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42 is the answer” Category
우리 아버지는 훌륭한 교사였다.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바람을 피우는 일도 없었다. 성실한 학교 선생님이고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하셨으며, 성공한 제자들이 줄을 이어 찾아왔다. 젊으셨을 때 직접 지도했던 제자중에는 국가대표도 여럿 있었다. 내 인생에서 참으로 막막한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내가 무어라 호소하고 항변해도, 아버지가 저런 분이다 보니 내 괴로움은 그냥 뭐, 철없는 어린애의 헛소리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일이야 그렇다고 쳐도, 다른 일들이야 다른 집 아버지들도 그렇게 편애하고, 그렇게 자식에게 잘못을 돌리며, 자식이 그런 일로 마음에 잔뜩 스크래치가 간 일 따위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쳐도. 나는 그때 정말로 죽기살기로, 죽고싶지 않아서, 죽을 힘을 다해서 아버지한테 SOS를 쳤다. 살고 싶어서. 지금의 내가, 작년의 내가 팔목을 가윗날로 찌르다가 말고 도움을 청하고 다음날 날 밝자마자 정신과 예약해서 달려갔던 것 처럼, 나는 그 와중에도 살고 싶었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애들은 모두 착한 모범생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계시던 우리 아버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을 거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니까. 어떻게 인천에서, 각 중학교에서 전교 10등 안에 드는 애들을 싹쓸이해간 나머지 전교 꼴지가 모의고사를 보면 전국 20% 안에 너끈히 들어가던 고등학교에서 왕따 사건이, 폭력 사건이, 강간미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아버지가 내린 결론은 심플하기 그지없었다. 그건 당하는 놈이 뭔가 문제가 있고 나쁜 거라고. 그 당하는 놈이 당신의 딸이라고 해도 가차없었다. 그렇게 가차없이 내치는 쪽이 주변에서 그렇게 존경받는 선생님이었기에, 그 괴로움에 대해 말해봤자 내 손해였다. 비참할 정도로.
토닥토닥 잘 밟고 잘 덮어놓은 상처를 자꾸 뒤엎으면, 언젠가 그 안에 남아있던 썩은 것들이 다 없어질까. 우리 아버지는 내년에 은퇴하신다. 아마 은퇴하실 때 까지 그 믿음은 변하지 않겠지. 모범교사였고, 자식에게 줄 책값은 없을지언정 어려운 학생을 솔선해서 돕고 촌지같은 것도 전혀 받지 않으셨으며, 제자들과 학부모들의 존경을 두루두루 받으셨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아버지가 다른 직업도 아닌 “교사”였다는 이유로 내게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여전히 남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몇 번이나, 공부 잘 하는 애들이라고 그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 같느냐 물었지만 그분은 손톱만큼도 변하지 않았고, 나는 포기했다.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나는 다 컸고 어른이라서, 이제 “우리 집 어르신”께서 뭐라고 하건 내 인생에는 요만큼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믿고 말하는 것 뿐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대못을 박을 수도 있겠지만, 자식이 자란 뒤에는 힘의 중심도 바뀌는 법. 우리 아버지는 그때, 손바닥이 너덜거리도록 커터칼로 내리긋고 도로에 드러눕던 딸이, 정말로 울면서 나 좀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거절했다. 정신과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하자 비난했다. 낳아놓은 부모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딸에게 지금의 이 모든 일은 오로지 네 잘못이라고, 너같이 부모를 부끄럽게 하는 자식은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말하는 순간, 나의 일부는 부모에게 살해당한 것과 같다고 말한다면 너무 심각한 이야기가 되는 걸까. 하지만 내게는 그랬다. 나는 그날 이후로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기대하거나 부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1996년에 딸을 죽여버렸으니, 아마도 그 딸이 아버지 말 대로 네모 반듯한 세상에 각잡고 심심하게 살면서 효성스럽게 딸 노릇 하고 사는 꼴은 그다지 기대하시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지금도, 내가 그냥 국으로 순종하는 딸이 되기를, 어디 선생하고 선이나 봐서 얌전히 시집이나 가기를, 그럴 것도 아니면 글 나부랑이 쓰는 것 제껴두고 고시공부 같은 것을 해 보기를 바라고 계시겠지만.
턱도없는 소리.
죽은 자식 ##만지기지, 그래봤자.
글쎄, 그때 나를 살려주었으면, 어떻게든 도와주려 했다면 아마도 지금의 나는 또 많이 바뀌어 있었을 거다. 그런 것이 사람의 운명을 가르는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그때 아버지의 눈을 떠올리는데, 머리카락은 가위로 잘리고 손에는 며칠 전 가위로 찍은 상처에 반창고가 덕지덕지하고, 울면서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아서 엉망인 몰골로 학교에서 돌아온 딸네미는 보이지 않고 그저 쪽팔린다는, 인천 바닥은 넓지 않으니 아는 선생님들 통해서 당신 딸네미가 그렇게 두들겨 맞고 다니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저 쪽팔린다는 생각만 하신 그분은 그때 나를 한번 죽였다고 믿고 있다.
아무리 효성이 지극해도 죽은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를 할 수 없는 게 아닌가.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슨 말도 안 되는 기대를 아직도 품고 계시건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것 뿐이다. 그냥 죽은 자식이거니. 내가 어떻게 살건 기대나 마셨으면.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자, 내가 우리 아버지와, 아버지의 복사판같은 여동생에게서 내 감정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나간 일로 인한 상처야 하루아침에 짠 하고 사라질 문제가 아니지만. 적어도 앞으로 무슨 말을 하건 그냥 흘려들으면 고작이고, 붙잡고 성질을 긁으면 그냥 두고 자리를 피하면 그만이다. 나도 살아야지. 언제까지 그걸 끌고 갈 거냐고 엄마는 속상해 하시지만, 엄마도 분명히 알고는 계실 거다. 그때 죽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부처님이 도우신 일이라고, 엄마도 늘 말씀하셨으니.
그러니, 그부분은 웬만하면 뒤집어 엎고 싶지 않다. 아직도, 우리 아버지가 또 가망없는 말씀을 시작하시는군 하고 웃어 넘기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순간은 적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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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떤 일로 꽤나 키배를 벌인 적이 있었다. 말이 좋아 키배지, 그 흔적 중 일부를 따로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걸어놓기까지 했을 만큼 나에게는 단순 키배가 아니라 일종의 진지한 싸움이었는데.
그때, 상대편들은 나보다 최소 10살 이상 연상이었고, 우리를 어린애 취급했으며, 이쪽이나 저쪽이나 세상에서 보기에 과히 고상하지 못한 매체인 것은 피차일반인데도 우리보고는 “철없는 어린 팬들” 운운 하고, 내가 존경하는 분에 대해서는 “애들 사주하는” 운운 하는 뻘소리들을 해 댔다. 어이, 이봐요. 맹목적으로 감싸는 것이야말로 팬의 자세는 아니잖아. 그걸 모르는 30대 중반의 아줌마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퍽 곤혹스럽고, 짜증이 만발했으며, 나중에는 저것들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거야 하고 혼자 화장실 문짝을 걷어찰 지경에 이르렀다. 근거를 찾아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내밀면, 법조계 쪽이라는둥 명예훼손이라는둥 자기들 말로 “어린애들”이라고 한 사람들을 협박이나 슬슬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떠들어대는 그쪽에서 어른의 모습을 찾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내 성질을 참 긁은 여성이 몇 분 계셨다.
나는 여전히 그때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립성 저혈압 치료에 참 도움이 되고, 어떻게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될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음, 참 짜증났지. 그런데 요즘은 거기에 하나 보태서, 솔직히 고맙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그때 선생님께서는 내게 글 쓰고 싶은 사람은 그러면 안된다고 몇 번이나 엄격하게 말씀하셨음에도, 정서면에서 의지하고, 팬심을 불태우고, 그러는 면이 꽤 있었다. 정말 적절한 단어나 표현을 찾기가 어려운데, 음. 그런 걸까? 팬으로서 많이 가까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영향을 받는, 비유하자면 일종의 가신같은 것. 그런 것이 되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2005년 겨울에 깨달았다. 스물 다섯에 그러는 것이야 귀엽지만, 서른다섯 넘어서 저러면 징그럽구나, 라고. 팬이야 징그럽건 어쨌건 봐줄 만은 하다고 쳐도, 글 쓸 사람은 그러면 안되겠구나 하고. 존경하더라도 가는 길은 달라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만화나 소설이라면 아류작에 불과한 것 밖에 만들지 못할 것이고, 방송작가라면 늙도록 새끼작가 노릇밖에는 못하겠지. 그 역시도, 스물 다섯에 그러는 것은 젊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서른 다섯 넘어서 남의 아류, 남의 따까리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건 끔찍한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그 일은 내 선생님께는 참 뭐랄까, 테러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바뀌었다. 팬으로서의 숭배는 희미해졌다. 같은 길을 쭐래쭐래 따라가려는 그런 마음도 사라졌다. 나는 사실 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분의 제자가 아니고, 그렇기에 오히려 자유로웠다. 나는 그 무엇에도 묶일 필요 없이,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을 쓰며 달려가면 되는 것이었다. 참으로 건방지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말이지만, 나는 그분을 내 목표가 아니라 경쟁상대로 삼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한 30년쯤 후에 내가 정말로 뭔가를 이뤄내면, “그 전설의 레전드 전혜진 작가가 존경하고 초기에 영향을 받았던 엄청나게 훌륭한 분” 으로 내 선생님을 빛내드리면 그것도 참 좋겠구나.건방지다 못해 그런 생각도 하고 있다. 아, 참고로 이 생각은 현재 진행형이다. (훗)
뭐, 경쟁상대로 삼는다고 쳐도 그분은 30대 초반에 이미 탑클래스였으니, 신발 벗고 쫓아가도 이건 뭐 장난 아니겠지만.
어쨌건 반면교사라는 점에 있어서, 나는 그때 내 속을 긁던 인간들에게도 뭔가를 배운 셈이다. 서른 다섯살에 그런 꼴로 살지 않게 스물 다섯살의 내게 온갖 안좋은 것은 다 보여준 것, 그런 점은 정말로 많이 고맙다. 일 쪽이건 사적이건 드라마쪽 관계자는 절대 신뢰하지 않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강력한 편견을 심어놓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ps) 그때 나를 집중으로 긁던 양반들은 35세 이상이었다. 얼마 전에 일없이 남한테 뒤돌려차기 날리고 간 분도 30대 중반이다. 30대 중반은 뭔가 사람을 구질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나이인 것은 아니겠지. 신독에 힘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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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광을 부리지 않으려고 악을 쓰며 버텨도, 나이가 서른이 되어도 사람은 혼자 힘으로는 설 수 없다는 것만 깨닫는다.
멀쩡한 척 하고 있어도 꽤나 핀치에 몰려 있었던 모양이다.
꿈에 문득, 바라본 TV의 색감에서 선생님을 생각하고.
그리고 일어나서 새벽내 토하고.
오전에 반가를 냈다. 적당히 어제 먹은 – 유통기한 며칠 지난 – 두부 핑계를 대고. 마침 잠도 부족했고. 주말에 출근해서 매일매일 늦게까지 일했으니 미치지. 사흘 연휴 생각하고 여력을 썼는데 거의 바닥까지 긁어서 썼으니 한번 터질 만 했다. 오전내내 엎어져 있었다.
급히 출근해보니 전혜진님 반가 기념으로 전자문서와 학생용 서버가 축 사망의 빵빠레를 울리고 있었다.
이런 십라 -_-+
(그리고 재시작 스크립트 돌리니 바로 멀쩡해졌다. 이10서버들이 지금 사람을 놀리니? 놀리니? 놀리냐아아아아!!!)
필요하다. 외롭다. 날 붙잡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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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대해서는, 그래, 어떤 식으로든 나는 죽겠다고 말하거나, 혹은 내 경우는 “죽고싶지 않은데 자꾸 죽으려고 하니 살려달라”고 일단 정신적 응급상황에 카운셀려 자격이 있는 분께 연락을 하고 다음날 정신과에 가는 등 알아서 위기상황임을 말하기도 했지만, 어쨌건 밖에다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간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다.
정말로 주저없이, 대안없이, 그런 사람이라면 정말 갑자기 간다. 그런 경우라면, 말릴 도리도 없지만 말릴 이유도 없다고 본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이 그 사람의 SOS라면, 보고도 그냥 넘어갔는데 죽었다, 거나 악플 달았는데 죽었다, 거나 그렇다면 마음에 짐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케이스를 보면 가급적 돕고 말리려고 애쓰는 편이다.
오늘 새벽에 해프닝이 있었는데, 동아일보 모 기자님이 예전에 쓴 글 수정하다가 그냥 유서글이 포스팅된 것. 이것이 트위터에 전송되면서 내 타임라인은 정말로 시끄러웠다. 물론 트위터에서 시끌시끌한 것만으로는 해결되는 게 없으니, 전화를 걸었다.
112에 걸었더니 블로그에 올라온 유서니 사이버 수사대에 전화하라고 했다.
사이버 수사대에 걸었더니 전화를 안받았다. 당직실로 걸었더니 사이버팀은 아침에 출근한다고 했다. 인천 서울 양쪽 다 마찬가지였다. (사이버 수사대는 각 지역 경찰청에 있는 팀들을 하나로 묶은 거다)
119에 걸었다. 주소나 전화번호를 모르면 출동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 자살예방센터에 걸었다. 상담은 해주지만 그런 것은 사이버 수사대와 연동해야 한다고 했다. 이거 참,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도 6-degrees에 의해 사람들은 순식간에 글 쓴 본인을 찾아냈고, 그게 그냥 해프닝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다행스런 일이었다.
사회안전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밤이었다. 글쎄, 몇년 전만 되었어도 이런 세금 아까운 일이 있나 하고 일갈했겠지만, 그래도 경찰도 잠은 자야지. 그래도 뭔가 오늘 일의 교훈은 “사이버 범죄는 밤에 저질러라” 같기도 했고. 그냥 해프닝이라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친구 찾는 것을 겸해서 6-degrees를 테스트해보려고 했다가 결국 못 찾고 실패한 적이 있는데. 굳이 그런것을 테스트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트위터를 쓰는 것은 아니고, 사실 이런 것은 젊은 세대, 혹은 IT쪽으로 관심있는 사람들 위주로 퍼져나가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바운디드 안에서는 조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따로 실험하지 않아도 알겠다. 그리고 그 조밀한 관계 안에서의 특정인들 사이의 degrees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시험하지 않더라도 팔로 연결 검색해서 그래프처럼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전에 봤으니 언제 날잡아 찾아볼 수도 있을 거고.
그나저나 요즘 트위터 때문에 블로그가 개점휴겁인데, 간만에 올린 글도 트위터 타령이냐; 젠장, 빨리 폰할부 끝나고 스마트폰으로 바꾸….. 아니다, 그럼 정말 끝이 없겠구나;;;;;
Tags: SNS, 사이버 범죄는 밤에 저질러라, 인간관계의 조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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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야”와 “파랑새”를 들어보고 바로 “파랑새” mp3를 구입했다.
http://www.lukeskywalking.net/twinsuns/2631 에서도 언급한 대로, 표절하는 놈들의 반응은 어째 늘 똑같아서 웃기지도 않아요, 이젠. 그래, 사람은 살면서 실수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그냥 앞부분의 한두 동기 똑같은 것을 표절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설사 그 한두마디가 문제가 되었다고 해도, 백배 사죄하고 성의있게 뒤처리를 하는 사람에게 두고두고 돌을 던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실 표절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한두 마디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포인트다) 하지만 저쯤 되면 음.
예전에 the Blue의 음악을 듣다가 X저팬 노래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나중에 보니 정말 표절 말이 있었던 적도 있고, 그 뿐이었나. 어디 한두 가지였어야지. 그나마 드라마 “질투”의 주제가의 경우 인기를 끌다가 표절 이야기가 나오면서 곡을 바꾸긴 했고, “천상유애”도 표절 이야기 나오면서 바로 들어가긴 했지만 나중에 들어보면 참 웃기게 똑같긴 했다. 비단 음악 뿐이랴. “사랑이 뭐길래”와 “장미와 콩나물”의 표절 논란에서 승소로 김수현 작가는 사랑과 야망이었나, 하여간 “유리의 성”의 기본설정을 그냥 갖다가 넣은 드라마로 멀쩡히 이름을 날리기도 했고. 송지나의 그 문제 된 시놉시스는, 일단 한권으로 읽는 고구려 실록에서 그대로 카피한 한 단락만 보더라도 뿜길 노릇이었지. 물론 본인은, 그때 그녀의 빠순이를 표방하는 양반들이 하도 얼라 취급을 한 것에 열이 뻗치다 못해 실망이 아예 혐오로 돌아선 사람이라서, 그런 것에 대해 길게 언급하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궁금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물어보시든가 말든가.)
그래서 나는 http://sfboksol.egloos.com/5245314 이 제안에 동의한다. 일단 mp3를 구입했으니 아마 병아리 눈곱만큼은 도움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일단 할 수 있는 것은 트위터를 통해 제안을 더 널리 알리는 것, 1위 한 번 만들어 주는 것. 뭐 그런 것 등등? 어차피 남의 곡 받아 하는 아이돌이다. 인디밴드인척 하지 말고 아이돌스럽게만 있어도 욕은 덜먹을거다. 그냥, 어제 두 곡 같이 들어보고 짜증이 물씬.
Tags: 누구누구처럼 말이다, 어쩜 그렇게 똑같니, 표절하고도 뻔뻔한 놈들은 손모가지를 썰어버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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