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고양이는 외출한다 – 하루노 요이코, 미우

그래도 고양이는 외출한다

“그래도 고양이는 외출한다”는 만듦새가 영 좋지 못한 책이었다. 아무리 만화가가 썼다고는 해도 수필집인데 좌철이라니. 만화책이야 만화의 문법을 살리기 위해서도 있고, 또 주인공들을 전부 왼손잡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지만, 수필집을 좌철로 읽고 있으려니 한컷짜리 카툰만 있을 뿐 컷 연출이 들어간 만화도 없는 이 책을 대체 누가 이따위로 편집했나 싶어 갑갑했다. 그래서 처음에 읽다가, 집어던졌다. 작가가 만화가이지만 작가의 만화를 따로 읽은 것도 아니고, 뒷표지에 작가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언니”라고 적혀 있었지만 요시모토 바나나를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굳이 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책을 읽어야 할 동력이 없었다.

책무더기를 뒤지다가 한참만에 이 책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다시 읽었다. 그리고 고양이가 아니라, 요시모토 타카아키의 이야기를 읽었다. 정확히는 요시모토 타카아키의 만년과 고양이들에 대해.

이야기는 하루노 요이코가 마미증후군(꼬리 등 마미총신경으로 연결된 척추를 다치거나 디스크가 와서 배변 등에 문제가 생기는 증상)을 앓고 있는 아기고양이 시로미를 줍는 데서 시작한다.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고양이들을 주워와 집에서 기르기도 하고, 마당에서 동네 고양이들의 밥을 주기도 하며, 나름대로 이 고양이들을 집 고양이와 처마 고양이, 바깥 고양이로 나누어 생각한다지만 고양이들의 외출을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작가 하루노 요이코는,  배변 문제로 고생하는 시로미는 물론 프란치스코나 다른 고양이들도 사랑하며 건사한다. 처음에는 하루노 요이코와, 그가 고양이를 데려올 때 마다 “제대로 된 고양이는 없냐!”고 역정을 내면서도 고양이들을 제대로 치료해 주는 D 동물병원장이나 다른 고양이들의 이야기인 줄 알고 읽기 시작한 이 이야기는, 고양이들을 중심으로 이제는 사라진 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것은 바로 일본 전후 최대의 사상가로 불렸던 철학자이자 진보 지식인인 요시모토 타카아키, 요시모토 바나나의 부친이다. (예전에 “사상으로서의 3.11″을 읽었는데 그 책을 쓰신 분) 물론 우리 나라에서는 요시모토 바나나가 더 유명하다 보니, 그의 수필집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내안의 행복”이라는 실로 충격적인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아니다, 여성학자 박혜란이 매번 “이적 엄마”로 호명되는 걸 보면 그렇게까지 충격적인 일은 아닐지도.) 처음에 고양이들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던 이 이야기는, 점차 시간이 흐르며 요시모토 타카아키의 만년을 다룬다. 요시모토 타카아키의 서재에 머무르며 그의 인터뷰나 만년의 사진에 종종 등장하던 시로미, 요시모토 타카아키와 고양이 프란치스코의 깊은 교감을 읽다 보면, 어느 새 책 속의 시간이 흘러 프란치스코가 세상을 떠난다. 다음 해인 2012년 봄에는 요시모토 타카아키가, 그해 가을에는 본문에는 “어머니”라고 짤막하게만 나오지만 하이쿠 시인이었던 요시모토 카즈코가 세상을 떠난다. 아기 고양이였던 시로미는 이제 중년의 고양이가 되었고, 그는 요시모토 타카아키가 세상을 떠난 뒤 NHK에서 그의 강연 재방송이 나오자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온 집안을 헤맨다. 가족들이 하나하나 세상을 떠난 집에서, 작가는 마치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것으로 눈이 쌓인 풍경을 그려 놓듯이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안에 있었던 사람을 그려낸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 중에는 “산책 고양이”에 대해 고양이가 위험에 처하거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을 간과한 무책임한 행동으로 보는 관점도 많다. 그 관점에서, 이 책이 고양이 관련 에세이를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책이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나는 80년대에 태어나 어릴 때 부터 아파트 단지가 익숙했고, 작가 하루노 요이코는 그 이전 시대의 사람이며, 단독주택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달라지는 관점일 수도 있고, 캣맘이 폭행당하기도 하는 한국과 고양이에게 그보다는 좀 더 우호적인 일본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읽으면서 “아니, 이래도 괜찮은가.”하고 고양이들을 걱정하게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양이가 아니라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에 초점을 두었을 때, 이 이야기는 더없이 쓸쓸하고 고즈넉하게 요시모토 집안의 풍경을 그려낸다. 일세를 풍미했던 지식인 집안의 “노년의 풍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