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의 남녀관계 유형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커플 수만큼 다양하게 존재하는 법이다. 남의 연애에 대해, 혹은 남의 섹스관에 대해 반복적으로 놀리는 것은, 부득이 치료차원에서 이야기 나왔다가 권고하는 정도까지는 몰라도 반복이 되면 사람의 신경을 상당히 건드린다. 나는 말했다. 선을 그었다. 그러니 넘어오지 말것. 10대 얼라한테 여친이랑 자지 말라고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도 안 들으려면 안 듣는 것이고, 서른이 된 건강한 남녀가 연애는 계속 잘 하면서 별 일 없이 지내는 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일 거다. 그건 야애니는 봐도 야동은 안본다거나, 3p 나오는 야동은 싫다거나, 동물이 나오는 것은 취향이 아니라던가 하는 식으로 그야말로 취향 타는 것일 수도 있다. 좋은 말 있잖은가. 취향이니까 존중해 달라는. 거기에 대해, 남자는 돈과 성공, 여자는 섹스와 2세 출산을 제공하는 잣대를 재봤자 소용없을 거다. 내가 더 많이 버니까.
2. 상대방이 원치 않는 배려는 물론 폭력일 수 있고 차별일 수 있다.
그런데 일단은 배려를 하도록 가르쳐도, 도움이 필요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제대로 돕는 사람 열에 한 명도 많다. 배려가 기본이고, 상대방이 도움을 원치 않으면 그때 물러서는 쪽이,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도 더 나은 정책이 아닌가? 물론 자연의 섭리에서는, 그런 배려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도태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된다. 나나 내 가족이 저런 상황이 되었을 때, 어쨌건 눈앞에서 조롱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무시당하거나….. 그런 일이 덜 일어나기 위한 보험이 되는 거다. 불행히도….. 라고 해야 하나. 백날 임산부나, 다리 불편한 분들한테 자리 양보해봤자 정작 나 깁스감고 출근할 때는 아무도 양보해주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노약자석에 잠깐 앉았다가 영감님들한테 욕 더럽게 많이 얻어먹긴 했지만.
3. 얘는 어디로 봐도 도 닦을 애는 아니지 않아요?
도를 닦으면 안되겠다, 고 며칠전에 생각했다. 괜찮은 선생님이고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지금 내가 내 상처를 하나하나 다 아물려서 대체 무엇이 되겠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상처를 흉터없이 아물리는 마데카솔이 아니다. 미치고 팔짝 뛰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내 인생에도 종종 평화는 필요하겠지만, 잔잔한 물가처럼 가라앉은 마음으로 내가 쓰고싶었던 것들을 끄집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다가, 속을 너무 건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러누워 천정의 벽지무늬를 세며 나는, 내가 몇달동안 배웠는지 잠시 되짚어 보았다. 초급반 2달, 중급반이 이번달로 여섯달째. 혼란스러워서 심호흡을 했다.
술이나 안정제로 통제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음이 진정될수록, 내가 쥐고 있던 것들을 또 한편으로 잃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그게 진짜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해서 잃어버릴 리 없잖아, 라는 이야기 따위는 팔자편한 사람들 몫으로 남겨두겠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것 같은, 그런 날것의 감정이 무뎌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견디기 힘들어.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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