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Tagged “세이군”

11시에 만나, 인사동 신포우리만두에서 분식과 만두로 가볍게 점심을 먹고 대학로로 향했다.

대학로에서 본 것은 강풀 원작, “그대를 사랑합니다”였다. 세이군은 장군봉 할아버지가 암에 걸린 아내와 나란히 가기 위해 가스를 피우고 잠드는 모습을 보며 엉엉 울었다. 오늘 프로포즈를 할 예정이라고 말해 두었지만, 나는 계속 남산 꼭대기에서 번지점프를 할 것이라는 뻘소리만 하고 있었다.

세이군은 조금은 로맨틱한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번지점프라는 말에 경악하는 듯 했다.

그게 훼이크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비 때문이었다. 비가 오면 번지점프를 할 수 없는데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까. 어쨌건, 연극을 보고 우리는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 애니메이션 센터를 지나 돈까스집들 있는 쪽으로 올라가면 있는, 프로포즈로 유명한 레스토랑 “촛불 1978″, 세이군이 78년 생이라 일부러 골랐다. 안쪽의 룸을 예약하고, 테이블 가득 장미꽃 장식을 부탁했다. 방으로 안내를 받은 세이군은 많이 놀랐고, 추억으로 삼을 수 있도록 꽃잎들을 가져오고 싶어했지만 사용된 꽃잎은 또 다시 모아서 사용하는 듯. 그래서 반지 상자에 기념으로 몇 장을 모셔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깔루아와 탄산수를 섞은 아페리티프부터 시작하여, 전채, 수프, 그리고 정식으로 이어지는 코스였다. 반지는 미리, 케이크와 함께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 둔 상태였다. 식사가 끝나고, 서버는 조명을 어둡게 해 주었다. 테이블 구석의 촛불에 의지하여 나는 편지를 읽어주었고, 케이크에 꽂힌 초를 보며 소원을 빌라고 말하고는, 세이군의 손가락에 새 반지를 끼워주었다.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사귀어 온 10년의 어느 순간보다도 행복해보이는 그 미소에 가슴이 설렜다. 내려오는 길에 조금 비를 맞았고, 세이군의 부모님 – 뭐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 이 세이군에게 갑자기 전화를 걸어 애를 잡으시는 바람에 조금, 세이군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는 했지만.

약속할께. 내가 지켜줄께.

사랑해.

나와 결혼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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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결혼을 하겠다, 고 선언한 이후로 나는, 주말에 나와서 근무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보이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얼마나 보탬이 될까 생각하면서도, 각이 안 나오는 일들은 세상에 너무나 많다.

일단 나는, 결혼하면서 집장만을 하고 싶었다. 지상에서 3층 이상 올라가고, 하루에 세 시간은 볕이 짜랑하게 드는 집을 사고 싶었다. 군산에서, 비만 오면 지상에 있는 고시원 방의 벽으로 물이 스며 책들이 젖고 주말에 집에 갔다가 돌아오면 벽에 걸어놓고 간 수트에 파랗게 곰팡이가 피는, 그런 집은 질색이었다. 볕이 잘 들고, 1, 2층은 싫고. 그리고 책들을 잔뜩 꽂아놓아도 집주인이 와서 그 책 박스에 입을 떡 벌리며 투덜거리지 않을 “내집”이 필요했다. 분명히 작년까지는, 작년 겨울까지는 그게 가능한 일이었다. 계양구에서 근무하며 나는 계산주공에 눈독을 들였고, 작년에 그 계산주공이 8천만원 근처를 왔다갔다 할 때, 나는 남자친구에게 돈을 합쳐서 저걸 사자고 했다. 융자를 받고 전세를 껴서 사 놓았다가, 결혼할 때 전세 빼주면서 들어가서 살고 싶다고 졸랐다.

하지만 문제는 걔도 나도, 빈티 하나는 남부럽지 않게 흘렀다는 거다.

세이군과 나는 1년쯤 더 모아서 그때 융자를 받아서 사자고 했다.

그리고 그게 지금 1억 4천이 넘는다. 아, 십라. 1년에 6천이 뛴 거다. 정말 욕하지 않고 싶어도 욕이 나올만한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욕심을 부렸나, 딱, 14평짜리 누울 집 하나 원한 것 뿐이었는데.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나는 내가 꿈꾸던 계산주공은 안되더라도 하여간 집을 사겠다고 선언했다.

엄마는 이게 미쳤나 하셨다.

“아니, 집을 남자애가 해 오지 왜 네가 해?!”

“세이 집 나왔잖아!”

……..그랬다.

털어 먼지도 안 나오는 데다, 우리집은 아직 대학생도 한마리 있어서 도움받을 건수가 없었다. 하긴, 학비융자 갚느라 모아놓은 돈이 적어서 작년에 그거 못 질렀다고 했다가는 엄마가 속상해 하실 테니 뚝. 하여간 그랬다.

하지만 내가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니었다. 주변의 다른 여자분들, 엄마 친구 딸들, 직장의 여선생님들. 결혼을 하며 브랜드 아파트를 사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브랜드 아파트, 24평 이상 되는 집에 전세를 얻어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웬만큼 브랜드 붙은 24~27평짜리 아파트에 전세 들어가는 돈이면.

조금만 더 보태면 내가 바라는, 14~16평짜리 아파트를 살 수도 있었다.

어쨌건 엄마는 “하이고, 그게 뭐가 이쁘다고 집장만까지 해서 보쌈을 하려고 하냐.”하고 탄식하셨지만, 적어도 말리지는 않으셨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나는 한주에 한두번씩 마을버스로, 전철로, 계양구 곳곳에 내려 걷기 시작했다. 저녁 어스름에 여자애 혼자 돌아다녀도 무섭지 않은 동네, 볕이 잘 들것 같은 동네. 그런 동네를 찾아 지도에 체크하며 다녔다. 단지가 여섯~일곱군데로 압축이 되고, 나는 낮에, 세이군을 데리고, 그런 동네들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데이트를 갈음하기 시작했다. 세이가 마음에 들어하는 곳은 두 단지였다. 보는 눈은 있어갖고 그중 한 군데는 하필, 내가 찍은 곳 중 제일 비싼 단지였다. (평수가 더 넓기는 하지만 계산주공과 엇비슷한 가격이 나올 만큼)

“그러고 싶었으면 더 벌었어야 할 것 아냐!!!!!!”

하고 버럭, 웃으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속은 상했다.

내 책들을 마음놓고 꽂아놓을 수 있는 집장만을 하겠다고, 다른 선생님들이 전세로 시작했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초등학교에 가고 하면서 더욱,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일찍 고생하고 말자고 하고 있지만, 지금 보아두는 단지들에 들어가려고 해도 역시 융자를 받아야 한다. 작은 아파트니까 쉽게 가격이 떨어지지는 않겠지만(그 IMF 때에도 그때 우리집이 살던 18평은 천만원도 안 되게 떨어졌다가 반년도 안되어 원복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조금 넓은 집은 1/3은 떨어졌고. 그래서 그때 18평 가격 원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엄마가 이 집을 지를 수 있었다.) 융자는 몇년간 세이군의 얄팍한 봉급을 넘치게 부어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내 봉급으로 먹고 살아야 하니, 저축도 쉽지 않을 지도 모르고. 어디로 봐도 막막하고 팍팍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혼수 세간도, 책상이랑 책꽂이만 새로 사고 나머지는 세이가 관사 원룸에서 쓰던 것들을 가져오자고 할까.

얄팍하고 한심한, 8급 공무원의 월급.

본봉과 수당과 초과수당을 합쳐 160 남짓한. 대체 공무원이 잘먹고 잘산다는 소리 하는 놈이 있으면 혓바닥을 뽑아놓아 버리리라. 발령받았던 첫 해 겨울, 겨울이라 고시원 방에는 사방에 성에가 어는데 월급통장에 98만원 찍혀있는 것 보고 나는 객지에서 목놓아 울었다. 시발. 이러려고 공부했냐. 직장 없이 알바만 할 때에도 한달에 100은 벌었는데. 어떻게 100만원도 안되니! 2002년에 내 첫직장에서도, 한달에 실수령액으로 130은 받았는데. 하고. 결혼 내년에 하려고요, 하고 말하면 으레 여선생님들의 이야기에서 따라나오는 드레스, 스촬, 신혼여행, 혼수, 한복, 예물. 그런 것들. 속이 상해서 웅크리고 있으면 엄마는 “그러니까 세이군이 아니라 기반 잡힌 남자애였으면 너도 다 할 것들이잖아. 이것저것 다 떼고도 저축을 그만큼 해놓고는!” 하고 한마디 하고 가신다. 세이군은 더 속상했을 거다. 집을 나오고, 결혼할 거라는 이야기만 집에 툭 던져놓고 식에만 모시기로 했었다가, 부모님께서 “네가 우리 말을 잘 들으면 결혼비용을 보태준다”고 하시는 말씀에 끌려다녔던 것도, 나는 세이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내게 해주고 싶었던 게 많았기 때문임을 잘 안다. 알아서, 화도 내지 못했다. 세이군은 초토화가 되어 자기 숙소에 뻗어있고, 아들을 그지경을 내 놓으신 그 부모님께서 당당하게, 나를 불러내어 레이드를 뛰시는 그 순간에도, 나는 연락을 받지 못하는 세이군이 걱정되고 화를 내기는 했지만, 사실은 보태줄 의사가 없으면서 아들과 며느릿감을 당신들 손에 쥐락펴락하려 하시려는, 그래서 세이군을 저 지경을 내 놓은 그분들에게 분노했다. 그런 식으로, 스무 살이었던 아버지의 인생을 바꾸어주신 동시에 그후 20년동안 아버지를 마음고생 시키셨던 친척분을 알기 때문에. 내게 “왜 욕심을 부리니, 전세를 살거나 공무원 임대아파트 들어가지” 하시는 그분들께 “세이가 모아놓은 것으로 전세금은 되는 줄 아십니까.”라고 되물었던 것도, 그런 사유로 예단도 폐백도 못 하겠다는 말에 경악하시는 두 분께 “저는 예물 안 받겠다고 저희 엄마를 설득하는 데 한 달 걸렸습니다. 그댁의 일은 세이군이 알아서 하겠죠.”하고 모르쇠 했던 것도. 남들 다들 한다. 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초라하게 하는 것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곧 아이가 태어나는데 반년만, 하고 사정하는 젊은 어머니를 쫓아내던 그런 전셋집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책들이 수장될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딱 열 평에서 열 다섯 평 사이면 족한 그런 집이다. 내가 돌아와 쉬고 글을 쓰고 사랑할 수 있는.

그게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것일까.

융자금을 계산해보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결혼식 비용은 어째서 다 쳐내도 이렇게 돈 들 구석이 많을까. 신혼여행도 가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을 때 세이는 속상해서 울먹이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결혼식도 하지 말고 물 한그릇 떠놓고 맞절하고 살았으면 딱 좋겠다. 드레스면 드레스, 여행이면 여행, 한 가지 힘주어서 하면 된다고 얼마 전 결혼한 사람이 그러더라. 글쎄, 전선생은 보이쉬한 스타일이니까 결혼식때 확 변신하면 다들 깜짝 놀랄 거야.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어차피 드레스며 뭐며로 힘준다고 해 봐야 티도 안 날텐데. 내집마련에나 힘 줘야겠다. 후우. –+

젊음은 원래 빈티나는 것이지만

빈티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구차해지지 않으려고 어금니에 힘주고 서 있지만.

짬이 나서 rss 리더를 켜보았다가 글곰님 글을 보았다. sipdae.egloos.com/3939327 내가 일을 마치고 여기저기 동네들을 기웃거리고 돌아와 끙끙 앓던 그런 밤에, 누군가 또 다른 사람도 그런 일을 생각했다는 것이 씁쓸하면서도 안심이 된다. 혼자가 아니라, 는 생각을 오랜만에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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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이렇게 하는 짓 하나하나가 다 귀여운 거니.
 
 
 
 
야근중 날아온, 어서 나와서 데이트하자는 조름문자.
그리고 새 디카는 문자도 잘 찍혀서 정말 좋구나.
전에 쓰던(2001년에 사서 올 초까지 쓴) 녀석은……(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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