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사장님은 약속대로 싸고, 가깝고, 안전한 방을 구해주었다. 200/27이면 이 근처에서, 단독주택을 원룸으로 개조한 방들을 제외하면 가장 싼 가격이었고, 그런데다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가 풀로 포함되어 있었다. 통상 원룸 생활자가 전기 수도 가스비로 5만원 이상 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터넷만 알아서 구해 넣으면 된다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런데다 학교 정문에서 정말 걸어서 5분 거리고, 학교 뒤쪽 초등학교와 그 옆 중학교 사이에 있는 칼국수집 건물 3층이라는 입지조건은 코코마들 뛰노는 소리로 시끄러울지언정 그나마 밤길에 조금은 덜 위험할 것임을 보장해주고 있었다.
원래 어제 소개받은 방은 200/32였으나, 그 방은 어젯밤에 나갔고 어제 저녁때 이 방이 새로 나왔다. 어제 본 방의 건너편 방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볼 것도 없다고 말했다. 어제 본 방과 달리 주방과 방이 분리되지 않았고 약간 작았지만 남향이고 알차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바로 계약을 했고, 이번 토요일에 입주하기로 했다. 원룸 사장님은 오늘 업자를 불러 방을 새로 도배해주겠다고 했다. 침대도 새로 놓아주신다고. 차라리 도배하지 말고 침대도 놓지 말고 만원만 더 빼주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싼 방이라 그냥 좋다고 했다. 뭐.
혼자 나와 살았어도 고시원 살림이라 세간이 별 게 없는데(책 밖에 없음) 줄라이 언니가 그릇같은 것들 챙겨주시겠다고 했다. 이런 감사한 일이.
어제 집에 가는 길에 잠시 부평역에서 사주와 궁합을 보았다.
세이군의 사주를 두고 아주머니는 “어머니가 둘 아버지가 둘인 사주인데 이것이 반드시 부모가 재혼을 했거나 한 경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머니가 어머니 도리를 못하는 사람”이라고도 말했고, 부모와 충이 있다고도 했다. 작년에 크게 힘든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으며, 세이군의 대운이 올해부터 돌아오므로 작년까지 부모에게 당하고 살았더라도 올해부터는 나아지리라 했다.
내 사주를 두고는 작년이나 올 초에 돈 문제로 걱정을 했을 것이라 했는데, 그것은 아마 집을 사면서 대출을 내 앞으로 떠안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건 사주는 나쁘지 않았고, 남편 운도 좋았다. 나와 세이의 궁합을 놓고 보면 70점인데 원진살이 하나 있다 했다. 그런데 그 원진이 각각 양쪽의 부모끼리의 원진이 될 것이라고. 아주머니는 본인하고 원진이 끼면 안 좋지만 이런 것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리고 살이 하나 정도 낀 것은 “주의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간의 일이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답답해졌다.
부모님 덕이 크지만 살짝 안맞는 부분이 있고, 그런데다 내가 기상이 워낙 씩씩해서 어려서부터 말을 안 들었을 것이라고 아주머니는 웃었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이 사람 부모가 우리 부모에게 한 짓과, 자기 자식을 끝없이 괴롭히는 그 부모의 행각 때문에 우리 부모는 이 사랑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괜찮다고, 남자에게 좋은 대운이 들어왔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올해가 나도 세이도 결혼하기 좋은 해이고, 올 11월에 결혼 운이 들어와 있다는 말도 들었다. 희망을 가지고 싶었다.
“마음이 많이 심란해 보이는데 타로 점은 서비스로 봐 줄께.”
아주머니가 일곱장을 뽑으라고 하셔서 뽑았다. 결과 카드에는 10소드가 나왔다.
아주머니는 걱정스레 바라보셨지만,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금 이 순간도 다 지나가리라. 타로 선생님이 이 무식하게 무시무시한 그림을 앞에 두고 랍비 이야기 하신 것이 떠올랐다. 집에 가는 내내, 저 카드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이 42.195km에서 가장 고통스럽다는, 38km를 지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금 포기하면 그동안 뛴 38km가 아까운 거라고. 이제 곧 스타디움이 보일 것이다. 그래도 스타디움이 안 보인다면, 그땐 정말 길을 잘못 든 것일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지금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 고통스럽더라도 조금만 더 가자. 괜찮다, 다 괜찮다.
Tags: 궁합, 부평 지하상가, 사주, 원룸 구했다, 지금은 마라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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