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적어도 멍청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 그게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은 한다. 나는 그냥 생각없이 살 수 있을 만큼 멍청하진 않았지만, 그걸 숨기고 성격을 죽이고 얌전히 쥐죽은듯 살지 못할 만큼은 멍청했다. 내 부모님과, 내 동생들과 내가 서로 맞지 않았던 게 그 부분이었을 거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똑똑한 자식을 낳길 바라셨는데, 그 점에서는 난 태어나면서부터 간절한 소원을 하나 이뤄드린 셈이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그 똑똑함의 기준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똑똑한 애를 낳아서 그 애가 “교사나 공무원이 되어서 얌전히 사는 것”이 바람이었다면 사실 그보다는 훨씬 좋은 스펙으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내가 태어났던 시대엔 지금처럼 교사나 공무원 되기가 어려웠던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원서만 넣어도 말단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시대에 대체 자식에게 뭘 바란거야, 라는 생각, 지금도 종종 하고 있다. 물론 지금이야, 글을 쓸 만큼 고정적인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서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으로서 공무원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애초부터 똑똑하게 낳아서 교사나 공무원 말고는 딱히 멋진 것을 생각해내시지 못하셨으면서 이제와 무슨 선견지명 품었다는 듯이 말씀하실 때는 좀 기가 막히기도 한다. 잠깐만요, 아버지. 대체 제게 뭘 바라신 거예요.
그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지론으로 말하자면 어머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어머니 기준에서는 아마 나는, 에러였을 거다. 그러니까 내가 사고를 쳤을 때, 수능을 망쳤을 때, 팔에 가위를 찔렀을 때 “이딴 것을 낳아서 미안하다”고 아버지께 진심으로 사과하셨겠지. 그 점에 대해서는 나는 이해도 용서도 하지 않았지만, 얼마 전 그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진심으로, “아버지가 내게 화내시려는 걸 막아주느라고 나는 너와 같이 죄인 노릇을 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셨는데, 나는 차라리 맞아 죽었어도 좋으니 “그딴 것”취급은 받고 싶지 않았다. “태어나서 미안”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팔에 가위를 찔러넣은 채 학교 그만두게 해달라고 애원할 때, 나로서는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그 순간에 “차라리 같이 죽자.”고 한탄하신 것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다. 뭐, 하지만 내게는 그렇다고 해도, “정상적”인 내 동생들에게는 훌륭한 부모님들이셨으니 내가 그에 대해 불만을 품을 수는 없겠지. 흔한 이야기를, 내가 너무 오래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 점에서 애초에 필요한 만큼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는 게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동생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기도 했거니와 객관적으로 볼 때 충분히 사랑받고 컸음에도 나는 늘 애정결핍이었다. 그건 부모님과 나 사이에 애정을 주고받는 프로토콜이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일이었다. 아무리 사랑을 쏟아부어도 늘 혼자 뒤돌아 앉아 손톱을 물어뜯으며 책 속의 세계에나 빠져있는 어린아이라니, 화수분 독처럼 사랑이 솟아난다 한들 쉽지 않은 일이었을거다. 그건 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어쨌건 적당한 타협점을 찾을 수는 있었다. 공부를 좀 잘 하거나, 피아노를 남보다 좀 잘 치고, 책을 남보다 많이 읽거나. 부모님이 남의 집 애들과 비교했을 때 자랑할만한 일들을 만들어 드리는 것. 지금은 용돈을 넉넉하게 드리거나 명절에 명절용돈을 남의 집 자식들보다 많이 드리고 가끔씩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체크해서 화끈하게 바꿔드리는 게 그에 해당하겠다. 칭찬받는게 사랑받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부모님 입장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객관적으로 볼 때 넘치게 받고 있는 사랑이 하나도 전달이 되지 않아던 것에 대해, 그리고 내가 아무리 갈망해도 그런 것이 닿지 않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보상이 필요했다. 나는 지금도,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내 수입에 비해 무리해서 용돈을 보내거나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부모님이 뭔가 불만족한 듯한 반응을 보이시면 배신감을 느끼고 혼자 돌아서서 뭔가 걷어차곤 한다. 이제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는 지금도, 사랑이란 중력과 같아 기본적으로 내리사랑이라고, 효도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치사랑이란 사실 사랑을 갈망하는 어린아이의, 애원에 가까운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 나는 괴짜였고, 왕따였고, 걸핏하면 학교에서 얻어맞거나 머리를 뜯기고 교복이 찢어져 돌아왔으며, 교과서나 수학의 정석이 진흙탕에 굴렀던 것도 수십 번이었다. 나는 지금도, 4층 교실에서 내 가방을 화단을 향해 거꾸로 털던 녀석들을 잊지 못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믿어줬으면 하는 이야기인데 강간을 당할 뻔 하기도 했다. 남녀공학이었고, 음악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어떻게 무사했는지 들으면 더 놀랄 거다. 나는 “내게 이 이상 손을 대면 나는 경찰과 교육청에 신고할건데, 내가 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너희가 곱게 대학에 가게 두지는 않겠다.”고 했다. 대학에 가는 게 인생의 목적과도 같던 그 학교의, 내신이나 따지던 벌레같은 놈들이 주저하는 사이, 나는 울면서 도망쳤다.
아버지가 믿었던 것은 내가 아닌, 교사들이었다. 나를, 부적응 학생이라고 부르던. 난 지금도 내 담임의 수첩에 적힌 “부적응학생”이라는 두꺼운 글씨를 잊지 않는다. 나는 내가 졸업하기 전에 저 미친 선생들과 그들의 말을 믿은 아버지가 날 죽일 거라고 확신했다. 피해의식만은 아니었다. 몇 번이나 나는, 살면서 “살려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팔에 커터칼이나 가위를 꽂은 채, 피를 줄줄 흘리면서. 하지만 한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 난 지금 자꾸 자살충동을 느끼고 자해를 하고 있으므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을때, 내가 아버지께 돌려받은 대답은 “그냥 죽어버려라”였다. 어머니께 돌려받은 대답은 더 끔찍했다. “너같은 걸 낳았으니 내 죄다, 같이 죽자.” 내가 죽고싶었으면 그런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죽었을 거다. 나는 살려달라고 말한 것이었다. 답이 나오지 않아서, 나는 어느 날 새벽 한 시, 집에 돌아오던 길에 초등학교 앞 도로에 드러누웠다. 초등학교 정문 앞은 밝았지만 조금 빗나간 쪽은 어둑어둑했고, 나는 자리를 잘 잡아 드러누운 뒤 얼굴이 뭉개져도 신원파악하기 쉽게, 앞 포켓에 학생증을 꽂아넣은 채, 지나가던 차가 나를 밀어 그대로 끝장을 내 주기만 기다렸다. 차 한 대가 다가왔다. 나는 웃으려고 애썼다. 하늘이 참 어둡고 까맣고, 늘 내가 바라보던 시커먼 무언가처럼 느껴져서 정답기까지 했다.
관세음보살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건 그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차가 멈추어 섰고, 운전자는 깜짝놀라 내렸다가, 내가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하라고, 어디 아픈 게 아니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고, 확인하고, 당부하고, 그리고 사라졌다. 나는 죽을 수도 없었다. 나는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죽지 말라고 누군가가 어깨를 붙잡은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차마 믿지는 못했다. 내가, 학교 근처의 성당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마리아상과 말싸움을 시작한 것은 그무렵의 일이었다. 어느날 마리아상에 물을 끼얹다가 신부님께 붙잡혔던 나는, 그동안의 일들을 모두 이야기했고, 그리고 그 이야기들 끝에,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소설을 쓰고 있어요. 비밀이 아니지만 비밀처럼 속삭였다. 젠장, 집에서는, 내가 소설을 쓰거나 만화를 그리면 북북 찢어버렸으니까. 혼나지 않았다. 괜찮다고, 죽지 말라고, 누군가가 말해주는 소리를 들었다.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 내게. 성직자로서 으레 하는 말이건 뭐건, 하여간 그랬다.
그래서 나는 살았다. 술을 마시고 왼손으로 오른팔을 찍어 온통 상처를 내 놓으면서도, 나는 죽지 않았다. 죽지 말라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 간절했는데, 너같은 미친년은 죽어도 아무도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며 조롱하는 학교와, 너같은건 낳아놓아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부모와, 너같은 언니 있는 것도 쪽팔리고 엄마아빠 힘드니까 죽어버리라고 진심으로 말하던 동생과, 그 수많은, 언어가 만들어내는 죽음들 사이에서 살고싶다고 비명을 질렀는데, 누군가가 살라고 했으니까. 그게 할머니가 믿던 관세음보살이건, 물을 끼얹어버린 마리아님이건, 동네 신부님이건 상관없이.
지금의 나는, 사랑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 사랑을 위해서라면 세상 전부와 싸울 수 있을 만큼 사랑해서 결혼했으면서도, 정작 내, 사랑에 대한 기대치는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운명같은 것을 믿지 않지만, 있을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한다. 영원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영원이 존재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는 고3때, 수능이 끝나고 예상보다 성적은 올랐지만 등수는 떨어져 집과 학교에서 시달려 잔뜩 피폐해진 채,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바로 그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안경을 쓰고, 컴퓨터 책을 품에 안고, 내게 손을 내밀던 촌스러운 머리모양을 한, 그리고 그와중에 120% 미화된 그 꿈속의 남자아이를 나는, 대학에 입학한 첫 날에 만났다.
나이프와 가위를 내 손 닿지 않는 곳에 숨겨두는, 커터칼과 안전가위와 샤프 촉으로 만들어낸 별 것 아닌 상처를 붙들고 내게 제발 살아달라고 말하는.
이유도 없이 울면서, 그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벽에 찧는 나를 그저 꽉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살아달라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과 같은 말임을 아는, 나와는 달리 따뜻한 사람. 나는 그의 인내심과 끝도 없는 사랑에 늘 경이를 느낀다. 내가 그렇게 갈망했지만 갖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채워주려는 듯, 어깨를 끌어안고 몇 번이라도 속삭여주는 그 말들을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온전히 프로토콜이 맞는 것을 느끼고 전율한다. 내 가족들은 그 말을 비웃었지만, 그는 내게 있어 내 살고자 하는 의지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내가 너를 사랑하니 날 위해 살아달라고 붙잡았던, 중력이었다. 젠장. 도로에 드러누워 보았던 그때의 하늘과 닮은 하늘을, 차가운 바람이 새어드는 창문으로 올려다보며, 내 옆에서, “나 좀 살려줘”하고 중얼거린 내 한 마디에 내 팔에 난 상처가 벌어져 피가 나도록 꼭 붙잡은 채 어깨에 턱을 대고 잠들어있는 사람의 호흡을 세며. 나는 내 자신을 감추지 않아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의 존재에 감사한다. 평범한 행복을 내게 만들어주려 애쓰면서도, 내 자신이 그저 평범하고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모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갈 것을 단 한 번도 요구하지 않은 채, 응원해주고 내가 쓰는 모든 이야기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주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모의 가없는 사랑에 대해 머리로 알면서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을, 내가 숨은 쉬고 있는지, 다치진 않았는지, 여전히 손을 꽉 잡은 채 들여다보는 사람의 눈을 올려다보며, 이 사람이 내 아이에게 쏟을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런 사랑을 쏟을 자신은 없다. 내가 언젠가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는 것은 순전히 내 유전자가 아까워서고, 이 사람을 닮은 아이라면 싫어하진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들어서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것을 믿지 않으면서도, 나는 때때로 잠든 그를 들여다보며 허황된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운명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 자신도 온전히 받아보지 못했던 가족간의 사랑을, 그는 그저 그 마음 안에서 끝없이 길어올려 내게 쏟아부어준다. 내 안에서, 그저 머리로만 알고 있을 뿐 가슴에는 흔적기관으로만 남아있던 어떤 따뜻한 것들을 깨워 싹을 틔워 꽃을 피우도록, 기다려주는 사람. 나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생각한다. 나는 영원을 손에 넣었는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