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옌롄커, 김태성, 웅진지식하우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는 1944년 마오쩌둥이 발표한 정치 슬로건이자, 연설의 제목이다. 산베이(산시 북부 지역) 안차이 현의 목탄 탄광에서 갱도가 붕괴되어 공산당 전사인 장쓰다가 압사했을 때, 마오쩌둥은 인민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의 죽음을 기리며 이와 같은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후 개인의 행복보다 혁명의 대의를 위해 일하라는 이 말은 혁명정신의 상징이자 중국군의 금언이 되었지만, 사단장 집에서 취사를 담당하는 공무분대장 우다왕에게 이 말은 사단장의 젊은 아내 류롄의 유혹, 나아가 그녀와의 금지된 사랑을 상징한다.

사단장과 류롄, 그리고 우다왕은 모두 마오 주석의 연설과 어록을 신봉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의 의미는 모두 다르며, 그들은 모두 욕망이 좌절된 이들이다.

열네 살 때 부터 쉰이 넘은 지금까지 항일전쟁과 토지혁명, 해방전쟁과 함께 하며 평생을 혁명을 위해 살았던 사단장은 부상으로 인해 신체적 욕망이 좌절되었다. 그는 혁명에 진심으로 투신했지만, 그 대가는 쾌락의 좌절이고, 사랑하는 이로부터의 배신이다. 그는 자신보다 열 일고여덟 살이나 어린 군 병원 간호사인 류롄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서로에게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하지만 이 관계에서 류롄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 그는 자신이 성 불구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이전의 부인에게도 그 문제로 이혼당했으면서도 같은 과오를 반복했다. 그는 민중을 위해서라는 혁명이 민중의 인간적 욕망을 제약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알면서도 이 체제를 고수하는 위선적인 당 지도부다.

류롄은 혁명전사인 사단장을 존경하고 마오 주석의 저작을 공부하고 어록을 줄줄 외우는 적극분자로, 사단장 앞에서 백 개가 넘는 항목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단숨에 암송한 뒤 사단장에게 청혼을 받았다. 하지만 류롄이 원하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안락한 생활이다. 그는 사단장과의 결혼을 통해 안락을 손에 넣었고, 사단장의 불능으로 인해 성욕(과 아이를 낳고 싶다는 욕망)이 억압되지만 사단장과 이혼할 생각도 없다. 혁명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며, 그는 여전히 군 병원 간호사의 신분이지만, 사단장 부인이 된 류롄은 우다왕의 시중을 받으며 관사에서 여왕처럼 지낸다. 그는 다양한 욕망을 갖고 있지만 현실, 즉 국가 체제와 타협하여 출세한 인물이다. 그는 우다왕과의 관계를 통해 잠시 솔직해지기도 했지만 결코 사단장을 떠나지 않고, 사단장의 묵인 하에 불륜으로 잉태한 아이를 낳는다.

우다왕은 농민, 민중이다. 그는 마오 주석을 신봉한다고 하지만 그의 행동이나 가치기준은 매우 전통적이다. 그는 효도를 하기 위해 3년 전 고향에서 인민공사의 회계 담당자인 자오 씨의 눈에 들어 그의 딸인 자오어즈와 결혼했고, 출세를 위해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 자오 씨는 우다왕에게 군대에서 공을 세우고 입당하여 간부가 된 뒤, 도시의 호구를 얻어 딸을 안락하게 살게 해주라 명령했고, 우다왕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절박하게 노력한 끝에 사단장의 사택으로 전출되었다. 우다왕의 아내인 자오어즈는 섹스할 때 마다 우다왕에게 성공과 출세를 요구한다. 자오어즈와의 섹스는 성공과 출세라는 실리적인 목적, 아들을 낳는다는 실리적인 목적과 연결되며, 섹스를 할 때 마다 우다왕은 “의무에 억압된 가부장”의 굴레에 묶이게 된다. 한편 우다왕은 처음에는 류롄과의 섹스를 거부하고, 그로 인해 사택에서 내쫓길 뻔 하는데, 이때 우다왕은 아내와 자식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류롄에게 용서를 빌고 섹스를 하게 된다.

농민 계층이자, 사랑과 본능조차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억압받으며 누군가의 도구로만 살아오던 우다왕은 류롄과의 섹스를 통해 그는 쾌락을 알게 되고, 자신의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류롄과의 관계가 깊어지자, 류롄이 만든 음식을 먹고, 자신이 일할 때 입은 옷을 류롄에게 세탁해 달라고 명령하기도 한다. 이 장면은 읽으면서 불쾌해졌다. 사랑을 통해 겨우 두 사람이 동등한 관계가 되자마자, 가부장적인 우위를 점하려 들다니. 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에서, 우다왕의 동등한 관계, 나아가 농민이나 민중이 부유한 자본가보다 우위를 점하는 관계는 시도하자마자 묵살된다.

우다왕과 류롄이 온전히 솔직해지는 순간은, 그들이 마오 주석의 어록이 새겨진 팻말을 짓밟고, 석고상을 떨어뜨려 부수는 순간이다. 정치체계와 계급에 억압당하던 그들의 관계는 일순간 자유를 얻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단장의 묵인”하에 벌어지는 일이다. 원래대로라면 마오 주석의 어록을 모욕한 것만으로도 숙청되었어야 할 우다왕은, 자신과 류롄의 관계를 비밀로 하는 대신 원하던 대로 도시에 새로운 직장과 호구를 얻고 출세하게 된다. 하지만 비밀을 지키려는 사단장은 군 조직 개편을 위한 시범지역이라는 핑계로 부대를 해산하고, 사단장의 사택에서 일한 적이 있고 사단장이 불능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던 장교들은 모두 군에서 물러나게 된다.

15년이 지난 뒤, 사단장은 성 군구의 사령관이 되어 있고, 류롄은 슬하에 아들을 둔 존경받는 부인이 되어 있었다. 권력과 자본, 또는 안락, 또는 쾌락이 서로 기만한 채 손을 잡고 보기좋은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동안, 농민인 우다왕은 나이들고 초라한 모습으로 류롄을 찾아간다. 그러나 류롄은 우다왕에게 아이를 보여주지도, 나와서 만나주지도 않는다. 돈이 필요하다면 정확한 액수를 알려달라는 메모만이 돌아올 뿐이다. 한때의 혼란, 디오니소스적인 열락 속에서 벌어진 계급의 파괴는 일시적인 축제였을 뿐, 계급은 여전히 공고하고, 우다왕을 가로막고 있는 벽은 높다. 초반 설정만 들으면 성인 비디오의 도입부같은 설정인 이 이야기는, 계급에 대한 우화다. 위선적 태도로 모두를 기만하고 억압하는 당과 권력, 권력에 아첨하고 마오 주석의 사상을 체화했다 말하면서도 자신의 쾌락과 욕망을 찾는 자본, 인민을 위한 세상을 바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개인)의 계급상승을 꿈꾸며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개인)의 가부장적인 권력을 원하는 (남성)민중의. 그들은 마오 주석의 어록을 짓밟고 석고상을 부순다 해도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결코 이 체제를 뒤엎지 못한다. 그리고 서로 속고 배신한다. 그들 앞에 다시 한 번 혁명의 대의를 내밀어본들, 그것은 마치 부끄러운 과거처럼 감추어야 할 무엇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