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Tagged “내집마련”

아아…..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의 테크트리를 그대로 타는 짓이라 할 수 있겠군요.

대학입학->직장취직->결혼준비 및 내집마련.

뭐, 결혼은 내년에 할 것이고, 일단 집을 먼저 계약한 뒤에 세이군이 1월에 인천 발령 받으면 먼저 들어가서 집 수리하고 세간 들여놓으며 살다가, 결혼하면서 살림을 합치는 것으로 했습니다.

동네는…….

계양구 주민연합 (http://cafe.naver.com/gyesan/20170) 카페에서 살짝 납치해온 이미지로 대신하면.

계산택지지구 끝자락에 있는 까치마을입니다. 평수는 15평. 고시원 방보다 약간 더 큰 작은방과, 아예 터서 거실로 쓰기도 하는 큰방 하나가 있는 작은 집이예요. 계산택지에 있는 집 중 원룸을 제외하고는 제일 작은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옆으로는 농수로(라고들 하더라고요)가 냇물처럼 흐르고, 제가 계약한 집의 동 끝으로 난 옆문으로 나가면 제 직장까지 한방에 가는 마을버스가 다니며, 그 동 앞쪽으로는 작은 동네 체육공원이 있어요. 길 건너면 이마트가 있고, 가장 가까운 전철역까지는 제 걸음으로 15분 걸립니다. 다시 말해서, 직장까지는 30분 정도. 자전거가 있으면 편리할 거리겠지요. 무엇보다도.

“놀이터! 놀이터가 우레탄이야!!!” – 세이군 말씀

세이군이 좋아해서 말이죠……

“놀이터에 아가들이 가득하잖아. 이런 동네가 좋아. 응?” – 역시 세이군

물론 세이군이 소아애호 변태일리 없겠지요. 이 친구는 정말로 아기들을 좋아해요. 어린애들도 좋아하고. 성당에서도 어린이부 교사같은 것을 몇년 해서 그런지, 버스에서도 앞자리에 아기가 앉아 있으면 막 같이 방긋방긋 웃어요. 저와는 좀 달라서. 하여간 그 날은, 제가 계양구 전역을 밟고 돌아다녀서 고르고 고른 아파트 단지들을 세이군에게 보여주던 날이었습니다. 세이군이 강화에 가 있는 사이, 저는 8월부터 부동산을 찍어놓고 겨울에 집 살 테니 슬슬 알아봐달라고 떡밥을 던지는 한편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계산동, 작전동, 효성동부터 임학동, 병방동까지 돌아다니며 동네를 골랐지요. 밤에 다녀서 무섭지 않은 동네가 제 1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동네를 고른 뒤, 이번에는 낮에 다니기 시작했지요. 일단 저는, 지어진 지 좀 오래된 저층 아파트들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이군은 싫다더군요. 작은 아파트들이고, 젊은 사람들이 살 것 같은 동네인데 아이들이 없다고요. 그런데다 가격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다들 그런 단지 이야기를 하면 재건축 올인을 외치시는 것이, 동네 자체가 재건축을 고려하여 투기하시는 분들이 구입하시고, 젊은 사람들이 전세를 사는 형태인 것 같더군요.

그래서 뭐, 까치마을로 정했습니다. 24평형은 남향들인데 15평은 동향이 많더군요. 그래도 그 중 유일한 남향동에서 집을 구했고, 마침 급매라 가격도 시세보다 천만원 가까이 싼 것 같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여러 부동산에 까치마을의 시세를 문의해 보았지요. 적게는 800에서 많게는 천 이상 높게 부르더군요) 사실 까치마을을 원한다고 해도 부동산 사장님은 인근의 여러 집들을 보여주시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어제 드디어, 부동산 사장님이 협상 끝에 100만원을 추가로 깎아주시고

우리는 집 계약을 하러 갔습니다. 계약금으로 10%보다 약간 빠진 1100만원을 송금하는데, 생각해보니 저희는 천만원을 한번에 만져 본 적도 없었어요. 통장에야 2천 3천씩 쌓고 있었어도. 사과박스 부피의 1/10이 아닐까, 그정도 생각만 했습니다. 집값은 사과박스 하나보다 좀 더 많을 거고요. 정신줄 접속이 좀 끊어졌던 것은 물론입니다. 시시콜콜 다 기록했으니 망정이지, 정황이 기억이 안 나요. 처음에는 너희 둘이 알아서 해! 하시던 엄마도, 액면가보다 어려보이는 애들 둘이 가서 긴장해서 앉아 있으면 저것들은 부모도 없나 하고 무시한다고 투덜거리며 따라와 주셨습니다. 아주 안심이 되었죠. 기억은 잘 안나지만 엄마 말씀으로는, 엄마는 구경만 하시고 제가 알아서 잘 했는데 안 따라가도 되었을 만큼 잘 했다고 하시더군요. 근데 부동산에서 나오더니 애가 맛이 갔다고. –;;;;

근데 젊은 애들이 집 사러 가는데 엄마가 걱정되어서 따라왔더니, 왜 다들 “엄마가 애들 집 사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까? 그거 제가 그 흔한 명품지갑 하나 안 사고 모은 거라니까요! 좀 억울해!!!! 엄마는 며칠 전까지 집 사는 것에 회의적인데다 조금은 반대도 하셨다는 겁니다. 아니, 모시고 가서 골라놓은 집을 보여드리니까 복도쪽 창살 휘어진 것 고치고 도배만 새로 하라고, OK를 보이셨지만. 아, 진짜, 편견이라니. -_-+

집이 작으니까, 냉장고도 작은 것을, 청소기도 밀대식으로, 가스렌지는 2구, 하지만 곧 죽어도 전자렌지는 있어야 하고, 그런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도배는 전에 살던 사람이 담배를 피웠으니 하는 게 좋겠고. 세이군이 쓰던 세간 중에 가져올 수 있는 것은 가져와야겠지만, 엄마는 세탁기와 밥솥은 팔고 새로 사라고 하시네요. 작다고. 뭐, 그러던가 해야죠. 어쨌건 그랬습니다. 중도금, 잔금. 앞으로 한달 동안 다 해결해야겠네요. 다행히도, 융자 때문에 혼인신고 당겨서 하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일단 혼인신고를 하면 세금이 200만원이나 절약이 될 상황이라서(세이군이 30세 넘었고 집은 국민주택 사이즈보다 작고 생애 첫 집) 조금 갈등. 그거면 싱크대를 바꿀 수 있기는 한데 저희 집에서 좋아하실 리가 없으니 말입니다. 뭐 그렇습니다.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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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마음에 드는 집, 안 드는 집, 그 정도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들어가본 집중 한 곳.

“자, 배관까지 깨끗하게 갈아놓은 새 집이에요.”
“그래요?”
“주인은 지금 안 살고……”

그리고 저쪽 부동산 사장님(집주인이 맡긴 쪽)이 문을 여셨습니다.
한 걸음 발을 들여놓는데

……..허리에서 목덜미까지 뭐가 스윽 올라가더니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이었습니다.
남향집인데도 추웠습니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

빈집이라 그런가? 아니, 며칠 전에도 주인이 다른데 입주해서 비어있는 집에 들어가 봤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밤에 갔는데도 묘하게 따뜻했거든요. 남향집은.
그런데 어째서……?

“샷시도 완전히 새것이고. 화장실도 천정까지 다 갈았어요. 싱크대도 새것이고.”

어째서인지 소형평수인데도
시세보다 천오백이나 싼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싸게 나왔나요?”
“아들 결혼시키면서 신혼집으로 사서 고쳤는데…… 아들이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서.”

그런가요 하고 대수롭지 않은 척 들으면서 생각했지만.

여기 이 집을 전세놓고 지방에서 전세를 얻으면 이집 1.5배는 되는 집도 얻습니다.
여기는 수도권이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단 빈집이니까 집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보일러실을 열어보는데
그렇게 다 고친 집이 어째서인지
복도쪽 작은방의 창문과 보일러. 이 두가지만은
20년전 그대로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을 나설 때 까지
그 어째서인지 오싹한 기분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죽었거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설마. 혼담 오가다가 깨졌나…. 하고 애써 생각하면서 나왔죠. 나오는데 저쪽 부동산 사장님이 말씀하십니다.

“신혼용으로는 최고야. 집주인이, 임자만 잘 만나면 몇백 더 깎아 줄 수 있다고 했으니.”

다시 말하지만 여긴 소형 평수입니다.
깎아봤자 백 이백이지, 몇백이면 급매 소리가 나올 정도죠.

그리고 다음 아파트 단지로 가는 길에 집에 전화를 하면서
아, 엄마. 집주인은 지금은 안 살고 신혼이라고 싹 고쳐진 집을 좀 봤는데….. 싸게 나왔어. 응, 다음 단지 가볼께.
그렇게만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왔습니다.
엄마가 물어보십니다.

“아까 네가 전화했던 그 집.”
“예. 아, 거긴 안되겠어요. 사실은 거기 들어가자마자 신경이 쫙 곤두서고 소름이 돋아서.”
“………!”
“왜?”
“아니, 네 전화 받는데 자꾸, 그 집은 안좋다는 감이 들어서.”
“왜?”
“…….파혼, 아니지…… 사람이 잘못되었거나.”
“…….”

엄마는 집에 대해 세부 스펙도 이야기하지 않은 제 전화를 받고 장을 보러 나가셨다가
자꾸만 그 생각이 들어서 막 그러셨다는 겁니다.

“너 그거 디카 찍어왔다고 했지.”
“예.”
“사진 열어보지 말고 바로 지워.”
“…….응.”

어쩐지, 사진을 열어보기가 무서워서 정말로 그렇게 했습니다.

정말로 그런 집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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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의 공주님 이야기를 아는가. 아마도 컴과 나온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확률을 배우다가 들었을 수도 있겠군. 술탄에게는 공주님이 100명이 있는데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운 이고깽인 당신에게 당신이 고른 공주님과 결혼할 영광을 주는 거야. 공주님들은 한명씩 방으로 들어오고, 한번 지나간 사람은 다시 고를 수 없어. 그러니까 한 번만 보고 고르는 건데 누가 제일 아름다운 공주일지 알 게 뭐냔 말이다. 그래도 100명이라고 정해져 있다면 어느정도, 확률적으로 몇번째 공주를 고르면 된다 그런 게 있지만 몇명이 들어올지 알 수 없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해? 그렇다고 미모의 공주를 고르는 문제도 아니고.

그게 앞으로 살 집을 고르는 문제라면 말야. -_-+

-그동안 쪽팔림을 감수하고 부동산을 돌아다니고 발품팔아 동네를 돌아보고 갖은 난리를 다 쳤던 해명군, 마침내 집을 보러 다닐 순간이 오자 땅을 파기 시작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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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결혼을 하겠다, 고 선언한 이후로 나는, 주말에 나와서 근무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보이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얼마나 보탬이 될까 생각하면서도, 각이 안 나오는 일들은 세상에 너무나 많다.

일단 나는, 결혼하면서 집장만을 하고 싶었다. 지상에서 3층 이상 올라가고, 하루에 세 시간은 볕이 짜랑하게 드는 집을 사고 싶었다. 군산에서, 비만 오면 지상에 있는 고시원 방의 벽으로 물이 스며 책들이 젖고 주말에 집에 갔다가 돌아오면 벽에 걸어놓고 간 수트에 파랗게 곰팡이가 피는, 그런 집은 질색이었다. 볕이 잘 들고, 1, 2층은 싫고. 그리고 책들을 잔뜩 꽂아놓아도 집주인이 와서 그 책 박스에 입을 떡 벌리며 투덜거리지 않을 “내집”이 필요했다. 분명히 작년까지는, 작년 겨울까지는 그게 가능한 일이었다. 계양구에서 근무하며 나는 계산주공에 눈독을 들였고, 작년에 그 계산주공이 8천만원 근처를 왔다갔다 할 때, 나는 남자친구에게 돈을 합쳐서 저걸 사자고 했다. 융자를 받고 전세를 껴서 사 놓았다가, 결혼할 때 전세 빼주면서 들어가서 살고 싶다고 졸랐다.

하지만 문제는 걔도 나도, 빈티 하나는 남부럽지 않게 흘렀다는 거다.

세이군과 나는 1년쯤 더 모아서 그때 융자를 받아서 사자고 했다.

그리고 그게 지금 1억 4천이 넘는다. 아, 십라. 1년에 6천이 뛴 거다. 정말 욕하지 않고 싶어도 욕이 나올만한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욕심을 부렸나, 딱, 14평짜리 누울 집 하나 원한 것 뿐이었는데.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나는 내가 꿈꾸던 계산주공은 안되더라도 하여간 집을 사겠다고 선언했다.

엄마는 이게 미쳤나 하셨다.

“아니, 집을 남자애가 해 오지 왜 네가 해?!”

“세이 집 나왔잖아!”

……..그랬다.

털어 먼지도 안 나오는 데다, 우리집은 아직 대학생도 한마리 있어서 도움받을 건수가 없었다. 하긴, 학비융자 갚느라 모아놓은 돈이 적어서 작년에 그거 못 질렀다고 했다가는 엄마가 속상해 하실 테니 뚝. 하여간 그랬다.

하지만 내가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니었다. 주변의 다른 여자분들, 엄마 친구 딸들, 직장의 여선생님들. 결혼을 하며 브랜드 아파트를 사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브랜드 아파트, 24평 이상 되는 집에 전세를 얻어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웬만큼 브랜드 붙은 24~27평짜리 아파트에 전세 들어가는 돈이면.

조금만 더 보태면 내가 바라는, 14~16평짜리 아파트를 살 수도 있었다.

어쨌건 엄마는 “하이고, 그게 뭐가 이쁘다고 집장만까지 해서 보쌈을 하려고 하냐.”하고 탄식하셨지만, 적어도 말리지는 않으셨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나는 한주에 한두번씩 마을버스로, 전철로, 계양구 곳곳에 내려 걷기 시작했다. 저녁 어스름에 여자애 혼자 돌아다녀도 무섭지 않은 동네, 볕이 잘 들것 같은 동네. 그런 동네를 찾아 지도에 체크하며 다녔다. 단지가 여섯~일곱군데로 압축이 되고, 나는 낮에, 세이군을 데리고, 그런 동네들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데이트를 갈음하기 시작했다. 세이가 마음에 들어하는 곳은 두 단지였다. 보는 눈은 있어갖고 그중 한 군데는 하필, 내가 찍은 곳 중 제일 비싼 단지였다. (평수가 더 넓기는 하지만 계산주공과 엇비슷한 가격이 나올 만큼)

“그러고 싶었으면 더 벌었어야 할 것 아냐!!!!!!”

하고 버럭, 웃으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속은 상했다.

내 책들을 마음놓고 꽂아놓을 수 있는 집장만을 하겠다고, 다른 선생님들이 전세로 시작했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초등학교에 가고 하면서 더욱,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일찍 고생하고 말자고 하고 있지만, 지금 보아두는 단지들에 들어가려고 해도 역시 융자를 받아야 한다. 작은 아파트니까 쉽게 가격이 떨어지지는 않겠지만(그 IMF 때에도 그때 우리집이 살던 18평은 천만원도 안 되게 떨어졌다가 반년도 안되어 원복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조금 넓은 집은 1/3은 떨어졌고. 그래서 그때 18평 가격 원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엄마가 이 집을 지를 수 있었다.) 융자는 몇년간 세이군의 얄팍한 봉급을 넘치게 부어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내 봉급으로 먹고 살아야 하니, 저축도 쉽지 않을 지도 모르고. 어디로 봐도 막막하고 팍팍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혼수 세간도, 책상이랑 책꽂이만 새로 사고 나머지는 세이가 관사 원룸에서 쓰던 것들을 가져오자고 할까.

얄팍하고 한심한, 8급 공무원의 월급.

본봉과 수당과 초과수당을 합쳐 160 남짓한. 대체 공무원이 잘먹고 잘산다는 소리 하는 놈이 있으면 혓바닥을 뽑아놓아 버리리라. 발령받았던 첫 해 겨울, 겨울이라 고시원 방에는 사방에 성에가 어는데 월급통장에 98만원 찍혀있는 것 보고 나는 객지에서 목놓아 울었다. 시발. 이러려고 공부했냐. 직장 없이 알바만 할 때에도 한달에 100은 벌었는데. 어떻게 100만원도 안되니! 2002년에 내 첫직장에서도, 한달에 실수령액으로 130은 받았는데. 하고. 결혼 내년에 하려고요, 하고 말하면 으레 여선생님들의 이야기에서 따라나오는 드레스, 스촬, 신혼여행, 혼수, 한복, 예물. 그런 것들. 속이 상해서 웅크리고 있으면 엄마는 “그러니까 세이군이 아니라 기반 잡힌 남자애였으면 너도 다 할 것들이잖아. 이것저것 다 떼고도 저축을 그만큼 해놓고는!” 하고 한마디 하고 가신다. 세이군은 더 속상했을 거다. 집을 나오고, 결혼할 거라는 이야기만 집에 툭 던져놓고 식에만 모시기로 했었다가, 부모님께서 “네가 우리 말을 잘 들으면 결혼비용을 보태준다”고 하시는 말씀에 끌려다녔던 것도, 나는 세이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내게 해주고 싶었던 게 많았기 때문임을 잘 안다. 알아서, 화도 내지 못했다. 세이군은 초토화가 되어 자기 숙소에 뻗어있고, 아들을 그지경을 내 놓으신 그 부모님께서 당당하게, 나를 불러내어 레이드를 뛰시는 그 순간에도, 나는 연락을 받지 못하는 세이군이 걱정되고 화를 내기는 했지만, 사실은 보태줄 의사가 없으면서 아들과 며느릿감을 당신들 손에 쥐락펴락하려 하시려는, 그래서 세이군을 저 지경을 내 놓은 그분들에게 분노했다. 그런 식으로, 스무 살이었던 아버지의 인생을 바꾸어주신 동시에 그후 20년동안 아버지를 마음고생 시키셨던 친척분을 알기 때문에. 내게 “왜 욕심을 부리니, 전세를 살거나 공무원 임대아파트 들어가지” 하시는 그분들께 “세이가 모아놓은 것으로 전세금은 되는 줄 아십니까.”라고 되물었던 것도, 그런 사유로 예단도 폐백도 못 하겠다는 말에 경악하시는 두 분께 “저는 예물 안 받겠다고 저희 엄마를 설득하는 데 한 달 걸렸습니다. 그댁의 일은 세이군이 알아서 하겠죠.”하고 모르쇠 했던 것도. 남들 다들 한다. 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초라하게 하는 것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곧 아이가 태어나는데 반년만, 하고 사정하는 젊은 어머니를 쫓아내던 그런 전셋집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책들이 수장될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딱 열 평에서 열 다섯 평 사이면 족한 그런 집이다. 내가 돌아와 쉬고 글을 쓰고 사랑할 수 있는.

그게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것일까.

융자금을 계산해보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결혼식 비용은 어째서 다 쳐내도 이렇게 돈 들 구석이 많을까. 신혼여행도 가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을 때 세이는 속상해서 울먹이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결혼식도 하지 말고 물 한그릇 떠놓고 맞절하고 살았으면 딱 좋겠다. 드레스면 드레스, 여행이면 여행, 한 가지 힘주어서 하면 된다고 얼마 전 결혼한 사람이 그러더라. 글쎄, 전선생은 보이쉬한 스타일이니까 결혼식때 확 변신하면 다들 깜짝 놀랄 거야.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어차피 드레스며 뭐며로 힘준다고 해 봐야 티도 안 날텐데. 내집마련에나 힘 줘야겠다. 후우. –+

젊음은 원래 빈티나는 것이지만

빈티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구차해지지 않으려고 어금니에 힘주고 서 있지만.

짬이 나서 rss 리더를 켜보았다가 글곰님 글을 보았다. sipdae.egloos.com/3939327 내가 일을 마치고 여기저기 동네들을 기웃거리고 돌아와 끙끙 앓던 그런 밤에, 누군가 또 다른 사람도 그런 일을 생각했다는 것이 씁쓸하면서도 안심이 된다. 혼자가 아니라, 는 생각을 오랜만에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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