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주년 부산 여행 –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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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반항철도를 타고 서울역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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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퇴근을 하고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밤새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그쪽이 차비도 덜 들고 새벽부터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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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부산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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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 대신 마신 부산우유. 서울우유와는 조금 다른것이, 약간 싱거우면서도 고소한 맛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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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춤의 고장 동래답게 벽에 이런 무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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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고분군 관련 유물들을 볼 수 있는 복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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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왕족 코스프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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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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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읍성 문화관을 지나 장영실 공원. 장영실은 동래 출신 관노였으니까….. 기는 한데 음, 어쩐지 좀 뭐랄까. (긁적) 여기서는 엽기사진을 많이 찍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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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런 사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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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들도 부농부농하는 더러운 세상. 현주일구 앞에서 용들에 맞서 전방위 부농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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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들이여 내게 힘을!!!!!! (원기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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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역 앞. 아직 이날까지 크레인 위에 계셨던 김진숙 지도위원을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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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대 순교박물관 보러 가는 길. 박물관 안에서, 피로에 쩌든 세이가 코피를 쏟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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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천주교인들을 액살하기 위해 만들어진……(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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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절집의 당간지주를 뽑아다가 천주교인들을 고문했냐고요 이 싱크빅한 대원군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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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돈님의 그림을 보러 갔던 부산 시립 미술관. 그러나 길건너에 마침 G-star가 열린 벡스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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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물론 대한민국의 덕도가 그래프 용지를 뚫고 나갈 지경인 벡스코 따위 무시하고(엉엉) 모네에서 워홀까지, 전시회를 둘러보았음. 사실 현대미술이니까 멋대로 상상할 여지가 많기도 하고 미술교과서에서만 봤던 칼더의 모빌이라든가 그런게 매달려 있기도 해서 아주 흥미로운 전시였는데, 무슨 도슨트가 그렇게 목소리가 큰지. 뒤따라와서 우리 둘을 쌩하니 스치고 지나간 도슨트와…. 설명 듣던 분들의 시끌시끌 분위기에 쫄아 있었다.

그보다는 여기서 본, 신예작가들의 전시회 좋았음. 망치나 공구의 손잡이에 조각을 한 작품들이 특히 흥미로웠다. 공구 손잡이에 바벨 탑을 새겨넣은 “바빌론의 탑”은 어쩐지 테드 창의 소설을 생각나게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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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이 아니라 대포알로 뚫린 듯한 김성종 추리문학관. 김성종 선생님의 책을 구입하고 사인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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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관련 전시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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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 도일 경 나랑 싸우자. 내가 덕후라니 무슨소리요 의사양반. 아, 코난도일도 의사긴 했다. 그럼.

여기까지 돌고 나오니 어둑어둑. 센텀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자마자 둘다 곯아떨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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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씨 1/2…..-_-;;;;

낭익천에 들어간 경우

남익천에 한쪽발만 담근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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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적어도 멍청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 그게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은 한다. 나는 그냥 생각없이 살 수 있을 만큼 멍청하진 않았지만, 그걸 숨기고 성격을 죽이고 얌전히 쥐죽은듯 살지 못할 만큼은 멍청했다. 내 부모님과, 내 동생들과 내가 서로 맞지 않았던 게 그 부분이었을 거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똑똑한 자식을 낳길 바라셨는데, 그 점에서는 난 태어나면서부터 간절한 소원을 하나 이뤄드린 셈이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그 똑똑함의 기준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똑똑한 애를 낳아서 그 애가 “교사나 공무원이 되어서 얌전히 사는 것”이 바람이었다면 사실 그보다는 훨씬 좋은 스펙으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내가 태어났던 시대엔 지금처럼 교사나 공무원 되기가 어려웠던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원서만 넣어도 말단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시대에 대체 자식에게 뭘 바란거야, 라는 생각, 지금도 종종 하고 있다. 물론 지금이야, 글을 쓸 만큼 고정적인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서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으로서 공무원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애초부터 똑똑하게 낳아서 교사나 공무원 말고는 딱히 멋진 것을 생각해내시지 못하셨으면서 이제와 무슨 선견지명 품었다는 듯이 말씀하실 때는 좀 기가 막히기도 한다. 잠깐만요, 아버지. 대체 제게 뭘 바라신 거예요.

그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지론으로 말하자면 어머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어머니 기준에서는 아마 나는, 에러였을 거다. 그러니까 내가 사고를 쳤을 때, 수능을 망쳤을 때, 팔에 가위를 찔렀을 때 “이딴 것을 낳아서 미안하다”고 아버지께 진심으로 사과하셨겠지. 그 점에 대해서는 나는 이해도 용서도 하지 않았지만, 얼마 전 그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진심으로, “아버지가 내게 화내시려는 걸 막아주느라고 나는 너와 같이 죄인 노릇을 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셨는데, 나는 차라리 맞아 죽었어도 좋으니 “그딴 것”취급은 받고 싶지 않았다. “태어나서 미안”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팔에 가위를 찔러넣은 채 학교 그만두게 해달라고 애원할 때, 나로서는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그 순간에 “차라리 같이 죽자.”고 한탄하신 것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다. 뭐, 하지만 내게는 그렇다고 해도, “정상적”인 내 동생들에게는 훌륭한 부모님들이셨으니 내가 그에 대해 불만을 품을 수는 없겠지. 흔한 이야기를, 내가 너무 오래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 점에서 애초에 필요한 만큼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는 게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동생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기도 했거니와 객관적으로 볼 때 충분히 사랑받고 컸음에도 나는 늘 애정결핍이었다. 그건 부모님과 나 사이에 애정을 주고받는 프로토콜이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일이었다. 아무리 사랑을 쏟아부어도 늘 혼자 뒤돌아 앉아 손톱을 물어뜯으며 책 속의 세계에나 빠져있는 어린아이라니, 화수분 독처럼 사랑이 솟아난다 한들 쉽지 않은 일이었을거다. 그건 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어쨌건 적당한 타협점을 찾을 수는 있었다. 공부를 좀 잘 하거나, 피아노를 남보다 좀 잘 치고, 책을 남보다 많이 읽거나. 부모님이 남의 집 애들과 비교했을 때 자랑할만한 일들을 만들어 드리는 것. 지금은 용돈을 넉넉하게 드리거나 명절에 명절용돈을 남의 집 자식들보다 많이 드리고 가끔씩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체크해서 화끈하게 바꿔드리는 게 그에 해당하겠다. 칭찬받는게 사랑받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부모님 입장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객관적으로 볼 때 넘치게 받고 있는 사랑이 하나도 전달이 되지 않아던 것에 대해, 그리고 내가 아무리 갈망해도 그런 것이 닿지 않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보상이 필요했다. 나는 지금도,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내 수입에 비해 무리해서 용돈을 보내거나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부모님이 뭔가 불만족한 듯한 반응을 보이시면 배신감을 느끼고 혼자 돌아서서 뭔가 걷어차곤 한다. 이제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는 지금도, 사랑이란 중력과 같아 기본적으로 내리사랑이라고, 효도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치사랑이란 사실 사랑을 갈망하는 어린아이의, 애원에 가까운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 나는 괴짜였고, 왕따였고, 걸핏하면 학교에서 얻어맞거나 머리를 뜯기고 교복이 찢어져 돌아왔으며, 교과서나 수학의 정석이 진흙탕에 굴렀던 것도 수십 번이었다. 나는 지금도, 4층 교실에서 내 가방을 화단을 향해 거꾸로 털던 녀석들을 잊지 못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믿어줬으면 하는 이야기인데 강간을 당할 뻔 하기도 했다. 남녀공학이었고, 음악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어떻게 무사했는지 들으면 더 놀랄 거다. 나는 “내게 이 이상 손을 대면 나는 경찰과 교육청에 신고할건데, 내가 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너희가 곱게 대학에 가게 두지는 않겠다.”고 했다. 대학에 가는 게 인생의 목적과도 같던 그 학교의, 내신이나 따지던 벌레같은 놈들이 주저하는 사이, 나는 울면서 도망쳤다.

아버지가 믿었던 것은 내가 아닌, 교사들이었다. 나를, 부적응 학생이라고 부르던. 난 지금도 내 담임의 수첩에 적힌 “부적응학생”이라는 두꺼운 글씨를 잊지 않는다. 나는 내가 졸업하기 전에 저 미친 선생들과 그들의 말을 믿은 아버지가 날 죽일 거라고 확신했다. 피해의식만은 아니었다. 몇 번이나 나는, 살면서 “살려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팔에 커터칼이나 가위를 꽂은 채, 피를 줄줄 흘리면서. 하지만 한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 난 지금 자꾸 자살충동을 느끼고 자해를 하고 있으므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을때, 내가 아버지께 돌려받은 대답은 “그냥 죽어버려라”였다. 어머니께 돌려받은 대답은 더 끔찍했다. “너같은 걸 낳았으니 내 죄다, 같이 죽자.” 내가 죽고싶었으면 그런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죽었을 거다. 나는 살려달라고 말한 것이었다. 답이 나오지 않아서, 나는 어느 날 새벽 한 시, 집에 돌아오던 길에 초등학교 앞 도로에 드러누웠다. 초등학교 정문 앞은 밝았지만 조금 빗나간 쪽은 어둑어둑했고, 나는 자리를 잘 잡아 드러누운 뒤 얼굴이 뭉개져도 신원파악하기 쉽게, 앞 포켓에 학생증을 꽂아넣은 채, 지나가던 차가 나를 밀어 그대로 끝장을 내 주기만 기다렸다. 차 한 대가 다가왔다. 나는 웃으려고 애썼다. 하늘이 참 어둡고 까맣고, 늘 내가 바라보던 시커먼 무언가처럼 느껴져서 정답기까지 했다.

관세음보살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건 그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차가 멈추어 섰고, 운전자는 깜짝놀라 내렸다가, 내가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하라고, 어디 아픈 게 아니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고, 확인하고, 당부하고, 그리고 사라졌다. 나는 죽을 수도 없었다. 나는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죽지 말라고 누군가가 어깨를 붙잡은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차마 믿지는 못했다. 내가, 학교 근처의 성당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마리아상과 말싸움을 시작한 것은 그무렵의 일이었다. 어느날 마리아상에 물을 끼얹다가 신부님께 붙잡혔던 나는, 그동안의 일들을 모두 이야기했고, 그리고 그 이야기들 끝에,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소설을 쓰고 있어요. 비밀이 아니지만 비밀처럼 속삭였다. 젠장, 집에서는, 내가 소설을 쓰거나 만화를 그리면 북북 찢어버렸으니까. 혼나지 않았다. 괜찮다고, 죽지 말라고, 누군가가 말해주는 소리를 들었다.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 내게. 성직자로서 으레 하는 말이건 뭐건, 하여간 그랬다.

그래서 나는 살았다. 술을 마시고 왼손으로 오른팔을 찍어 온통 상처를 내 놓으면서도, 나는 죽지 않았다. 죽지 말라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 간절했는데, 너같은 미친년은 죽어도 아무도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며 조롱하는 학교와, 너같은건 낳아놓아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부모와, 너같은 언니 있는 것도 쪽팔리고 엄마아빠 힘드니까 죽어버리라고 진심으로 말하던 동생과, 그 수많은, 언어가 만들어내는 죽음들 사이에서 살고싶다고 비명을 질렀는데, 누군가가 살라고 했으니까. 그게 할머니가 믿던 관세음보살이건, 물을 끼얹어버린 마리아님이건, 동네 신부님이건 상관없이.

지금의 나는, 사랑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 사랑을 위해서라면 세상 전부와 싸울 수 있을 만큼 사랑해서 결혼했으면서도, 정작 내, 사랑에 대한 기대치는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운명같은 것을 믿지 않지만, 있을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한다. 영원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영원이 존재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는 고3때, 수능이 끝나고 예상보다 성적은 올랐지만 등수는 떨어져 집과 학교에서 시달려 잔뜩 피폐해진 채,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바로 그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안경을 쓰고, 컴퓨터 책을 품에 안고, 내게 손을 내밀던 촌스러운 머리모양을 한, 그리고 그와중에 120% 미화된 그 꿈속의 남자아이를 나는, 대학에 입학한 첫 날에 만났다.

나이프와 가위를 내 손 닿지 않는 곳에 숨겨두는, 커터칼과 안전가위와 샤프 촉으로 만들어낸 별 것 아닌 상처를 붙들고 내게 제발 살아달라고 말하는.

이유도 없이 울면서, 그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벽에 찧는 나를 그저 꽉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살아달라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과 같은 말임을 아는, 나와는 달리 따뜻한 사람. 나는 그의 인내심과 끝도 없는 사랑에 늘 경이를 느낀다. 내가 그렇게 갈망했지만 갖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채워주려는 듯, 어깨를 끌어안고 몇 번이라도 속삭여주는 그 말들을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온전히 프로토콜이 맞는 것을 느끼고 전율한다. 내 가족들은 그 말을 비웃었지만, 그는 내게 있어 내 살고자 하는 의지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내가 너를 사랑하니 날 위해 살아달라고 붙잡았던, 중력이었다. 젠장. 도로에 드러누워 보았던 그때의 하늘과 닮은 하늘을, 차가운 바람이 새어드는 창문으로 올려다보며, 내 옆에서, “나 좀 살려줘”하고 중얼거린 내 한 마디에 내 팔에 난 상처가 벌어져 피가 나도록 꼭 붙잡은 채 어깨에 턱을 대고 잠들어있는 사람의 호흡을 세며. 나는 내 자신을 감추지 않아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의 존재에 감사한다. 평범한 행복을 내게 만들어주려 애쓰면서도, 내 자신이 그저 평범하고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모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갈 것을 단 한 번도 요구하지 않은 채, 응원해주고 내가 쓰는 모든 이야기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주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모의 가없는 사랑에 대해 머리로 알면서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을, 내가 숨은 쉬고 있는지, 다치진 않았는지, 여전히 손을 꽉 잡은 채 들여다보는 사람의 눈을 올려다보며, 이 사람이 내 아이에게 쏟을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런 사랑을 쏟을 자신은 없다. 내가 언젠가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는 것은 순전히 내 유전자가 아까워서고, 이 사람을 닮은 아이라면 싫어하진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들어서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것을 믿지 않으면서도, 나는 때때로 잠든 그를 들여다보며 허황된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운명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 자신도 온전히 받아보지 못했던 가족간의 사랑을, 그는 그저 그 마음 안에서 끝없이 길어올려 내게 쏟아부어준다. 내 안에서, 그저 머리로만 알고 있을 뿐 가슴에는 흔적기관으로만 남아있던 어떤 따뜻한 것들을 깨워 싹을 틔워 꽃을 피우도록, 기다려주는 사람. 나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생각한다. 나는 영원을 손에 넣었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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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해보는 에고그램 테스트

에고그램 테스트라나…… 여기서 해볼 수 있어요

BCAAB
양의 탈을 쓴 냉담한 계략꾼 타입
▷ 성격
이런 타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신론적인 쾌락우선주의자입니다 타인을 짓밟든 차내 버리든 개의치 않는 냉정한 성격이지만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에 본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호기심이 왕성해 취미나 유흥의 탐구자가 많습니다. 이상이나 권력에 집착하지 않으며 자신의 행위가 사람들의 칭찬을 받거나 무시를 당하는 일은 실질적인 손익이 없는 한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타입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무작정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독보적입니다. 감의 고통은 얼마든지 참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씨를 키우는 것이 세상으로부터의 평판을 높이는 유일한방법입니다.
▷ 대인관계 (상대방이 이 타입일 경우 어떻게 하연 좋을까?)

연인, 배우자 – 결혼의 목적이 단순히 성적 욕구해결이거나 금전적인 것, 편리를 위한 것에 압도적으로 쏠려있는 타입입니다. 무엇이 진짜목적인지 잘 확인하고서 마음을 결정하십시오.

거래처고객 – 자신도 모르게 이용당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당신이 곤경에 배졌다 해도 상대방은 재빨리 도망가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심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상사 – 아무생각 없이 있다가는 일방적으로 이용당하거나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써 엄청난 악인 취급을 받을 뿐입니다. 술수가 교묘한 사람이니 주의하세요.

동료, 부하직원 – 이런 사람과 사회의 언덕길을 함께 오르려는 것만큼은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 상대입니다.

오, 흥미롭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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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 출근스타일 – 동네 고삐리 룩

사무실 올라가는 길에 있는 거울. 매일매일 출근복을 찍어보았지만 늘 똑같은 패턴의 반복이긴 한데
그래도 공개한다. 2011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공부좀 하는 동네 고삐리 룩. -_-+ (진짜 그렇게 불리고 있다)
그런데다 큼직한 아저씨용 사첼백에 신문배달 사은품 자전거까지 끌고 다녔더니
어디 빼도박도못할 고삐리 룩이 완성되었다. >_<

사진 하단의 맥심은 이 사진의 화룡점정. 동네 고삐리 룩의 완성.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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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처음 다녀온 노래방

9월 24일 노래방 다녀온날.
사실은 저것 말고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부르며 북북춤을 추는 영상도 있었으나 웃다가 손을 떠는 바람에 광과민성 발작이 염려되어 삭제하였음 ㅋ

세이와는 13년에 걸친 연애기간에도 노래방에 2번밖에 같이 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세이가 약간 음치인데 자기가 음치인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그러나 늘 당구장에 갔기에 그날은 당구장 아래의 노래방에 시험삼아 가보았다. 언제 또 갈지 모르는 일이라 영상으로 남겨두었다 ㅋ

처음 부른 건 갈채. 이 음악으로 말하자면 고등학교때 수많은 남학우들이 교실 바닥 청소용으로 불렀던 노래로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세이 말이 자기네 학교에서도 이 노래로 교실바닥 청소하던 놈들이 많다고 했다. 어이, 들어줄 여학우도 없는데 그게 무슨 청승맞은 소리요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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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의 “컬러토크”에 다녀왔습니다

퍼스널 컬러 커뮤니티 http://www.coloz.co.kr/ 에서 내게 알아보는 컬러를 찾아보는 컬러토크 행사에 참가해 보았다.

개인 퍼스널컬러를 알아보는 계절별 색상천들

사람의 피부색과 머리카락색을 비교하는 컬러칩들

여름 색상과 가을 색상. 나는 뜻밖에도 여름 색상이 잘 어울린다는 판정을 받았다. 파스텔톤이나 시원한 하늘색, 회색, 흰색.

유료행사로 월별 4회정도 열리는데, 퍼스널 컬러니 이미지 컬러니 하는 것들을 알아볼때 사용하는 각종 계절성향별 천무더기를 어깨에 얹어보고 내게 어울리는 계절컬러를 알려준 뒤, 그에 어울리는 립스틱과, 쇼핑할때 참고가 되는 계절색별 배색카드도 한장씩 주는 것이 특징.

가보면 이렇게 한명한명 직접 천을 둘러보고 어울리는 색을 찾는다. 내 경우는 그냥 보면 얼굴에 조금 노란 끼가 도는 편인데, 실제로 얼굴이 타기 전 색상으 노랗다기보다는 옅은 분홍색이어서 그 색을 베이스로 따라가게 된다. 어렸을때 엄마가 입혀주시던 가을색상(갈색이 섞여 차분하고 여성적인 색), 봄 색상(선명하고 밝은 원색)은 내가 입으면 얼굴이 까맣게 되고, 지금 주로 입는 연청색, 청색, 흰색 등이 포함된 여름색상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물론 나는 겨울색에 해당하는 검정 옷도 대단히 많은데, 이때는 은색 목걸이나 여름 색이 나는 코르사주나 스카프나 셔츠를 활용하라고.

당산역에서 내려 영등포 방향으로 걷다가 영등포 롯데마트 길건너의 BBQ 치킨 건물 6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버스정류장 바로 앞이니까(당산역까지 버스로 1정거장) 찾아가기도 쉬운 편) 신청은 위 사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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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다녀 왔어요

전에는 울증에 약간 조증 성향이 있는 정도니 관리만 잘 하면 된다다니.
이번에는 경조증 판정을 받았다. 전의 울증때보다 기복이며 상태가 더 심해졌으니까 반드시 약물치료를 병행해야한다고.
뿌리를 뽑아버리겠다는 기세의 마치 북극에서 곰을 잡다 오신 듯한 의사 선생님께 잠시 쫄아있다가, 나는 작가라고, 그래서 그걸 함부로 손대어도 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 말에 의사선생님은 조금 더 물어보셨다.

직업이 작가라고요? 어떤 것을 쓰나요? // 순정만화잡지에 추리만화를 쓰고 있어요. 근데 직장은 따로 있고, 밤에만.
직장은 어딜 다니나요? // 근처 관공서 전산실요
관공서? 그럼 공무원이에요? 시험봐서 들어갔어요? // 아, 그럼요. 근데 상사 하나가 맨날 괴롭히는데, 평소같으면 아우 저 !@#$!$!@#! 하고 있어야 하는데 요즘 기분이 하이해져서 그런지 아하하 저사람 또 저러네 ㅋㅋㅋ 하고 넘어가요, 사실은 그게 이상해서 병원에 온 것이 커요. 잠 하루에 두시간도 못하는 것 하고,
전공은 뭐예요? 대학 다닐때 // 수학이랑 기계공학. 근데 둘 다 정신에 착란을 일으킬만한 학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학부범위에선
기계공학은 왜 했어요? // 신랑이 그때 남친이었는데 군대가니까 심심해서요.
그럼 그때도 지금처럼, 이렇게 기분이 좋은 기간이 있고 그분 처지는 기간이 있었던건가요? // 예, 그리고 기분 좋을 때는 복수전공을 새로 하거나 해킹대회에 나가거나 좋은 일들을 많이 했죠.

(슬슬 신경질이 나기 시작한 게 전에 다녔던 병원에서이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그 병원은 울증 반동으로 찾아온 내게 아이큐 검사만 자꾸 권하다가, 내 우울증이 “머리에 유휴자원이 많아서” 생기는 우울징이라고 말했다. 내 머리가 무슨 놀고먹는 컴서버도 아니고 무슨놈의 유휴자원!?!?!?!?! 아이큐 검사 하도 해보고 싶어하길래 됐다고, 귀찮다고, 멘산이라고 했더니 역시 자신의 가설이 맞았다는듯 좋아하길래 다음주부터 안갔다. 쳇!!!!!! 여긴 다행히도 아이큐 검사 드립까진 안나왔다. 그냥 이것저것 다양하게 하는 놈이구나 하고 말아서 안심했다.)

…….치료 받으세요. // 뭐라고요?!
작가니까 섬세하게 줄여나가야 하긴 하겠는데 이거 두면 심해질수 있어요. 관리해야 해요 // 전 그냥 수면제 처방 받으러 왔어요! 무슨 제모하러 왔다가 맹장염 선고도 아니고! 기분 좋은 건 관 두고 잠만 줄여줘요, 잠만.
지금 기분 좋은 거 그냥 두면 아마데우스같이 아하하 거리고 다니거든요? // 아마데우스가 무슨 빚졌어요? 조증 환자의 예로는 무조건 아마데우스라니!
……본인도 매닉 성향 있는 거 알긴 알죠? 지금 하이포인데 매닉으로 가면 이제 반사회적 행동을 할 수도 있고 통제가 필요한 케이스가 생기기도 해요, 아주 없애는 쪽으로 가진 않을 테니 조절좀 해봅시다. 하루에 글은 얼마나 써요? 잠은? // 퇴근하고 나서부터 잠잘때까지….. 지난주에는 털어서 10시간 잤어요. 지지난주도. 글은 직업으로 쓰는 글들 말고도 한달에…… 아저씨러브 개인지를 한권씩 써낼 정도.
아, 무식하게 글 쓰는 것도 특징이에요. 하이포매닉이나 매닉에 걸리면 작가들이 미친듯이 작업을 해요. 그리고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그 퀄리티가 상당히 좋은 경우도 많아요. 근데 내버려두면 안됩니다. 잘못하면 컨퓨전, 인세니티, 실생활에 곤란한 여러가지 것들을 보면서 영감이 내려왔다고 착각하고 그래요. 알겠어요?

그리고 나는 지금, 한끼에 한줌씩 되는데다 먹고나면 왼쪽 오른쪽 구분이 안 가고 키보드 자판의 영역이 넓게 느껴져 오탈자를 한말씩 내는 이 썩을 약들을 처먹으며, 경조증은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글들을 찾아 스크랩하면서, 다음번 병원갈때까지의 나 자신에 대한 관찰일기를 작성하고 있다. 이해는 간다. 지금 이 상태가, 이 미칠듯한 라이터스 하이가 술을 열 병 마신 것보다도, 카페인을 들이부었을때부터도 더 짜릿한데. 누구 말로는 조증 자극이 뭔가 창조열이랑 만났을때 오는 뇌내마약의 자극이 대마보다 강하고 엑스터시보다 약하다고도 하던데 여기서 손을 뗄 수 있을리가.

하지만.

언젠가는 이 자극이 알아서 끝날 날도 오기는 온다. 우울증 반동 말이다. 지금 시기를 최대한 길게, 그러나 수위는 낮춰서 유지하되 우울증 반동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수 밖에 없겠지. (사실 지금 상태는 조금 더 맛가면 통제불능인것은 아니까 조심하는 면도 있는데 우울증 반동이 오면 구제불능이니까.)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약을 평생 먹어서라도 치료했을거다. 밋밋하고 재미없는 세상으로 폴인해서라도. 지금 상태가 두려운게 아니라, 여기서 더 하이하게 노는게 두려운게 아니라 다가올 낙폭이 두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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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어제 뿌린 씨앗이 돌아오는거네…. :-)

조금 전에 트위터에서, 미국쪽 방송국에서 셜록홈즈 현대물을 만들려고 하니 BBC의 모팻이 영부심을 내뿜으며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급의 트윗을 쏜 이야기를 다른 분들과 하다가, 내가 한마디 했다.

“걔네는 왜 뉴욕의 미남 존잘 명탐정 엘러리 퀸을 두고 남의나라 탐정갖고 그러는데요?”

그러다가 보니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다가, 1994년에 SBS에서 했던 드라마 “Y의 비극” 이야기도 나오고. 아, 그래. 요크 해터 역으로 나오신 오현경 님의 광기어린 대사들을 들을 수 있었지. 주옥같은 드라마. 지금은 구할 방법도 없겠지만. 여튼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생각이 났다.

내가, 팬픽은 바람의 나라와 베르사이유의 장미 같은 것으로 시작했고, 내 글은 노트에다가 연필 깎아서 짧은 동화같은 것들, 혹은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치정물들을 끄적끄적하거나 좋은 시 같은 것을 따라서 적어보기도 하고 뭐, 남들 할만한 짓은 다 했지만, 처음 아래아 한글로 썼던 소설은 추리물이었다. 1992년, 중학교 1학년때 점심시간마다 학교 컴퓨터실에 5.25인치 디스켓이랑 아래아한글 들고 가서 썼다.

그때 썼던 것은, 동네 경찰관인 아빠와 신춘문예 노리는 대학생 딸네미가 잘린 손목을 놓고 추리를 벌여 범인을 잡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진짜, 그런 것을 썼다는 것만 기억하고 잊고 있었다.

……작년에 나는, “당신 이과 나왔으니까 뭔가 말이 되는 추리물이나 범죄수사물 같은거 만들수 없을까? 시미즈 레이코의 ‘비밀’같이 좀 미래 배경이어도 좋고”라는 말을 듣고 바로, 빅토리아 시대 배경으로, 셜록홈즈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런던에서 활약한 여탐정을 만들어 보고싶다고 말했는데, 대략 앉은 자리에서 첫 화의 트릭까지 만들고 나오긴 했다. 그리고는 오오 나 천잰가? 그게 어디서 나온거지? 으쓱으쓱. 하면서 집에 잘 왔다.

……젠장 ^^ 이건 나쁜 뜻의 감탄사가 아니다. 결국은 자기가 밟은 계단이 돌아오는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 걱정도 된다. 난 그때도 사랑이 없어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잖아. 하면서 폭풍의 언덕같은 미친 사랑 이야기에 몰두했는데. 아아, 역시 나는 앞으로도 로맨스는 쓰기 글렀다고 봐야 하는건….. 아니겠지? ^_^

요즘 블로그에 한참 소홀했다. 트위터가 있는 것도 그렇지만, 글 쓰는 이야기를 여기다 해야 하나 저기에 해야 하나 고민이 있었다. 역시, 이젠 확실히 내가 작가라는 자각이 있으니까 저쪽 블로그에는 쓰는 글에 대한 이야기 위주로 해야겠다.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이쪽에 모아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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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란 좋은 것이여

남자에게 수트는 좀 중요한 거라고. 그러니까 제발 출근할 때 타이를 맵시다. 아무리 관공서에서는 다들 노타이가 대세라고 해도 말이죠. 난 제대로 수트를 입고 타이 맨 남자가 좋아요. 오죽하면 나도, 셔츠에 가디건 입고 출근할때 당신 넥타이 매고 나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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