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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 오리엔트 특급 살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

유치원 다닐 무렵 이동도서관에서 이 소설의 제목을 읽고 이유없이 무서워했었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겹쳐져 있었는데, 하나는 오리엔트 시계 광고였다. 시보 광고라고 하던가, “오리엔트 시계가 몇 시를 알려드립니다.”하고 약간 불안정한 기계음을 닮은 사운드와 함께 시계 초침이 돌다가 정각을 가리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무렵에 세계 종말 시계에 대해 읽은 것과 이미지가 겹쳐서 조금 무서워 했었다. 또 하나는 “특급 살인” 쪽이었다. 무척 잔인한 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인에게 일급 살인죄를 적용했다는 대목을 어디서 읽었는데, 그럼 특급 살인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범죄인 걸까.

하지만 몇년 뒤, 나는 완전히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리엔트”는 시계 회사가 아니었고 “일급 살인”보다 무서운 “특급 살인”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오리엔트 특급”이 하나로 붙은 쪽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은 19세기 말, 파리와 이스탄불을 연결하며 달리는 귀부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호화 열차,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를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것을.

폭설로 인해 정차한 오리엔트 특급 안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앞뒤 칸으로는 식당차 및 다른 방향 열차가 연결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간밤에 빗장이 걸려 있어 실질적인 밀실인 상태다. 한 개의 복도에 여러 개의 객실이 연결되어, 객실 끝에 앉아 있던 차장이 지나가는 사람과 열린 문을 전부 볼 수 있는 기묘한 형태의 밀실 안에서, 과거 데이지 암스트롱을 살해했던 악한이, 열두 번이나 칼에 찔린 채 살해된다. 용이 수놓인 분홍 잠옷을 입은 인물과 차장 옷을 입은 수상한 인물에 대한 증언이 오가는 가운데, 마침 일정이 변경되며 그 열차에 타고 있던 푸아로는 국적도 신분도 배경도 제각각인 이들 1등석과 2등석의 손님들 사이에서 데이지 암스트롱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해문사 팬더추리문고 판으로 처음 읽었을 때는 그 결말이 충격적이었던 이 소설은, 10대 후반에 다시 읽었을 때는 러시아 어에 대한 궁금증을, 한참 잘 놀러다니던 20대 말, 30대 초반에 다시 읽었을 때는 “블루 트레인의 수수께끼”와 함께, 기차 여행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언젠가 여건이 되면, 지금은 스트라스부르와 빈을 잇는다는 오리엔트 특급을 타 보거나, 혹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블루 트레인을 타 보고 싶다거나. 어쩐지 리뷰들을 보면 좀 애매한 것 같기도 하지만, 해랑 열차 같은 것은 어떨까 싶기도 했고. 그리고 지금은 한 어린이의 참혹한 죽음과 그로 인해 부서진 가족,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읽힌다.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을 때에는 무엇을 또 찾아내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