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좀전에 TV에서 나오는 광고를 보고 기가 막혀서 몇자 적습니다.
이름은 “푸르지요”도 아닌 “푸르지오”로, 우리말 어근에 접미를 외국어 어감이 나게 붙인 해괴한 이름까지는
네이밍 센스라고 넘어가겠습니다.
영어로 쓸 때도 뭔가 웃긴 구석이 있다는 것도, 예, 이름이야 짓기 나름이니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나 그 카피는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푸르지오에 산다는 것은 때로는 친구들의 시샘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주술호응이라고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여기서 주절은 푸르지오에 산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실제로 주어는 “것”이고, 이 주어에 대한 관형절인가로 “푸르지오에 산다”가 들어가던가 그럴 겁니다.
하여간 “푸르지오에 산다”라는 문장을 명사구로 받은 형태입니다.
이 문장의 서술절은 일단 “받을 수도 있습니다.” 로 해 두겠습니다.
이 상태에서 푸르지오에 살면 때로는 친구들의 시샘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라고 쓰면 맞습니다.
이 문장에서 주어는 (당신이) 가 되고, 당신이 푸르지오에 살면. 이라는 가정법을 썼을 때 ~할 수도 있다.는 서술이 오니까 제대로 쓴 것이죠.
하지만 위 문장은, 잘못되었습니다.
주술 호응이라는, 국어시간에 사람 골머리 깨나 아프게 하던 녀석이 탁 걸리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한지 오래되어서 정확한 문법 명칭은 가물거립니다만,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교육받고 나온 사람이 저 문장을 읽으면 어딘가 목에 가시가 걸린 것 처럼 아파야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것은” 을 살려주기 위해
푸르지오에 산다.=친구들의 시샘을 받는다. 로 대등하게 잡아서
푸르지오에 산다는 것은 때로 친구들의 시샘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정도로 고치면 의미 면에서도 문법으로도 큰 문제 없을 것입니다.
전에 듣기에 영어는 쓰는 말에 따라 계층이 달라진다고 하던데요.
예전에 아버지께서 보시던 민병철 영어책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뒷골목에서 스탠다드한 영어로 말했더니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더라. 대충 그런 내용이었을 겁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영국 영어에 대해 들은 말도, 그야말로 고풍스러운 퀸즈 잉글리시가 있고, BBC 아나운서들이 말하는 표준적인 말이나, 명문교 특유의 억양까지도 있다….. 그래서 말투만으로도 계층이 구분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미군에 들어가도 어느정도 이상 진급하려면 그 계층에 걸맞는 말투와 억양을 익혀야 하는데 콜린 파월이 젊었을때 고생한게 그 부분이었다 등등.
우리말도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만으로도 사회 계층을 판단할 수 있는 시대가 차라리 와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상승욕구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내남없이 바른 말을 쓰게 되겠지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은 어느새 주술호응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broken korean으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자국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서 교양은 무슨 얼어죽을놈의 교양.)
몰라서 말을 잘못 사용한다면, 배워서 고쳐야 옳지요.
하지만 카피라이터, 소위 말을 다루는 사람의 행각으로는 너무 무책임합니다.
오늘 마침 기분나쁜데 눈에 들어와서 “푸르지오”를 대표적으로 쓴 것이지
사실 이런 광고는 한두 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지요.
높임법 잘못 쓰는 것은 애교입니다.
높여야 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고객이며
2인칭 당신은 우리말에서는 높임말이 아닙니다.
3인칭 당신이 극존칭이라고 아무에게나 당신 당신 불러도 되는 것 아닙니다.
무슨 광고 이야기하는지 눈치채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압존법 쓸 머리가 안 되면, 적어도 높임의 기본이라도 지켜야 옳습니다.
영어 단어 스펠 잘못 쓴 것이 부끄럽고, 발음이 촌스러워 부끄럽습니까?
영어단어 이찬승 바퀴벌레 3만 3천마리를 푹 고아 잡수시면서도
우리말 단어를 확장해 보려는 노력은 하셨습니까?
널따랗다와 넓다랗다 중 어느 쪽이 맞는지 혹시 아십니까? 저도 지난 달에 겨우 알았습니다.
언젠가 일요일 오후에, “전용태의 국어 어휘 자료집”이라는 책이 공짜로 생긴 김에
우리말 단어 100개를 녹음해서 혼자 받아쓰기를 해 보았습니다.
읽을때는 아무 문제 없던 단어들이지요. 우리말 받아쓰기한 지 15년은 넘은 것 같았습니다.
일상적인 단어 위주로 해 보았지만, 서너 개 정도 틀렸습니다.
발음은, 장음 단음은 예전에 국어 선생님께 하도 두들겨 맞은 덕분에
대충 구분할 줄 알지만 그렇다고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써놓은 문장 치고 주술호응 엉망이 것은 별로 없습니다만(주어를 생략하는 문장은 여전히 많음)
띄어쓰기에는 여전히 실수가 많습니다.
나고 자란 모국어라고 해도, 공부 안 하면 이렇습니다.
무엇보다도 광고 카피를 그렇게 쓰면 “갑”한테 좀 미안할 것 같습니다.
그 광고의 대상 자체가 싸구려로 느껴지잖아요.
필요하면 욕도 하고 험한 말도 할 줄 압니다.
필요하면 웃어른 앞에서 극존으로 말할 줄도 어느정도 알기는 알죠.
그러나 저런 양극단의 케이스는 접어두고, 평소에 쓰는 말만 두고 볼 때
제가 쓰는 우리말이 100점 만점에 몇점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70점 받으면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객관적으로 따질 근거는 없지요.
그래도, 사람의 말 역시 사람의 기품이라는 생각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론 : 국어를 공부해야 할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저런 카피라이터를 비웃어주기 위해서라도 해 봅시다.
“말”을 도구삼아 살아가는 사람으로는 안이해도 너무 안이하잖습니까.
그리고 가능하면, 주술호응 정도는 신경써서 말합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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