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이 맞다면 ABC 살인사건은 내가 처음 읽은 추리소설이자 처음 읽은 살인사건 이야기다. (“명탐정 호움즈”와 해문 추리문고 시리즈는 국민학교에 가서 읽었고, 이 책은 1학년때 읽었으니까.) 그 책도 아마 해문에서 나왔던 것 같은데, 뒤에 실려 있던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광고에서 엘러리 퀸을 “에라리 쿠인”으로 적었던 것이 기억난다. 바늘은 바늘꽂이에 꽂혀 있을 때 제일 눈에 띄지 않듯이, 목적한 살인을 숨기기 위해 여러 건의 다른 살인을 만드는 이야기는 심플하면서도 강렬하다. 그런데다 ABC라니. 마치 살인사건을 다루는 추리소설의 가장 기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사실 “하나의 목적한 살인을 다른 여러 살인 속에 숨기는” 스타일이며 타자기마다 지문같은 특징이 있어 여러 장의 명령서가 하나의 타자기로 쳤다는 트릭, 탐정이 거짓말고 범인을 궁지로 몰고 가는 것 등 이후 정말 많은 추리물에서 쓰이는 요소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지금 읽기에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신 무척 편안하게 읽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무슨 말이라도 하게 하기 위해 푸아로가 아무 말이나 중언부언 던지다가 피해자의 언니에게 “말을 위한 말”이라고 한마디 듣는 장면이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