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서재 – 장샤오위안, 이경민, 유유

고양이의 서재
고양이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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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샤오위안은 과학사학자이자 천문학자이자 성에 대해 연구해 온 학자이자, SF 애호가이기도 하다. 학문과 독서, 좋아하는 책을 찾아 서점을 누비는 일과 자신의 서재에 대한 이야기, 지인들의 서재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 작은 책 안에 빼곡이 담겨 있어, 띄엄띄엄 읽는 내내 누군가의 서재에 초대받아 느긋이 이야기를 듣는 것 처럼 즐거웠다.

책의 초반, 저자의 소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당황스럽다. 저자는 소년시절 문혁을 겪었다. 문화대혁명 하면 떠오르는 것은 고전들을 불사르고, 쓸모없는 문학작품들을 판매금지하거나 금서로 지정하고, 지식인들이나 예술가들을 끌고 가 자아비판을 시키고 농장에서 노역을 시켰다는 이야기들이다. 이를테면 패왕별희에 나오는 데이라든가, 혹은 돼지 농장에 끌려갔던 바둑기사 녜웨이핑이라든가. 그런데 저자가 추억하는 이 시절은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다. 지식인은 지식인이되 초등학교 교사와 공공기관 간부였던 저자의 부모님은 장샤오위안에게 책을 읽게 해 주었고, 장샤오위안은 친구들 사이에서 책을 교환해 볼 수 있는 허브 노릇을 한다. 이때의 자신과 친구들을 저자는 “눈 내리는 밤, 문을 닫고 금서를 읽는” 중국 문인들이 사랑하는 어떤 경지에 비유한다. 그가 책에 대한 취향을 키워 나간 것도, 귀한 고전을 손에 넣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필사를 했던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문화대혁명 같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사람들의 삶도 독서도 어떤 식으로든 이어졌다는 것을 새삼 생각했다.

전기 기사로 일하면서도 꾸준히 책을 읽던 장샤오위안은 장칭디 선생의 조언에 힘입어 이과를 지망한다. 이 선택은 이후 그가 문과와 이과를 오가는 통섭적인 학문의 길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었다. 천체물리학을 전공하면서도 수많은 고전을 읽던 그는, 천문학 개론과 중국 통사, 고대 국어 시험을 보는 희한한 전공이 있다는 말에 이끌려 과학사를 연구하는 시쩌쭝 교수의 제자가 된다. 시쩌쭝 교수의 문하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며 그는 천문학은 물론 중국 고전속의 성문화에 대해서도 글을 쓰는 등, 분야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로 먹고사는” 삶을 지속하며 자신의 서재를 구축해 나간다.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이과와 문과에 대한 부분이다. 앞서 장칭디 선생은 “이과 계열 학문을 하다가 문과 계열 학문을 하는 건 문제없다. 그러나 문과 계열 학문을 하다가 이과 계열 학문을 하는 것은 내 여태 본 적이 없다”며 장샤오위안을 이과로 이끌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학교 다닐 때에도 이과로 가는 쪽이 문과로 가는 쪽보다 교차 지원의 폭이 넓다고들 했으니 이해가 갔다. 그런데 저자가 다녔던 난징대학교의 규정이 희한했다. 문과 학생은 외국 영화를 봐도 되고, 대외 열람이 가능한 모든 도서를 대출할 수 있는데 이과는 안 된다. 이유인즉 “이과 학생은 어떤 종류의 인문 도서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상하이 도서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천문대의 소개장을 가지고 가서 고서를 빌리려 했더니, 천문대는 이과라 책을 빌려줄 수 없다는 말이 돌아온다. 세상 일은 칼같이 나누어 생각할 수 없고 종종 통섭을 요하는 일들이 생기는데, 자신의 분야를 넘나드는 데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 제약을 거는 것이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규정들이 생겨난 것일까, 읽으면서도 기가 차고 답답해졌다. 문명이 발달하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거리가 멀어졌지만, 이럴수록 ‘과학사의 아버지’ 조지 사턴이 과학사를 두고 한 말 처럼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들이 필요했을 텐데. (물론 아무데나 인문학 갖다 붙이는 인문학 팔이꾼들이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을 “무식한 이공계”라고 치부하며 인문학을 공부하라고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 것 말고.)

저자가 서울에서 삼국유사를 찾아 다닌 부분도 흥미롭다. 다른 지인들의 서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물리학자인 거거 선생이 진융(김용)의 팬으로, 진융의 무협소설에 나오는 천이백명에 달하는 주인공들의 인감을 새겨 인보를 만들었다는 대목에서는 덕후로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만 자기 일상을 돌보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에 방해를 받으면서까지 그저 책을 사들이고 읽는 데 전념하며 행복을 느끼는 책벌레 지인이 결혼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 책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독서를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한다는 여자들의 진정한 사랑은 어디 있느냐며 갑자기 여자들을 비난해 대는 것에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남자들이란 대체 왜 이 지경인가 하고 혀를 차게 되었다. 1955년생이고 문혁 때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이 책이 나온 것은 중국이 지금만큼 개방되기 전인 201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책 잘 읽고 기분이 확 나빠지는 대목이다. (그렇게 친구가 혼자인 게 걱정되면 님이 결혼해서 같이 살아주시죠 왜.)