남편과 함께 스위스 산장의 발코니에 팔꿈치를 고이거나 스코틀랜드의 오두막집에서 애수를 달랠 수 없단 말인가! (결혼 초, 그냥 순둥하기만 한 남편에 대한 불만이 비현실적 공상으로 쏠리면서)

엠마는 처음에는 몹시 놀랐지만 이윽고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서 빨리 애기를 낳고 싶어했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비용을 들일 수도 없고 장밋빛 비단 커튼이 달린 쪽배 모양의 요람과 수놓은 아기 모자를 살 수도 없게 되자 갑자기 심사가 뒤틀려서……(베르트를 임신한 당시. 이사한지 얼마 안되었고 엠마가 사들인 물건들 때문에 가세가 넉넉하지 않았을 때)

그러다가 “나는 정숙해”하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거나 체념한 포즈를 취하며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바라볼 때면 그 순간의 자긍심과 기쁨을 통해서 자신이 치르고 있는 희생을 다소나마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레옹에 대한 정열에 불타면서 겉으로는 정숙한 부인인 척 할 때)

그냥 이 대목들만 봐도 주변 여자들에게서 조금씩은 이런 요소들이 보이니까. 한 사람이 이런 속성을 다 갖고 있으면 그것도 정말 난감한 일이겠지만. 어쨌건 그런 현실에 없는 낭만(이것은 이상과도 거리가 멀다)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짜증내고, 자신의 노력이나 변화시키려는 의지 없이 그저 흉내내고 동경한 결과는 사회적인 몰락, 남들의 비웃음, 어디로 보아도 싸구려가 된 키치에 지나지 않는다. 경고일까.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수도원에서 통속적인 낭만소설을 잔뜩 읽으며 현실과는 다른 낭만적인 어떤 것을, 그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외관만을 부러워하게 된 여자가, 현실적이고 (아주 유능하진 않지만) 성실한 남편을 시골 촌뜨기에 바보라고 생각하며 내가 왜 이런 결혼을 했을까 후회하다가 결국 남편을 등골 빼먹고 자신은 차례로 다른 남자들의 정부가 되며 엄청난 빚을 지고 자살하는 이야기. 라고 요약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사실은 뻔한 이야기다. 간통문학. 비슷한 플롯을 갖고 그냥 벗기고 굴리는 소설을 쓰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챠타레 부인이라는 에로비디오는 있었는데, 이 플롯갖고 나온 에로비디오는 왜 없나 모르겠다. 트렌디 드라마 매니아에 바람피우는 의사 부인이라는 소재만으로도 할 말 많았을 텐데.)

그런데, 이 소설이 그저그런 간통문학과 맥을 달리하는 것은 그 묘사에 있다. 시골 마을의 정경이나, 사람들이 카드놀이를 하며 주고받는 이야기, 로돌프와 엠마 사이에 끈적끈적한 시선이 오가는 농사 공진회 장면, 약제사 오메가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는 그 모든 장면은, 번역을 통해 한번 걸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 엠마 보바리의 내면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대신, 플로베르는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묘사로 그 내면에 사람의 모습을 입혀 살아 움직이게 하고 있다.

이 무렵만큼 보바리 부인이 아름다웠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녀는 환희와 열광과 성공이 가져다주는 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한 몸에 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기질이 처지와 맞아떨어진 조화 바로 그것이었다. 마치 비료와 비와 바람과 햇빛이 꽃에 작용하듯이 그녀의 갈망, 슬픔, 쾌락의 경험, 언제나 젊디젊은 환상이 그녀를 점점 발전시켜가지고 마침내는 그 천성을 충분히 살린 풍만한 모습으로 꽃피워놓은 것이다. (로돌프와 도망가기로 약속하고 약속날 직전)

그렇게 씨줄 날줄이 얽히는 듯한 섬세하고도 잘 짜여진 묘사와 함께, 이 이야기는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면서도 확실한 맥락을 갖고 움직인다. 이야기의 플롯을 말할 때 앞에서 총이 나왔으면 뒤에서는 그 총을 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로돌프가 나올 즈음 등장한 업자 뢰르가 나중에는 결국 엠마를 빚더미에 몰아넣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역할이 될 것이라고, 등장 당시에 누가 생각할까. (로돌프야 엠마와 바람피우기 위해 노리고 나온 캐릭터고) 사실 에마 보바리는 결국 돈때문에 자살한 것인데, 내 주변의 내가 본 마담 보바리의 조각조각들 역시 대개 돈문제를 갖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 소설은 그냥 사실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의 프랑스 소설, 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현대에도 계속 재해석되어 읽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그래서, 남자 하나 등골 완벽하게 빼먹고 집안 기둥뿌리마저 뽑아먹은 뒤 장렬하게(?) 자살한 에마 보바리의 딸, 베르트가 어떻게 되는지를, 섬뜩할정도로 냉정하게 “관찰자적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모든 것을 다 팔고 나니까 십이 프랑 칠십오 상팀이 남아 어린 보바리 양이 할머니한테로 가는 여비로 쓰였다. 노부인도 그 해에 죽었다. 루오 노인은 중풍에 걸렸기 때문에 어떤 친척 아주머니가 아이를 맡았다. 그녀는 가난해서 생활비를 벌도록 베르트를 방직공장에 보내서 일을 시키고 있다. (책 끝에서 세번째 문단. 나머지 두 문단은 약제사 오메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이 잘한 것 없는 에마 보바리의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사람들, 특히 남성 작가들은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여자들에게서 아주 작은 마음에 안 드는 조각들을 찾아내고, 그걸 한 사람에게 똘똘 뭉쳐 괴물처럼 만든 뒤, 그 젊고 아름답고 결점을 지닌 여성이 아주 타락하고 망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이 타입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이건 이 타입들의 어떤 농축액이지, 리얼리즘이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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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 Hey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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