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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어릴 때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책. 원제는 “열 꼬마 검둥이(Ten little niggers)”였지만 미국에서 출판될 때에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로 바뀌었고, 마더 구스에 나오는 “열 꼬마 검둥이”도 인종차별의 문제가 있어 미국의 동요 “열 꼬마 인디언”을 따서 바꾸었다. “열 꼬마 병정(Ten little soldiers)”으로 수록된 판본도 있는데, 황금가지판은 이쪽으로 번역했다. 우리가 어릴 때 부르던 “열 꼬마 인디언”도 요즘 유치원 등에서는 “열 꼬마 펭귄” 등으로 바뀌는 추세인데,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부분이라도 지금은 분명히 문제가 되는 만큼, 원작의 서사 자체를 틀어버리는 게 아니라면 그런 문제가 없는 쪽을 선택한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병정 섬이라 불리는 외딴 섬에, 열 사람이 초대된다. 섬 주인인 얼릭 노먼 오웬과 유너 낸시 오웬 부부(이름의 머릿글자를 따면 U.N. 오웬, Unknown이 된다.) 의 초대를 받은 이들은 저마다 직업도, 사회적 배경도 다른 이들이다. 이들은 도착하여 환대를 받지만 침실에는 열 꼬마 병정의 죽음에 대한 음산한 동요가 적혀 있고, 저택에는 열 개의 꼬마 병정 인형이 놓여 있다. 그리고 모두가 모이자, 축음기에서는 그들의 죄상을 까발기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배가 끊어진 무인도, 혹은 대저택은 거대한 밀실이다. 이 밀실에서 누가 진범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사람들이 연달아 죽어나가는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잊을 만 하면 반복되는 오페라 섬 이야기도 있고, 이야기에 따라서는 살아남으면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식의 배틀 로얄형 경쟁이 붙기도 한다. 하지만 인물들의 죄를 까발기고, 처음부터 서로를 의심시킴으로써 긴장감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이 고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생동감이 넘친다. 수술대에서 사람을 죽게 했던 의사 암스트롱, 임신한 하녀를 내쫓아 죽음으로 몰고간 도덕적인 여성 에밀리, 자신들에게 유산을 물려줄 사람의 간병을 소홀히 했던 로저스 부부, 강도 범인을 체포한 경찰 데이비스와 죄인에게 사형을 언도한 워그레이브 판사, 가정교사로 맡고 있던 아이의 죽음을 못본 척 한 베라, 동아프리카 원주민 21명을 굶어죽게 내버려 둔 롬바드, 아내의 정부인 부하를 사지에 정찰을 보내 죽게 만든 맥아더, 두 아이를 교통사고로 죽게 만든 매스턴. 이들은 그 죄가 가벼웠던 사람부터 차례대로, 열 꼬마 병정의 노래대로 죽어가고, 그때마다 병정 인형이 하나씩 사라지며 긴장을 더한다.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그 트릭이 무엇인지는 이미 유명하지만, 마지막에 남은 진범의 고백에서는 여전히 광기가 느껴진다. 어렸을 때 이 책을 처음 읽고는 워그레이브 판사가 나오는 악몽을 꾸기도 했는데, 과연 지금 다시 읽어도 악몽의 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