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히 써 두는 것은 분명히 말해, 내게도 망신살이 뻗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와 결혼하여 평생을 함께 살고자 하는 세이군에게도, 이것은 부끄럽고, 되짚고 싶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와 세이군을 지키기 위해, 로그 차원에서 기록해두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다.
http://drssay.com/wp2/archives/126
1998년.
인하대에 다니던 나와 세이군은 방과 후, 혹은 회식 후에는 함께 인하대에서 독쟁이 고개로, 다시 주인공원으로 넘어와 제물포역에서 헤어지곤 했다.
세이군은 주인공원에서 종종 멈추어 한숨을 쉬곤 했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그 부모님 때문이었다. 어느날 “삐삐를 쳤는데 들었어요?” 하고 묻자 세이군은 집 전화가 부서져서 받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세이군의 아버님은 당시 외도 문제로 집안을 시끄럽게 하셨고, 그 일로 세이군 어머님과 종종 격하게 부부싸움을 하신 끝에 세이군 어머니를 걷어차 쓰러뜨리거나, 전화기나 그릇을 부수는 등의 일을 하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세이군 어머님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시기 때문에 이혼을 할 수 없다고 하시며, 계속 싸우거나 맞거나 하셨다고 했다. 세이군은 여러가지 곤란한 일이 있지만 어머니가 가엾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곤 했다. 나는 마누라 때리는 놈이 자식들 안 때릴 리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떠올리며 혹시 맞고 살지 않았느냐고 물었지만, 세이군은 고등학교 이전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세이군은 비염을 오래 방치하여 발생한 축농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한 주에 한두 번은 코피를 쏟곤 했다. 새가슴이라 가슴뼈 앞이 튀어나와 있기도 했지만 심한 수준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때 병원에서는 축농증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하였지만, 세이군 부모님은 대학 가서 치료받으라고 하시고는 대학 간 후에 아무리 도와달라고 해도 도와주시지 않았다. 세이군은 “엄마 아버지 저렇게 싸우시니까 지금은 정신이 없어서 그러실 거다.”라고 말했다.
세이군은 늘, 길이는 짧고 허리는 큰, 그것도 10년은 묵어 보이는 아저씨용 배바지 같은 것이나 청바지도 공사장에서 입는 그런 청바지를 입고 왔다. 세이군은 “친척 형, 혹은 큰아버지 옷을 물려 입은 것”이라고 설명했고, 나는 세이군네가 퍽 어려운 살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1999년~2001년.
세이군은 군대에 갔다. 나는 # 교수님께서 세이군이 병특에 가는 것을 권하셨다고 이야기했지만, 집에서는 엉뚱한 생각 말고 그냥 군대 가라고 했다고 들었다. (사실 세이군은 당시 병특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휴가 나왔을 때, 아들 둘이 다 군대에 갔더니 부모님이 덜 싸우시는 것 같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세이군은 군대에 간 동안, 언젠가 복귀시간을 맞출 수 없게 되어 택시를 이용할 때의 10만원 말고는 용돈을 받은 게 거의 없었다. 나는 군대 간 아들이 돌아와서 여자친구하고만 어울리면 부모님이 서운해 하실 것이라고, 나도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매일 저녁 6시가 넘으면 반드시 집에 들여보냈다. 하지만 자식이 휴가를 나왔음에도 세이군은 가족과 함께 밥을 먹거나 뭐 그런 일보다 혼자 차려먹거나 자기가 차려야 하는 일이 더 많았다고 했다.
이 무렵 나는 세이군의 동생을 만날 수 있었는데, 동생은 위에 티셔츠야 그렇다고 치고, 청바지는 리바이스 아니면 게스를(어느 쪽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대학생 남자애들이 퍽 선망하던 것이었다) 입고 있었다. 같은 날 그 형은 여전히 어디서 입다 버린 것 같은 민망할정도로 낡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 옷이 없다고 해도 늘 남이 입던 것을 가져다 주신다는 것이었다. 어쨌건 그 시절은, 세이군에게 드물게 근육도 잡히고 몸도 날렵했으며 건강해 보였던 시절이었다. 물론 세이군은 중간에 두 번 정도, 심한 두통 때문에 검사를 받으라고 휴가를 받아 나온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스트레스 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세이군과 그 아버지가 병특에 대해 조금 잘 알아보셨다면 세이군에게 더 좋은 선택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2002년~2003년.
나는 이미 직장을 갖고 있었고 세이군은 진로를 고민했다. 개발 쪽으로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세이군의 부모님은 세이군에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보험판매원이 되는 것을 강권하셨다. (알다시피 보험판매는 고졸 아줌마들도 할 수 있다. 보험 “계리”도 아니고, 대학까지 나온 아들에게 바로 저걸 권하시는 이유가 참 궁금했다.) 나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보험계리 시험을 봐서 그쪽으로 일하는 게 어떻느냐고 했지만, 세이군 아버지는 그것도 반대하셨다. 영업이 돈을 잘 번다는 이유였는데, 물론 세이군은 영업체질이 아니다. 말을 더듬고 수줍음을 타는 청년이 영업을 한다는 건. 그런데다 세이군은 분명히 개발자가 될 능력도 있었다. 하지만 일반 개발회사에 들어가면 30대 넘어서 기술영업을 다녀야 한다고 해서, 그것도 걱정은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전산직 공무원도 있으니 그쪽 진로를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해주셨다. 교육청이나 시청에서 전산실에 근무하고 나이스 관리하는 사람들이 누군가 했더니 그것도 다 공무원이었다는 것이다. 세이군은 일단 교수님께서 소개해주신 개발업체에 취직을 했고, 한편으로는 나의 권유로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자꾸만 코피를 쏟고 노랗게 질리는 세이군에게 한약을 지어 주었다. 다행히도 간에는 이상이 없는데, 워낙 몸이 약해서 그렇다고 들었다.
나는 2003년 11월 말까지 일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2004년~2005년.
세이군은 공무원 시험날 휴가를 썼다는 이유로(그러니까 공무원 시험을 보러 갔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잘렸다. 그리고 세이군 부모님은 그것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셨다. 나는 세이군이 그동안 알뜰하게 저축한 돈과 퇴직금이 있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하면 더 좋은 일이라고 위로해 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 돈은 이미 세이군 부모님의 수중에 있었고, 시험에 합격하도록 돌려주시지도 않았다. (2년간의 은행이자만 생각해도 이건 기막힐 노릇이다)
세이군은 어느날 청바지를 입고 왔는데, 엄마가 시장 갔다가 싸다고 새 옷을 사주셨다는 거다. 새 옷인 것은 좋은데 어째 뒷태가 이상했다. 가만히 보니 지퍼 방향이 반대였다. 그, 있지 않은가. 19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항아리형 청바지. 디스코 바지라는 거 말이다. 아줌마들 입는 거. 아들한테 그걸 입혀놓았더랬다. 나는 차라리 나중에 내가 돈 벌면 새로 사 줄 테니, 그거 갖다버리라고 권했다. (그리고 취직하고 발령받아 월급 받고 곧 새 바지를 사 주었다) 엄마는 늘 몸에 맞지 않는, 두 치수는 더 큰 (동생이 입던) 셔츠를 입고 다니는 세이군을 보시고, 세이군의 생일에, 셔츠 두 장을 새로 사 주셨다. 세이군은 거의 처음으로 자기 몸에 맞는 셔츠를 입었는데, 집에 갔더니 왜 그렇게 작은 옷을 샀느냐고 혼이 났다고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얻어입은 것 같은 옷보다는 몸에 맞는 옷이 더 어울리는 법이다. 세이군도 곧 자기 몸에 맞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함께 서구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세이군은 얼마 안 되는 차비와 밥값을 집에서 지원받았지만 그나마 제때 주시지도 않았고, 주실 때 마다 세이군은 괴로움을 당했다고 들었다. 책이 필요해서 책값을 도와주십사 했는데 “너 따위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붙을 리 없다”고 하셨다고 들었다. 우리 엄마는 애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종종 도서관에 오셔서 세이군에게 밥을 사 주셨고, 나는 내 퇴직금과 엄마가 조금씩 지원해주시던 것으로 쓰고 있던 용돈을 아껴 세이군의 교통카드를 충전해 주고, 종종 도서관 식당에서나마 밥을 사 먹였고, 내가 먼저 본 책을 빌려주곤 했다. 세이군은 집에서 지원을 받으며(학원비나 책값 등등) 공부하는 동기를 질투했고, 조금씩 성격이 나빠지려는 기미를 보였다. 너무 힘들어서 그런 줄 알면서도, 애가 비뚤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합격하자마자 세이군을 다잡아 그해 겨울, 기적처럼 갑자기 공고가 뜬 인천 지방직에 합격시켰다. 아들 돈은 가져가 돌려주시지도 않은 채 차비조차 넉넉하게 대주시지 않으며 그런 시험 공부해본들 소용없다고 비웃으시던 세이군 부모님은 기뻐하시며 아들의 합격을 자랑하시며 그 공을 당신들에게 돌리셨다.
2006년.
나는 먼저 발령을 받아 내려갔지만, 세이군은 지방직 수급사정상 1년정도 대기해야 했다. 세이군은 전 직장에서 벌어 모아놓았던 돈(약 900만원 정도로 들었다)을 집에서 돌려주지 않아 경제난으로 괴로워했다. 세이군은 한전에 다니시는 친척을 따라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아르바이트비도 집에서 요구하기 일쑤였다. 남이 입다 버린 옷을, 그것도 몇 년째 입고 있고, 러닝셔츠도 면이 아니라 무슨 나일론 같은 것(옛날 드라마 같은 데서 공사판 아저씨들이 입는 거 있죠?)으로 된 것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세이군에게 양말이나 셔츠, 바지, 점퍼 등을 사주고 일하러 갈 때에도 깨끗하게 하고 가라고 했다.
세이군 어머니는 어느날 군산에서 올라오던 내가 세이군과 전화통화를 하는데 빼앗아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퍼부었다. 세이군이 자기 돈은 자기가 관리하겠다고 돌려달라고 한 것이, 내가 부추긴 일이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똑똑한 여자애는 재수가 없고 부모에게 효도도 하지 않는 못된 것들이라고 세이군에게 나와 헤어질 것을 강요하게 된 것이 이 시기부터였다. 그분은 내게, 세이군을 키운 비용 운운 하시며 1억을 말씀하셨다. 미성년 자녀의 양육은 부모의 의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내가 1998년부터 보았던 세이군의 초라한 모습을 생각했다. 옷도 용돈도 식사도.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늘 코피를 흘리고 현기증을 느끼고 빈혈이었던 세이군을 생각하면 화가 났다. 1억이라, 훗. 대학 학비 빼면 천만원도 안 들었을 거다. 그 이전에 자식에게 가격을 매기는 게 이게 부모가 할 짓인가, 진짜.
내게 그래놓고 세이군 부모님은, 세이군이 공무원도 되었으니 다른 여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며 부동산집 딸하고 선을 볼 것을 권하셨다. 세이군은 그런저런 일로 나와 헤어질 뻔 하였지만 다른 여자들과 선을 보거나 하지는 않았고, 나와의 인연이 질긴 탓인지 어떻게 우리들의 연애관계는 유지가 되었다.
그해 가을 세이군 부모님은 세이군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놓은 돈을 빌려가셨다. 그리고 12월 세째주에 세이군은, 1월 1일자 발령 통보를 받았는데, 출근할 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 돈을 돌려줄 것을 청했지만 세이군 부모님은 발령 직전까지 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섬에 있는 친척집으로 낚시를 하러 가셨다. 결국 내 카드를 긁어 세이군이 출근할 때 입을 수트와 구두를 사고, 셔츠며 속옷같은 다른 것들(러닝셔츠만 해도 내가 사준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그 건강에도 좋지 않을 나일론 속옷을 너덜너덜 해어지도록 입고 있었다)과 타이를 선물로 사 주었다.
2007년.
세이군은 나의 충고대로, 빌려드린 돈과 전 직장에서 모았던 돈을 돌려줄 것을 계속 요청했다. 이제 20대 후반이고, 세이는 스물 아홉 살이 되었는데, 이러다가 장가도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 과정에서 세이군 어머니는 세이군을 모질게 대하며 계속하여 나와 헤어지고 부동산집 딸들 중 하나와 선을 볼 것을 강권하였다. (세이군 부모님은 주택대출을 갚는데 그 돈을, 세이군과 상의 없이 그대로 갖다넣으신 상태였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돌려받을 기미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세이군과 헤어질 뻔 한 일이 두 번 있었지만, 세이군은 결국 그 돈을 받아내고 강화도 관사로 독립해 나왔다.
독립하여 나온 세이군은 축농증과 몸이 안 좋은 것들, 자주 코피를 쏟는 일 등등 때문에, 먼저 이비인후과에 다니고, 치료를 받고, 자주 터지는 코 안쪽 혈관을 지지는 치료를 받았다. 그 다음으로 내 권유로 예전에 세이군의 한약을 지었던 우리 아버지 단골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의원에서 2달정도 치료를 받자 세이군의 축농증은 아주 호전되었다. 어려서부터 약을 못 얻어먹은 바람에(병원에도 거의 못 갔다) 약발이 기가막히게 받는 몸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한 주에 한 번씩, 여덟 번에 걸쳐 뜸 치료도 받았다. 세이군은 많이 건강해졌고, 부모 사랑 받고 자라는 애들에게 미묘하게 질투나 자격지심을 느끼는 것은 있었지만 전반적인 성격도 다시 온화해졌다.
2008년.
설날 전날, 세이군은 모처럼 연휴라고 집에 돌아갔더니 보란듯이 석고보드를 다 뜯어놓아 방에서 잘 수 없게 하는 것에 반발하다가 무시무시한 폭언을 듣고, 나와 헤어지라는 말과 나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 등등을 듣고 우리집으로 도망쳐왔다. 우리 엄마가 앞으로도 계속 이 연애관계를 지속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셨을 때 세이군은 울면서 “자신없어요”같은 소리를 했고, 엄마는 그 바람에 “저녀석이랑 헤어졋!!!”하셨다. (그래도 설에 집을 나와 관사에서 혼자 있는 것이 불쌍하다고, 엄마는 설 다음 날 세이군을 집으로 불러 새로 밥을 짓고 떡국과 설 음식, 제육볶음 등을 차려주셨다. 세이군은 집에서도 그런 환대는 받아본 적이 없다고 울었다.)
집을 아주 나와버린 세이군은 박봉에도 열심히 저축을 했다.
4월에 세이군 부모님은 전세금 빼줘야 해서 급하다고, 필요하다고 할 때 바로 돌려주겠다고 세이군에게 800만원을 빌려가셨다. 세이군과 부모님은 그다지 연락을 하지 않았고, 세이군은 결혼식때 부모님을 부르지 않으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내가 만류했다. 그래도 부모님이니 결혼식에는 오셔야지 하고, 나는 8월에 세이군과 내년에 결혼하기로 약속하면서 부모님께도 말씀은 드리라고 권했다. 이후 세이군 부모님은 심심하면 세이군을 불러들이고 내게 전화를 하시기 시작했다. 세이군은 부모님이 2천만원을 결혼할 때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을 듣고, 그 돈이면 조금이라도 내게 잘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모님 말씀에 끌려다녔다. 물론 나는 말렸다.
10월, 세이군 집에 쳐들어오신 두 분은 “너희같이 부모에게 예의도 모르는(돈을 안 준다는 뜻) 아이들은 결혼시킬 수 없다”며 한푼도 주지 않겠다고 하시고, 다른 일이 있으니 이만 돌아가시라고 하는데도 오후까지 애를 괴롭혀 움직일 수도 없게 만들어 놓으시고는 돌아오는 길에 나를 불러내 2대 1로 몰아세우셨다. (물론 내가 세이보다 급수도 높고 연봉도 높으며 어디 속도위반으로 애라도 하나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고 집안이 거지같은 것도 아닌 이 상황에서 이건 퍽 무례하고 당혹스러우며 장래 시부모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 일단 참아 준 것이 아니었다면 내 성격상 무슨 사단을 내었어도 내었을 만큼 황당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밝혀둔다) 두 분은 우리 아버지가 교사라는 말만 듣고 우리 집이 퍽 가난한 집안인 줄 아시는 모양이었고, 우리 아버지가 30세에 결혼하신 관계로 우리집 쪽 부모님의 연세가 더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너희 부모님이 얼마나 배운 분들인지는 모르지만 살아가는 데는 나이와 연륜을 무시 못하는 것” 운운 하시며 막 무시하셨다. 나는 “글쎄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아버님보다 연세가 더 많으십니다만.”이라고만 말하고 넘어갔다. (그러면 고생한 이야기 운운 하실 것 같았지만, 사실 고생으로는 우리 아버지도 만만치 않게 하셨다. 전쟁고아가 되어서 중, 고, 대학을 고학으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세이군이야 자기 아버지한테 워낙 겁을 먹어서, 체격 좋고 자기 아버지처럼 머리 곱슬곱슬한 우리 팀장님을 보고도 애가 순간 동태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겁먹지 않았다. 허풍만 떨고 마누라나 자식에게나 폭군처럼 굴지 밖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허풍선이는 겁먹을 필요 없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집 마누라도 자식도 아닌관계로, 두들겨 패려는 듯이 해본들 그쪽이 큰일이다. 내가 아니라.
사실 우리 아버지는, 조용조용 말씀하시지만 무서운 분인데다 한번 제대로 꽂혀서 때리면 매자국도 안 남게 사람을 패신다. (영어와 국사를, 전교조 사태 등으로 해당 과목 교사가 부족하던 시절이나 시골 고등학교에서 사람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직접 가르치실 만큼 교양이 높은 체육교사라니까.) 펜싱을 전공하셨고 소년부 펜싱 지도자로도 꽤 이름이 있으셨던 분이라 그런지 어디가서 기백 밀리시는 일도 없고, 잘못한 학생 혼내는 데도 일가견이 있으시다. 그런 것은 넘어가고.
10분쯤 이야기해 보고 상대방이 목소리만 큰 허풍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느물느물 웃으며 한시간쯤 이야기를 하고 나왔는데, 요지는 그거다. 결혼하고 몇년 있다가 1억을 줄 테니 지금은 너희가 내놓아라. 너희가 이따위로 굴면 결혼자금은 일절 줄 수 없다. 집 사지 말고 월세 들어가서 살아라, 너희가 몰라서 그러는데 월세에서 전세, 전세에서 집으로 가는 과정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느냐. (물론 나는 전세로 시작한 우리 직장 상사님들이 애가 태어나도록 내집마련을 못해 허덕거리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런 1970년대의 신화를 여기에 가져다 놓는 것은 택도 없는 이야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_-+ 그러면서 두분은 나에게 천주교를 믿을 것을 강요하였다. 이유는 천주교를 믿음으로써 두분의 결혼생활이 신뢰가 가득하고 어떤 난관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그런 것이었다. 그래, 뭐. 천주교 좋다. 내가 정말 믿고 사랑하는 친구놈도 천주교 신자요, 세이군도 천주교 신자요, 나 고등학교 때 붙잡아주신 분도 그 동네 성당 신부님이었으니까, 천주교에 대해 악감정은 없다. 그런데 말이지.
저분들을 보면 천주교가 정말 좋은 종교인가 좀 생각하게 되더라.
나는 천주교 믿으시는 분이, 바람을 두 번이나 피우고 마누라나 두들겨 패며 집안 기물이나 부수어 대었고, 아들의 박봉을 빼앗아다가 정말 급한 순간에 돌려주지 않아 몇 번이나 곤경에 처하게 하고는 놀러가시는가, 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품었지만, “저는 성당에 다닐 뜻이 없습니다만 세이군의 신앙은 방해하지 않겠습니다.”로 일관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세이군 부모님은 세이군에게 전화를 걸어 “혜진이가 영세를 받겠다고 했다”고 주장하셨다. 세이군은 내가 종교를 믿겠다고 하는 말이야말로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임을 알고 전화를 끊었다. 이건 뭐 동인녀도 아니고, 여기서 말 다르고 저기서 말 다른게 망상종도 이런 망상종이 없구나 하고 OTL했다. 어떻게, 신앙 방해하지 않는다는 말이 내가 믿겠다는 소리가 되는 거냐!!!!!!! 천주교 믿는 분이 거짓말하면 됩니까? 하느님이 경기하시겠어요.
나는 세이군과 결혼하여 둘이 열심히 벌어서 인생 꾸려나갈 것이고, 저희가 자리잡힐 때 까지는 부모님께 딱히 용돈이나 무엇을 해드릴 수는 없겠지만 두분도 목돈 들여 저희 결혼을 도와주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분들은 굳이 결혼하고 3년 뒤에 1억을 해주겠다고 하시며 지금은 일단 집장만같은 무리를 하지 말고 월세를 살고, 부모에게 효도를 하라(아까부터 말했지만 이게 의미하는 바가 너무 뻔한 분들이라 더이상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예단은 별도로 또 내놓으라 하셨다. 이바지하고 폐백 말씀도 하시길래 우리집안은 경상도 쪽이라, 이바지도 친정으로 받고 폐백도 친정 시댁 같이 받는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런 허례허식은 생략하자고 하셨고, 예단 운운 하시지만 우리는 집장만도 도움 안 받고, 내 직장 동료들이 예물을 어떻게 받건 난 예물도 기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런 사치스러운 일을 왜 하냐고 하셨다. 아직 결혼도 안 한,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그냥 닥치고 돈 내놓으라는 말이었다. 나는 적당히 하고 돌려보냈다. 더 있었다가는 쓰러질 것 같아서.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주말 내내, 독하게 앓았다. 자기 부모님께 당하고 쓰러진 세이군도 마찬가지였다. 월요일 저녁, 세이군은 나를 만나러 조퇴하고 내 직장 앞으로 달려왔고, 우리는 끌어안고 한참 울었다.
그리고 12월. 집 잔금에 약간 보태기로 했던 세이군은 결국 4월에 빌려드린 돈을 돌려받지 못하여 곤경에 처했다. (그리고 나한테 혼날까봐 그 말도 못 하고 있다가 당일날 아침에 나를 폭탄맞을 상황에 놓이게 만들었다. 전날에만 미리 말했어도 놀라지 않잖아! 아, 진짜. 나도 박봉이기는 하지만 내가 고작 돈 500에 현기증 느껴야 하겠니?) 그리고 이 일로, 세이군은 우리 엄마 앞에서, 내가 발품팔아 지른 집을 두고 자신의 지분이라는 것을 요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 난국을 듣고 급히 와서 도와주신 뒤 무시무시하게 화를 내시며 그동안의 히스토리를 모두 언급하고 그런 저열한 인간들과 사돈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분이 바로 우리 엄마였으니까. (물론 그 일을 당일 아침에 이야기하는 뻘짓을 한 관계로 세이군도 죽을만큼 혼났다.)
지난번에는 1억이더니, 이번에는 세이군의 양육비 조로 1억 4천을 요구하시기 시작한 이 가공할 분들은 어제부터 오늘까지 계속 나와 세이군에게 전화를 걸고 계시지만, 나는 아주 많이 화가 나서 이대로 전화받았다가는 위 아래 없이 제대로 맞장을 뜰 것 같은 기분인 관계로 전화를 차단걸어 놓았다. 어디, 얼마나 더 하는지 두고 보자구. 저분들 다니는 성당에다가 72포인트로 출력해서 붙여놓고 싶을 정도라면 알 쪼지요. 그래도 난 착한 사람이라 참는다구, 사실의 적시이기는 하지만 명예를 생각해서 그분들 성함도 거론 안 했잖아?
Tags: 대체 왜들 그러신대?, 세이군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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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ODADADA » 내 남편이 될 사람의 부모님. [...]
세상은 참 다양한것 같아요
근데 두분 다 참 착하시네요
저 같았으면 이미 뒤집어 엎었을거 같아요
나중에는 행복한 포스트 많이 올라오길 기대할게요 ^^
………………휴우…아직 끝난게 아니었군요. 그날 제가 들은게 전부였던게 아니었던거군요…;;
뭐라 할 말이 많지만 그만두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도 아니고 해야될 자리도 아니겠지요…ㅠㅠ
nakada님 // 사실은 엄청 힘들어요, 결혼 자체를 재고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을 만큼.
그래도 어떻게, 저 부모님들을 떼어버리고 갈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라도 가야죠. ^^;;;
whitelancer님 // ……저희 집에서도 저간의 사정을 대충 아시는 관계로.
이런 결혼은 못 한다고 그러세요. 으으으으으…..;;;;
워드프레스 태그 링크 쫓다가 여기까지 오게된 과객입니다만, 장문의 사연을
읽고나니 코멘트를 남기지 않을 수가 없군요.
두 분…꼭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아니, 꼭 행복하셔야합니다. ^^
차가운 눈이 내리는 블로그 배경과 어찌 이리도 잘 어울리는 글일까요..
안타깝기도 하고 와닿기도 하는 글이네요. 저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